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최근 한국 철강업계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동국제강을 포함한 주요 철강사들이 생산을 줄이고 철근 출하를 중단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으며, 이는 유례없는 건설 경기 침체와 저가 중국산 제품의 공세로 인한 결과로 분석된다. 기대되는 수요 증가에도 불구하고, 업계의 우려는 날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동국제강은 오는 24일까지 철근 제품에 대한 출하를 중단하고, 공장 가동률을 50% 이하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최근 4일간의 철근 생산 중단에 이어진 조치로, 업계의 위기감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한제강 또한 15일부터 19일까지 일반 철근 출하를 중단했으며, 한국철강과 환영철강 등 중견 기업들도 유사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국제강은 톤당 72만 원 이하로는 철근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밝혀,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국산 철근의 출하 가격은 톤당 69만 원으로, 지난해 12월의 67만 원과 비교해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미국 중서부 철근 가격이 톤당 812달러(약 118만 원)인 것과 비교할 때 큰 차이가 난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내 철근의 유통 가격은 실제 생산 원가 이하로 형성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팔면 팔수록 적자가 커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건설 경기가 장기적으로 침체할 것이라는 전망은 우려를 더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건설 수주는 전년 대비 2.2%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건설 투자는 2.1%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철근 사용량이 많은 공공 수주 물량은 전년 대비 1.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과 함께 내년도 공동주택 입주 물량이 올해 전망치보다 30.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철강업계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 보인다.
이러한 위기감은 중대형 철강업체들 사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현대제철은 올해 초 인천과 포항의 철근 공장을 일시 중단했으며, 최근 포항 2공장 가동을 축소하고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이 공장에서는 H형강 제품과 함께 철근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의 관세 정책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 인해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해외 철강 수출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내수 수요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설재 수요가 감소하고 있어 중소기업은 폐업을 결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결국 현재의 위기는 단순한 생산량 감소에 그치지 않고, 철강업계 전반에 걸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강사들은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저가 중국산 제품의 공세와 내수 시장의 침체는 그들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철강업계를 살리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철강·알루미늄 통상리스크 및 불공정수입 대응 방안'을 통해 불공정 철강 수입재의 국내 유입 차단을 골자로 한 대책을 내놨다. 이는 미국의 철강 25% 관세 부과 등 통상 장벽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가 통상 리스크 관리 강화와 기업의 단기적 위기 극복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다.
주요 내용으로는 △통상현안 대응 및 기업의 단기적 위기 극복 지원 △불공정 철강 수입재의 국내 유입 차단 △미래 시장 대비 등이다. 정부는 주요국 통상장벽에 신속히 대응하고, 양자 및 다자 간 협의를 통해 우리나라의 입장을 적극 개진할 계획이다. KOTRA에 설치된 '관세 대응 119'를 통해 철강 및 알루미늄 기업의 통상장벽 극복을 패키지로 지원할 예정이다.
업계는 정부의 대응 방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불공정 철강 수입재의 국내 유입 차단 대응 방안은 필수적인 조치로 여겨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철강산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미국의 관세 부과뿐만 아니라 인도의 세이프가드 등 부담스러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대응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한국 철강업계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협력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구조적 변화와 혁신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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