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백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의 한국 문화와 K컬처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유색(有色)과 방(幇)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색인종 여성 민주당 하원의원 4인방을 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Go Back to Your Country)'라고 트윗을 날렸다."
어느 뉴스 문장 일부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유색인종'은 유색(有色), 즉 '색깔이 있다'라는 의미다. 영어로는 'people of color', 'colored races/ people'이며, 이는 곧 '백인이 아닌 인종'(non-white people)이란 얘기다.
'유색'이라는 것은 자신들의 스킨(skin), 즉 피부는 무색(無色)이라는 뜻이 아니라 기본색·바탕색의 피부, 곧 기준점이라는 발상이다.
그래서 차별어다. 문제는 이를 대체할 만한 용어가 마땅치 않아 여태 대충 넘어가는 분위기로 여겨온 점이다.
독일어도 영어 'colored'에 해당하는 형용사 'farbig(파르비히)'가 조응하지만, 언론에서는 상대성·구체성을 부여해 'dunkelfarbig(둔켈파르비히)', 즉 '어두운 피부색'이란 용어를 쓴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 번거롭더라도 '다른 피부색', '다른 피부의'를 썼으면 한다.
'다른'은 '틀린'이나 '어긋난'이 아닌 당당한 대응이니까.
'유색인종 여성 의원'이라면 '다른 피부색 여성 의원'이 될 터.
좀 긴 느낌이지만 그래 봐야 한 글자 늘어나는 셈이다. 정착되기 전까지는 그나마 '비(非) 백인(白人)'이 중립적이다.
둘째, '4인방'이다. 여기서 방은 '幇'이다. '무리', '떼'를 뜻하는 접미사인데, 글자 아랫부분에 수건 '건'(巾)이 들어 있는 걸 보더라도 도둑 패거리와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부정적 의미일 때만 써야 옳다. 또 하나의 방증은 방조범(幇助犯), 방조죄(幇助罪)에서 잡힌다.
'어떠한 일을 거들어서 도와줌. 흔히 나쁜 일의 뒤를 돕는 경우'.
이게 방조의 사전적 의미다.
따라서 죄 없는 이 여성 의원들에게 '4인방'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그 집단 자체가 다수가 인정하는 네거티브한 이미지로 굳어 있으면 관계없다.
[방:조]로 길게 발음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되는데, 느낌상으로는 이해되지만 [방조]로 짧게 발음하는 것이 옳다.
◇ 여성에게만 쓰는 표현들
'재원'은 여성에게만 쓴다. '재주가 뛰어난 젊은 여자'가 재원(才媛)이다. 남자에 해당하는 말은 재자(才子)인데 잘 쓰이지 않는다.
여성 형태로만 존재하는 단어가 몇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게 모국(母國)이다. 할아버지의 땅 '조국'(祖國)을 쓸지언정 우리말에 '부국'(父國)은 없다.
'태극 낭자'할 때 '낭자'(娘子)도 그렇다. 원래 처녀, 처자를 높여 부르던 말이다.
여성을 놀리듯 칭하는 일종의 멸칭(蔑稱) '복부인', '김 여사'는 이제 쓰지 않는다. 복부인은 부동산 투기를 하는 주부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었지만, 비속어와는 다른 차원에서 양성평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김 여사 역시 운전이 서툰 여성을 얕잡고 희화화하는 낱말이다. 신문·방송에서도 몇 년 전부터 자취를 감췄다.
'꿀벅지', '에스라인', '브이라인', '베이글녀', '쭉쭉빵빵' 등도 몇몇 황색언론을 제외하고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다행한 일이다.
역도 올림픽 챔피언 장미란 선수처럼 기골이 장대하거나 통이 큰 여성을 '여장부'(女丈夫)라며 칭찬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여장부도 큰 틀에서 성평등에 반(反)하는 말이다.
'건장하고 씩씩한 사내'를 뜻하는 대장부라는 남성을 이미 전제, 상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안 쓰는 게 좋다.
주로 중·노년층 남성들이 친구, 지인 등의 아내를 지칭할 때 농담조로 혹은 진심으로 높임의 의미를 담아 '어부인'(御夫人)이라고 한다. 이건 일본말이다.
어(御)는 단어 앞에 붙여 존경이나 겸양의 뜻을 나타내는 일본식 접사다.
그냥 '부인'(夫人)이면 족하다. '남의 아내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참고로 요즘은 '여자'(女子)보다 '여성'(女性)이 더 많이 쓰이는 추세다. 전향적이다.
여자는 생물학적인 성을 기초로 하고 여성은 사회·문화적인 성을 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웬만한 교양적 화법이라면 여성이 더 어울린다.
예컨대 "이번 선거에서 여성의 힘을 보여줍시다" 에서 여성 대신 여자를 넣으면 다소 어색하게 느껴진다.
여(女)를 접두사로 두거나 여류(女流)를 단어 앞에 붙이는 것도 성평등에 어긋난다.
'여고생/여대생/여직원/여행원/여류 시인/ 여류 기사/여류 작가' 등이 그렇다.
남성이 기준·정상·보편의 가치를 띠고 여성은 '특이·이상·예외'라는 잠재적 의식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처녀림/처녀작'도 '원시림', '첫 작품'이라는 성평등 단어로 고쳐야 한다. '처녀'라는 단어가 정조, 순결이라는 봉건적 여성성을 떠올리게 되는 기제(機制)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줄기세포 관련 '처녀생식'도 '단성(單性)생식'으로 용어가 바뀐 지 오래다.
최악의 차별어는 미망인(未亡人)이다. 어감이 상대적으로 예뻐 종종 쓰이지만, 이 말의 본뜻은 '남편이 죽을 때 같이 죽어야 했지만, 미처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다.
적어도 일상어에서는 버려야 한다.
강성곤 현 KBS 한국어진흥원 운영위원
▲ 전 KBS 아나운서.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전 건국대·숙명여대·중앙대·한양대 겸임교수. ▲ 전 정부언론공동외래어심의위원회 위원. ▲ 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어특위 위원. ▲ 현 가천대 특임교수.
* 더 자세한 내용은 강성곤 위원의 저서 '정확한 말, 세련된 말, 배려의 말', '한국어 발음 실용 소사전'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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