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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민하 기자] 삼성전자가 인도에서 통신 장비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관세를 회피한 혐의로 현지 정부로부터 약 9000억원에 달하는 세금 추징과 과징금 부과 명령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통신은 25일 이 같은 내용을 보도하며, 인도 세무 당국이 삼성전자가 수입품의 품목 분류를 고의로 잘못 기재해 관세를 피하려 했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논란이 된 수입 품목은 ‘리모트 라디오 헤드’(Remote Radio Head)로 불리는 소형 라디오 주파수 회로 모듈이다. 이는 4G 이동통신 기지국에서 무선 신호를 송출하는 핵심 장비로, 삼성전자는 2018∼2021년 한국과 베트남에서 이 부품을 7억 8400만 달러(약 1조 1513억원)어치 수입하면서 관세를 내지 않았다. 인도 당국은 이 장비가 송수신 기능을 갖춘 통신장비에 해당한다고 보고 10~20%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이 장비는 단순히 송신 기능만을 수행할 뿐, 송수신 기능을 모두 갖춘 장치가 아니기 때문에 무관세 품목에 해당한다”라고 반박하며, 전문가 4명의 감정 결과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도 정부는 삼성전자가 2020년 제출한 정부 서한에서 이 부품을 스스로 ‘송수신기’로 규정했다고 지적하며, 관세 부과가 정당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로이터가 입수한 인도 세무 당국의 비공개 명령서에 따르면, 소날 바자즈 관세국장은 “삼성전자는 정확한 분류를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고의로 은폐하고 허위 신고를 했다”고 지적하며, “정부를 속여 이익을 극대화하려 했고, 모든 기업 윤리와 산업 표준을 위반했다”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인도 당국은 삼성전자에 총 446억 루피(약 7636억원)의 미납 관세와 과징금을 부과했고, 삼성전자 인도법인 소속 임원들에게도 별도로 8100만 달러(약 118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삼성전자 측은 “이번 사안은 세관의 해석에 따른 품목 분류 문제로, 우리는 인도 현지 법을 준수하고 있으며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최근 인도에서는 이처럼 수입품의 품목 분류를 문제 삼아 외국 기업에 대규모 세금 추징을 통보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독일 폭스바겐은 차량을 완전분해(CKD) 방식으로 수입하면서 부품 형태로 허위 신고했다는 이유로 약 14억 달러(약 2조 563억원)의 세금 추징 조치를 받았고, 이에 대한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이다. 또 기아차 인도법인에도 유사한 혐의로 약 150억 루피(약 2570억원)의 세금이 부과됐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사건이 외국 기업의 인도 투자 환경에 대한 우려를 자극하고 있다고 전하며,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삼성전자가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지만,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기조 속에서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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