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경제=김종효 기자] 중국에서 개발한 AI 모델 ‘딥시크(DeepSeek)’가 천문학적 개발 비용이라는 인식을 뒤집는 혁신적 기술로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국내 AI 스타트업들은 물론이고 대기업까지 딥시크 쇼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벤치마킹하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보안과 개인정보 이슈 등 여러 논란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딥시크의 오픈소스 공개와 저비용 고효율 AI 모델 개발 가능성은 국내 AI 스타트업들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 AI 업계는 지난 몇 년간 초저비용, 고효율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 중심에 선 딥시크는 기존 AI 모델 개발에 막대한 자본 투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뒤집었다. AI 기술 개발에 대한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으며 중국 정부와 관련 업계는 딥시크의 기술적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글로벌 AI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미국 및 유럽 주요 AI 기업들은 딥시크 열풍에 경각심을 표하는 동시에 기술 경쟁력 강화와 함께 보안 및 윤리 문제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국제적 경쟁 구도 속에서 딥시크는 글로벌 AI 생태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고정관념 깬 딥시크, 새로운 가능성 제시
지난해 7월 공개된 딥시크의 생성형 AI 모델 '딥시크-R1'은 GPT-4 수준의 성능을 18분의1 비용인 78억원으로 구현하면서 고성능 AI는 대기업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을 무너뜨렸다. 특히 엔비디아 H800 GPU만으로 모델을 학습시킨 점은 저사양 반도체 활용 가능성을 입증했다. 대형 AI 모델 개발에 필요한 막대한 자본과 반도체, 데이터 센터 등의 인프라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고성능 모델을 구현한 것이다.
국내 AI 스타트업들은 이에 주목 중이다. AI 반도체 팹리스 기업 퓨리오사AI는 “H800 기반 최적화 칩 설계로 2025년 상반기 양산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고 생성형 AI 스타트업 미스테리코는 딥시크 오픈소스를 활용해 한국어 특화 모델 개발 속도를 2배 이상 끌어올렸다. 네이버클라우드 관계자는 “기술의 80%가 오픈소스로 공개되며 나머지 20%에 집중할 환경이 마련됐다”고 평가했다.
그간 국내 AI 스타트업은 GPT-4, 클로바X 등 외부 모델에 의존해 상업 서비스를 구축해왔다. 대표적으로 카카오의 AI 챗봇 '카나나'는 GPT-4 API를 기반으로 했고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 역시 초기 버전에서 영어 데이터에 의존했다. 이는 기술 주권 취약성으로 이어졌다.
딥시크 쇼크 이후 인식이 달라지며 변화가 감지됐다. AI 기업 업스테이지는 지난해 8월 시리즈B에서 1200억원을 투자 유치하며 자체 LLM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캐글 OCR 대회에서 구글·메타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맞춤형 모델을 구축 중이다. 생성형 AI 스타트업 라이너는 검색 결과의 출처를 투명하게 표시하는 ‘AI 신뢰성 강화 기술’로 유럽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며 트웰브랩스는 영상 생성 AI 분야에서 엔비디아로부터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고성능 GPU 확보와 학습 비용은 국내 스타트업의 오랜 과제였다. 딥시크가 H800 GPU 2,000개로 모델을 학습시킨 사례는 저사양 칩 활용 전략을 각인시켰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2027년까지 GPU 3만 장 공급을 목표로 하는 ‘AI 인프라 확충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중기부는 AI 스타트업에 연간 500억원 규모의 학습 비용 지원금을 신규 편성했다.
실제 적용 사례도 등장했다. 제조 AI 전문기업 마키나락스는 H800 칩을 활용해 반도체 불량 검사 모델을 개발하며 삼성전자에 납품했고 헬스케어 스타트업 레블업은 딥시크 오픈소스를 기반으로 한 의료 진단 지원 시스템을 2025년 상용화할 예정이다.
딥시크 모델의 오픈소스 공개는 상업화 속도를 끌어올렸다. 오노마AI는 스테이블 디퓨전 기반 웹툰 콘티 생성 툴 ‘투툰GPT’를 출시해 3개월 만에 1만명의 유료 구독자를 확보했으며 마크비전은 AI 위조 상품 탐지 솔루션으로 루이비통·샤넬과 계약을 체결했다.
대기업도 가세했다. 삼성전자는 자체 모델 ‘가우스’를 도입해 연구개발 기간을 30% 단축했고 LG전자는 AI 기반 SQL 코드 생성 시스템을 전 사원에게 확대 적용하며 업무 효율화를 가속화 중이다. 카카오는 오픈AI와 협력해 5000만 사용자 플랫폼에 생성형 AI 서비스를 통합할 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LG는 18일 자체 개발한 추론 AI인 ‘엑사원 딥’(EXAONE Deep)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기존의 지식 기반 AI를 넘어 가설·검증·추론 과정을 거쳐 자율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에이전틱 AI 시대를 열었다. LG AI연구원은 ‘엑사원 딥-32B’와 함께 개발한 경량 모델 ‘엑사원 딥-7.8B’, 온디바이스 모델 ‘엑사원 딥-2.4B’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LG AI연구원은 엑사원 딥에 대해 “글로벌 추론 AI 모델들과 경쟁할 수 있는 국내 첫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오픈AI와 구글, 중국의 딥시크와 알리바바 등 파운데이션 모델을 보유한 소수 기업만이 자체 추론 AI를 개발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의 자체 개발 AI로 경쟁 구도에 뛰어든 것이다.
LG AI 연구원은 6710억개 매개변수를 지닌 딥시크R1에 비해 5% 규모인 320억개 매개변수를 지닌 ‘엑사원 딥-32B’이 미국과 중국 모델들과의 비교에서 우수한 성능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논리적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을 평가한 결과 복잡한 수학 문제와 과학 문제 해결 능력에서 우수성을 입증했다고 밝혔다.
‘엑사원 딥-32B’는 미국 비영리 AI 연구기관인 에포크 AI가 선정하는 ‘주목할 만한 AI 모델 리스트’에 등재되며 기술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LG AI 기술 핵심은 모델 크기를 크게 줄이면서도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경량 모델 ‘엑사원 딥-7.8B’는 32B의 24% 크기임에도 성능을 95%까지 유지하며, 오픈AI의 o1-mini의 성능을 웃돈다고 LG AI연구원은 설명했다. 이처럼 딥시크 쇼크는 각 기업의 AI 기술 혁신뿐 아니라 경제성과 실용성에서도 경쟁을 촉발하고 있다.
◆보안 리스크 여전...한국어 한계 지적도
그러나 이런 기술 혁신 뒤에는 여러 보안 문제와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뒤따르고 있다. 일부 기업은 딥시크를 통한 개인정보 유출 및 보안 위협을 우려해 국내 주요 금융사·공공기관은 내부적으로 접속 차단 조치를 취했다. 딥시크 모델의 데이터 수집 프로세스가 불분명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영어에 비해 한국어 성능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금융 데이터 보안 규정을 준수한 독자적 언어모델 개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부 모델 연동 없이 자체 데이터를 활용해야 보안 위협을 줄일 수 있다는 조언도 잇따른다.
앞서 언급된 LG AI연구원 자체개발 추론 AI인 ‘엑사원 딥’이 한국어에 강점이 있는 엑사원 파운데이션 모델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온디바이스 모델 ‘엑사원 딥-2.4B’가 외부 서버와의 연결 없이 기기 내부에서 안전하게 데이터를 처리해 보안성과 개인정보 보호 측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강조한 이유도 이같은 논란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포화 시장인 범용 AI 모델 경쟁에서 벗어나 바이오·법률·제조 등 특화 분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의료 영상 분석이나 법률 문서 요약처럼 데이터 수요가 명확한 영역에서 한국형 AI가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이유다. 실제 베슬AI는 클라우드 기반 AI 최적화 솔루션으로 아마존 웹서비스(AWS)와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뤼튼테크놀로지스는 일본·동남아 시장에서 생성형 AI 기반 캐릭터 서비스로 매출을 크게 신장시켰다.
정부 차원에서도 AI 기술 혁신과 스타트업 지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딥시크가 보여준 강력한 사고형 인공지능 개발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며 중소기업의 AI 활용 확산과 기술 자립을 위한 다양한 정책 지원 방안을 마련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산학연 협력 강화로 생태계 조성에 나섰다. AI 전공 대학원 증설과 스타트업 인턴십 프로그램을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와 유관 기관은 AI 윤리 및 보안 관련 규제 정비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딥시크와 같은 기술이 가진 보안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관련 부처 간 협력을 통해 표준화 및 모니터링 체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AI 생태계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전망이다.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국내 AI 스타트업들이 딥시크 쇼크를 발판으로 기술 자립과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설 수 있다. 보안과 윤리 문제 해결을 위한 후속 조치가 병행된다면 국내 AI 스타트업은 물론 글로벌 AI 산업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스타트업의 기술 역량, 정부의 인프라 지원, 기업의 윤리적 책임이 삼각편대를 이룰 때 기업뿐 아니라 AI 산업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국내 AI 스타트업들이 딥시크 쇼크를 발판으로 기술 자립과 시장 주도권 확보에 나설 수 있다. 보안과 윤리 문제 해결을 위한 후속 조치가 병행된다면 국내 AI 스타트업은 물론 글로벌 AI 산업 전반에 걸쳐 긍정적인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스타트업의 기술 역량, 정부의 인프라 지원, 기업의 윤리적 책임이 삼각편대를 이룰 때 기업뿐 아니라 AI 산업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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