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한두 시즌 앞서 살아야 하는 에디터이기에 ‘트렌드’라면 일단 꽉 잡고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 유난히 강한 때가 있었다. ‘이번엔 발레 코어가 트렌드라니 미우미우의 발레리나 슈즈를 살까, 올드머니 룩이 유행이라는데 더 로우의 캐시미어 니트를 사볼까….’ 각종 코어에 홀려 지른 쇼핑의 결과는 안타깝게도 모두 중고 거래행. 평소 패션 스타일과 어우러지지 않고, 스스로 어색해 손이 가지 않은 탓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결국 트렌드 대신 나의 취향과 기호를 좇기로 했다. 나이가 몇인데 꼼데가르송 걸 가방에 키티 인형을 달고 다니냐는 친구의 핀잔에도 굴하지 않기로 했다. 트렌드 없는 트렌드를 즐기는 것이 현시대 에디터의 가장 쿨한 태도니까. –눈썹 탈색 3년 차(이제는 눈치껏 노란색으로 자라주었으면…), 디지털 에디터 P
트렌드는 내게 애증의 대상이다. 매거진에서 일하기에 트렌드를 좇으며 밥값을 해야 하지만, 여전히 예전의 ‘홍대병’에서 벗어나지 못해 트렌드를 좇는 것은 촌스럽다며 반기를 들기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스운 점은 이런 태도마저 이미 하나의 트렌드로 이른바 힙스터들 사이에 자리 잡은 것. 본인만의 독특한 감성을 어필해야 하는 그들의 세상 속 트렌드 아닌 트렌드를 소비하는 모습은 이렇다. 1. 알고리즘 지옥 속 바이럴 숏폼을 열렬히 사랑하지만, 심드렁한 태도로 모르는 척하기. 2. 유행하는 아이템을 아주 의도적으로 활용하고 유행과 상관없이 원래 좋아했다고 우기기. 3. 핫 루키로 떠오른 가수의 무명 시절 EP를 SNS에 올리며 골수팬인 척하기 등등. 이처럼 현시대 모습을 보여주는 척, 이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됐다는 생각을 기저에 까는 스스로가 웃기지만 어쩌겠는가. 대놓고 유행을 좇는 것이 부끄럽지만, 뒤처지고 싶지 않은 이들의 소심한 허우적거림쯤으로 생각해주기 바란다. –남친 급구! 뷰티 에디터 H
‘트렌드 없는 트렌드’라. 이 역설적인 현상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동시대 가장 똑똑한 챗GPT에게 물었더니 이렇게 답하더라. “겉으로 보기에 뚜렷한 유행이나 특정 스타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흐름이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트렌드를 따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트렌드가 되는 역설적인 현상입니다.” 결국 트렌드 없는 트렌드란 유행을 좇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것. 개성과 다양성을 중시하는 지금 시대에 ‘나다움’을 찾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셈. 근데 트렌드 없는 트렌드의 정의를 인공지능 챗GPT에게 내려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나는 과연 진정으로 나다움을 찾을 수 있을까? – 무엇이든 챗GPT에게 물어보는 호기심 대마왕, 디지털 에디터 K
학생 시절에는 알렉산더 맥퀸의 드레스 스케치를 따라 그리고, 칼 라거펠트의 샤넬 컬렉션 북을 사서 보고, 톰 포드의 잘빠진 수트들을 사랑했다. 그리고 그들을 언젠가 패션쇼장에서 직접 볼 수 있기를 고대하며 에디터가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패션을 사랑하지 않는다. ‘오늘은 이게 유행이고, 내일은 저게 유행이래.’ 어떤 단어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난잡한 트렌드들 속에서 살아남기에 지쳤다. <트루먼 쇼> 속 세계에 떨어진 사람처럼 우뚝 선 지 어언 3년. 이 주제를 던져준 에디터를 통해서 트렌드 없는 트렌드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 옷장에 산 지 5년 넘은 옷만 있는 디지털 에디터 P
나는 이걸 ‘취향의 개인화’라고 정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현상을 주도하는 것은 몰개성화의 주범으로 비난받는 알고리즘이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스크롤 하기만 해도 알고리즘이 알아서 좋아할 만한 것을 골라 떠먹여주고 사용자는 그걸 보며 자기만의 사적이고 깊이 있는 취향을 가꾼다. 나 역시 매일 몇 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트렌드에 관한 글을 쓰지만, 올겨울 내 스타일링 공식은 딱 하나였다. 슬림한 청바지, 구두나 부츠, 밋밋한 컬러의 니트 그리고 어딘가 어른스러운 코트. 이유는 단순하다.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그러니까 이제 눈치 보는 일 없이 입고 싶은 건 뭐든 입으면 된다. 단지 좋아하는 걸 확실하게 좋아하면 될 일이다. -국산을 애용하자. 갤럭시 사용자 디지털 에디터 A
어김없이 늦도록 집에 가지 못하고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마감날, ‘트렌드 없는 트렌드’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을 받고 내 옷장 안을 머릿속으로 투시해봤다. 서늘한 사무실에서 긴긴밤을 함께해준 나의 애착 카무플라주 후디, 레오퍼드 패딩 점퍼와 컴배트 부츠, 그리고 자카드와 지브라 패턴 팬츠까지. 그래, 나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 각종 코어에 극심한 피로를 느낀 지 이미 오래. 드뮤어 트렌드가 SNS를 점령하다가도 찰리 XCX의 앨범이 대박나니 이번엔 브랫(brat)이 유행이란다. 그러다 찬 바람 불어오니 뭐, 몹 와이프? 잘 모르겠고, 그저 온갖 동식물이 점령한 나만의 옷장 생태계 속에서 살아남기로 다짐했다. 색다를 것 없이 깔끔할 뿐인 스타일도 ‘드뮤어’라는 단어로 고급스럽게 포장되는 만물 트렌드 시대에, 언젠가는 패션계 전방에서 나를 구원해줄 미치광이 패턴 용사(?)가 등장하지 않을까. 신분 상승할 그날을 기다리며 더 입맛대로, 더 마음껏 트렌드 아나키즘을 즐겨보련다. – 건드리면 뭅니다. 애니멀 프린트 러버 패션 에디터 L
어느 SF영화를 보면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분열이 일어나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트렌드 없는 트렌드’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그 장면이 떠올랐다. 지난 한 해 내가 쓴 ‘코어’ 관련 기사만 해도 족히 30편이 넘는데, 이제는 그 자체가 사라졌다니! 오히려 좋다. 모든 룩을 코어로 치환하는 피곤한 일을 더는 하지 않아도 되니까. 트렌드는 없어졌지만 개개인이 자체 트렌드가 된 시대, 요즘 세대에 안성맞춤이다. 이런 의미에서 드뮤어, 올드머니라는 트렌드 때문에 구매를 망설였던 발렌시아가 메탈 르 카골 백을 다시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 고구마를 먹고 있는 패션 에디터 S
작은 키에 줄줄 흘러내리는 바지를 입다 보니 새깅(sagging)이라는 유행이 찾아왔다. ‘이 세계에선 내가 트렌드세터?’ 돌고 도는 트렌드, 유행을 위한 트렌드는 이제 사절이다. 좋아하는 걸 파고 파다 보면 취향이 되는 것처럼 트렌드는 ‘어떤 취향’에 가깝다고 느낀다. 이런 의미에서 트렌드 없는 트렌드에 공감하는 바. 변덕도 이보다 더한 변덕이 없을 패션의 흐름 속에서 뚝심 있게 본인의 취향을 누리다 보면 어느새 그 중심에 서 있을지도. – 인간 싫어, 강아지 사랑해. 패션 에디터 P
‘빨리빨리’가 생명인 디지털 매거진의 특성상 급하게, 억지로 트렌드를 만들어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싸한 단어 뒤에 추구미 혹은 코어만 붙이면 되는 세상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적잖이 환멸을 느끼던 차에 ’트렌드 없는 트렌드‘가 트렌드란다. 개인이 만들어낸 작은 콘텐츠가 갖는 힘이 더욱 커지면서 그 속에 담긴 사소한 내용 하나하나가 트렌드가 됐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흐름이라 생각한다. 획일화되지 않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소중한 기회니까. 이 흐름이 파도처럼 밀려와 ”이런 게 유행이래“, “이게 요즘 대세래”라는 말들을 종식시키길 바라며…. – K-팝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대중문화 중독자 디지털 에디터 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