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 중 하나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생활수준이 반드시 세계 최고라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은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평균 소득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명과 유아 사망률 같은 보건 지표에서는 세계 30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는 미국의 의료 시스템이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지만, 그 문제의 본질은 훨씬 깊다. 미국의 소득 불균형이 심각하기 때문에 평균 소득만으로 미국인의 생활수준을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실제로 미국의 평균 소득이 높다는 사실은 많은 미국인들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 조건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직업의 안정성이 낮고 복지 수당 같은 사회적 지원이 미약하다. 따라서 같은 소득 수준의 유럽 노동자들에 비해 생활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다.
미국의 경우 구매력 평가 기준 소득과 시장 환율 소득이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일반적으로 잘사는 나라는 구매력 평가 기준 소득이 시장 환율 소득보다 낮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값싼 노동력이 가난한 나라로부터 이민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서비스 임금이 낮게 유지된다. 특히 불법 체류자의 경우 임금이 더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미국인 노동자들도 직업 안정성이 낮고 사회 보장이 약하기 때문에 유럽의 노동자들에 비해 임금이 낮고 근무 조건이 열악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열악한 환경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에서 택시를 타거나 식당에서 외식하는 비용이 다른 부자 나라에 비해 저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객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택시 기사나 웨이트리스에게는 그렇지 않다. 미국의 평균 소득이 높다는 것은 많은 미국 시민들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 조건을 견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높은 평균 소득이 곧 생활수준의 우수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은 노동 시간에서도 드러난다. 미국인들은 다른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래 일한다.
시장 환율 기준으로 2007년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 되는 나라(약 6만 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소득 수준을 기록한 나라)들 중에서 미국인들은 가장 오래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인들보다 평균 10% 더 오래 일하고,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인들에 비해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한다.
그 결과 노동 시간당 구매력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미국은 세계 8위에 불과했다. 이는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프랑스, 아일랜드, 벨기에, 오스트리아, 네덜란드가 미국보다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독일도 근소한 차이로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결국 같은 시간을 일했을 경우 미국인들은 경쟁국 국민들에 비해 더 낮은 생활수준을 누린다는 뜻이다. 미국인들은 떨어지는 생산성을 긴 노동 시간으로 보충하고 있는 셈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벌고 싶으면 더 일할 수 있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일정 수준을 넘어선 상태에서 긴 시간 노동은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소득이 낮을 때는 노동 시간이 길어도 더 많은 소득을 통해 삶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 더 나은 음식, 난방, 위생, 의료 서비스 등을 통해 건강 상태가 좋아지고 가전제품 구입이나 수도, 가스, 전기 시설의 이용으로 가사 노동의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여가 시간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커지기 때문에 굳이 긴 시간 일을 해서 더 많은 소득을 올릴 필요가 없어진다. 문제는 미국인들이 긴 시간 일을 하는 것이 반드시 자발적인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 보장 제도나 노동자의 권리 보호 수준, 노동조합의 영향력 등은 각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미국인들이 긴 시간 노동에 내몰리는 이유는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구조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국가는 노동법을 개정하고 복지 정책을 강화함으로써 사람들이 너무 오래 일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미국식 경제 모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생활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평균 소득은 소득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에 미국인의 실제 생활수준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의 소득 불균형은 보건 지표와 범죄율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평균 소득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수명과 유아 사망률 같은 보건 지표에서는 선진국 중 하위권에 속한다.
또한 미국의 범죄율은 매우 높아서 평균적으로 교도소 수감자 수가 영국의 8배, 일본의 12배에 달한다. 이는 미국의 빈곤층 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높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국 미국의 높은 평균 소득은 다수의 미국 시민들이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 조건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미국에서 평균 소득이 높다고 해서 미국 시민들의 생활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가 간의 생활수준을 비교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1인당 소득이나 구매력 평가 기준 소득이 생활수준을 판단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지표인 것은 맞지만, 소득으로 얼마나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살 수 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여가 시간, 직업의 안정성, 범죄의 위험, 의료 혜택, 사회 보장 수준 등 삶의 질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를 간과하게 된다.
미국이 다른 나라보다 생활수준이 더 높다는 주장은 이런 요소를 무시했을 때만 성립하는 것이다. 개인마다, 그리고 나라마다 중요한 요소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소득 외에도 삶의 질을 결정하는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원본 기사 보기: 내외신문
Copyright ⓒ 월간기후변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