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츠금융그룹은 2023년 지배구조 개편을 거쳐 '원 메리츠(One Meritz)'로서 효율 경영을 표방하며 새 출발에 나섰다. 같은 해 1월 보험업계에 신회계기준(IFRS17) 적용 이후, 메리츠화재는 이익 급증과 대규모 배당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특히 메리츠금융지주의 최대주주 조정호 회장의 배당은 2022년 100억원에서 2023년 감액배당을 활용해 2300억원대로 23배 급증했다. 이 같은 ‘비과세’ 거액 배당으로 인해 조 회장은 이재용 회장을 제치고 주식부자 1위를 기록했지만, 실질적 수익 성장에 기반한 것인지 일시적인 회계적 효과에 불과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남아 있다. 이는 같은 해 메리츠화재가 사업계획에서 예실차 이익을 목표로 삼았던 점이 금융감독원에 적발돼 논란이 됐던 건과 무관하지 않다. 이에 원메리츠가 추구하는 효율성이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이나 장기적인 소비자 보호 원칙과 충돌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 같은 기조가 향후 보험업계에 미칠 영향은 무엇인지 분석한다.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메리츠금융그룹은 공격적이고 빠른 성과주의적 투자 전략과 그에 따른 탁월한 실적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리스크 관리 미흡과 내부통제 부재가 자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메리츠의 허술한 관리와 리스크 통제에 대한 경영유의를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조정호 회장의 ‘원메리츠’ 세계관에선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촘촘히 잡아 둔 담보 아래 이뤄진 홈플러스와의 금융 거래는 이른바 ‘약탈적 금융’으로 불리는 메리츠의 기조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그간 표방해온 성과주의가 내부통제의 부재와 결합해 기업 리스크를 더욱 확대시킬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최근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함에 따라 메리츠와 홈플러스 운영사인 MBK파트너스 간 체결한 1조3000억원 규모의 리파이낸싱(재융자) 계약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화재·증권·캐피탈 등 메리츠 3사는 MBK파트너스와 3년 만기, 금리 8%의 대출계약에 나선 바 있다. 리파이낸싱 이후 홈플러스는 1000억원을 상환해 메리츠금융의 익스포저(위험노출)는 1조2000억원으로 줄어들었지만, 결과적으로 부실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묶어두게 됐고 자본 회수 계획의 불확실성도 함께 커졌기 때문이다.
메리츠는 5조원대 자산을 담보로 선순위 대출을 했던 만큼 회수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홈플러스의 회생 가능성은 불투명한 데다 직·간접적인 피해자 등을 감안하면 당장 부동산 처분을 통한 담보권 실행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높은 리스크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에 메리츠의 내부 통제 및 리스크 관리 방식과 함께, 간접적이나마 부실기업에 거액의 자금을 지원한 행보 등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메리츠, 단기성과 끝판왕 ‘악명’… ‘벼랑 끝’ 대출로 해답 찾았나
최근 몇 년간 메리츠는 잇따른 대출 거절로 자금난을 겪으며 궁지에 몰린 기업을 대상으로 긴급 대출을 하며 자본시장 내 입지를 다져 왔다. 지난해에도 M캐피탈이나 고려아연 등에서 수백억 원대의 이자 수익을 챙겼으며, 2023년 롯데건설 유동성 위기 때는 선순위로 9000억원을 지원하며 약 1000억원대 이익을 봤다.
메리츠의 성과주의 성향은 자기 자본 기준 몇 배의 자금을 외부에서 차입해 운영하는지를 나타내는 레버리지 비율에서도 드러난다. 메리츠증권의 지난해 레버리지 비율은 914.1%로 증권업계 중 가장 높았다. 같은 기간 메리츠증권의 자기 자본과 비슷한 수준인 KB증권의 레버리지비율이 640.5%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메리츠증권의 공격적인 영업 기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자본시장에서 건전한 성과주의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기업 내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시스템이 미흡한 상황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메리츠는 수익을 올리기 위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하며 그 뒤에 숨겨진 리스크를 제대로 평가하거나 관리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경영유의를 통해 메리츠의 부동산 PF 및 대체투자 한도 설정, 사후관리, 셀다운(매각) 수수료 관리 문제 등을 지적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회사는 부동산 PF 대출 한도를 총한도와 잔액한도로 구분해 관리하면서도, 미인출잔액을 실제 인출 가능 금액이 아닌 반영률을 곱해 계산했다. 이는 리스크를 과소평가해 부동산 PF 대출의 실제 위험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평가다.
또한 2023년 8월에는 합리적 근거 없이 한도 기준을 운용자산에서 총자산으로 변경했는데, 이는 결국 같은 수준의 리스크를 지닌 대출이라도 더 많은 금액을 대출할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자산 대비 과도한 익스포저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사업성 평가 및 사후관리 체계도 미흡했다. 사업성 평가 등급(양호, 보통, 악화우려) 간 평가 기준이 일관되지 않아 객관적인 비교가 어려웠고, 일부 예외 조항을 활용해 ‘악화우려’ 등급을 ‘양호’로 조정할 수 있는 ‘등급 조작’ 가능성도 존재했다. Credit Review(자산 등급 분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고, 평가 근거도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않았다.
부동산 PF 대출 셀다운 과정에서의 수수료 집행 역시 부적절하게 운영됐다. 회사는 자문·중개·주선 수수료 지급 관련 명확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고, 유관 부서 검토 없이 투자금융부가 단독으로 의사결정 및 수수료 산정·집행을 진행했다.
결국 메리츠는 한도 기준을 합리적 근거 없이 변경하면서 과도한 대출을 허용할 위험을 키웠고, 내부통제와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은 정황이 확인됐다. 이는 고위 경영진이나 특정 이해관계자가 임의로 대출 한도를 조정할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부동산 PF 및 대체투자 부문에서의 위험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는 문제로 볼 수 있다.
“지나친 성과주의, 결국 편법·탈법 일으킬 소지 많아”
금감원의 경고는 메리츠의 성과주의와 결합된 허술한 내부 관리가 얼마나 큰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지 사전에 예고하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허술한 리스크 관리 및 내부 통제가 그간 밀어붙여 온 성과주의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표면적으로는 관리 상의 허술함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간 메리츠가 채택해온 성과 중심 경영에 비춰보면 결국 ‘의도적으로 리스크를 묵인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약탈금융의 대표 주자인 메리츠는 단기 수익을 추구하며 리스크 평가 없이 부동산 PF 대출을 밀어붙였고, 셀다운 구조에서는 불투명한 수수료 지급을 하며 내부 이익을 챙겼다”며 “사업성 평가에서 예외를 남발해 위험한 자산을 양호한 것처럼 포장한 점도 리스크를 방임하고 내부 기준을 느슨하게 만들어 이익을 극대화한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 PF 대출에서 리스크를 느슨하게 평가한 점을 보면 홈플러스 건 또한 대출 과정에서 리스크 평가가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며 “이번 홈플이슈로 메리츠에서 돈 빌리면 정말 기업이 망할 수 있다는 인식이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는 보험사가 포함된 금융지주사의 지나친 성과주의를 경계하며 이 같은 기조가 편법과 탈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이다.
재무관리 전문가인 신현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메리츠의 성과주의 투자 방식을 무조건 비난할 수는 없지만, 가입자의 보험료를 기반으로 한 자금을 공격적인 투자에 활용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는 의문”이라며 “증권사의 경우 주주들이 리스크를 감안하고 투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보험사의 경우 이에 해당되지는 않기에 더욱 철저한 리스크 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증권학회장을 지낸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도 “메리츠의 성과주의 영업전략은 시각에 따라서는 치고 빠지는 냉혈자본으로 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투자 영업을 잘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신탁으로 확실한 담보를 잡고 회수하는 등의 과정들이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다면 비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성과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확률적으로 편법과 탈법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는 것은 사실이다”라며 “이는 성과주의를 표방하는 기업의 내부통제가 철저하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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