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방위사업청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선도함 건조 주체 결정을 보류하면서 사업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수의계약과 경쟁입찰을 두고 대립하는 가운데, 방사청은 4월 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 회의 전까지 추가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방위사업청은 17일 KDDX 선도함 건조 주체를 결정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에 따라 오는 4월 2일 예정된 방위사업추진위원회 회의 전까지 추가 논의를 거쳐 최종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
방위사업청은 이날 사업분과위원회를 열어 ‘KDDX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의 추진 방식으로 수의계약, 경쟁입찰,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공동 설계 등 3가지 방안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방사청 관계자는 “구체적인 안건 내용과 분과위 의사결정 결과는 ‘방위사업법’ 제6조 청렴서약제도에 따라서 방추위 최종의결 전까지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면서도 “수의계약 필요 사유와 공동개발 방안 등을 더 검토해 깊이 있게 논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방위사업청은 4월 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 개최를 계획하고 있으며, 이에 앞서 한 차례 더 사업분과위원회를 열어 KDDX 사업 방식을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KDDX 사업은 대한민국 해군과 방위사업청이 추진하는 7100톤급 차세대 구축함 개발 프로젝트다. 국내 기술로 설계·건조되는 최초의 구축함으로,정 부는 2020년부터 2036년까지 총 1조8천억원의 개발비와 6조원의 건조비를 투입해 KDDX 6척을 확보할 계획이다.
당초 KDDX 사업은 2023년까지 기본 설계를 완료하고 2024년부터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를 추진할 예정이었으나,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법적 분쟁과 과열 경쟁으로 인해 사업자 선정이 지연됐다.
해당 사업은 개념 설계 → 기본 설계 → 상세 설계 및 선도함 건조 →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개념 설계는 당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 기본 설계는 HD현대중공업이 맡았다. 기존 관례에 따라 기본 설계 업체가 상세 설계와 선도함 건조까지 담당하는 방식이 유력했지만,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의 군사기밀 탈취 혐의가 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되면서 사업자 선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각각 자사에 유리한 방식을 주장하며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기본설계를 담당한 만큼 기존 절차에 따라 선도함을 수의계약으로 자사가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화오션은 공정한 경쟁입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방추위 최종 의결 전에 분과위 경과에 대해 방산업체 차원에서 입장을 밝히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면서 “그동안 기업의 입장은 충분히 전달된 만큼, 이제는 규정과 원칙에 따라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결정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이번 분과위 안건 보류는 그동안 일방적으로 추진돼 온 ‘수의계약’ 방식의 부당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이라며 “한화오션의 KDDX 사업은 경쟁입찰 방식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전력화 지연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고 K-해양방산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동계약 방안에 대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하나의 방안으로 검토되는 공동설계도 협력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어 해당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 실제로 지난달 초 신현승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은 상세설계와 선도함 건조를 기술적으로 분리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공동설계 방식도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고 언급한 만큼 공동설계 방안이 실제 적용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방산 수출 시장에서는 한국군이 실제 운용하는 무기를 통해 안정성과 품질이 검증됐다는 실증기록(트랙 레코드)이 매우 중요하다. 바로 이 점 때문에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KDDX 사업 수주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술 난도가 높은 한국형 차기 구축함을 직접 설계·건조한 경험은 글로벌 특수선 시장에서도 강력한 경쟁 우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사업 지연에 따라 해군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KDDX는 해군 전력 강화의 핵심 사업인 만큼, 지연이 길어질 경우 전력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북한의 위협이 고도화되고 주변국 해군력이 증강하는 상황에서 전력화 지연이 국가 안보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함정 전력화가 지연되자 양용모 해군참모총장은 지난달 말 이례적으로 두 업체에 서한을 보냈다. 양 총장은 서신을 통해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하고, 주변국은 해군력을 지속 증강하는 등 엄중한 현 안보환경 속에서 주요 함정의 전력화 시기 지연 상황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안건 보류가 방사청의 책임감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비판했다. 한 방산 분야 전문가는 “수의계약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방사청이 여론을 의식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결국 수의계약으로 결정할 예정이었다면, 두 기업에게 불필요한 혼란만 초래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제라도 방사청이 책임감을 갖고 KDDX 사업이 더 이상 지연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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