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명문대 학생 20명이 고등법원에서도 정치적 폭력과 살인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17일(현지시각) 방글라데시 현지 매체 다카트리뷴과 데일리스타 등에 따르면, 전날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은 정부 정책을 비판한 동료 학생을 집단 폭행해 살해한 혐의로 하급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방글라데시 공학기술대(BUET) 학생 20명과 종신형을 선고받은 5명에 대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유지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9년 10월 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BUET에서 전기전자공학을 전공하던 2학년생 아브라르 파하드(당시 21세)는 페이스북에 셰이크 하시나 당시 총리가 인도와 체결한 물 공유 조약을 비판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다카트리뷴에 따르면, 파하드는 이 글에서 정부의 결정이 방글라데시 국민에게 불리하다고 주장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해당 글이 올라온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여당 아와미연맹(AL)의 학생 조직인 방글라데시 차트라 리그(BCL) 소속 BUET 학생 25명이 파하드를 공격했다. 이들은 셰르에방글라 기숙사 2011호로 파하드를 끌고 가 크리켓 배트와 기타 둔기를 사용해 약 6시간 동안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파하드가 구토와 실금을 했음에도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파하드는 다음 날 새벽 기숙사 계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파하드는 심각한 둔기 외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BUET는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권위 있는 공학 교육기관으로 꼽힌다. 데일리스타는 이 대학이 우수한 인재를 배출하며 국가 발전에 기여해왔다고 전했지만, 동시에 정치적 갈등과 폭력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BCL은 아와미연맹의 지원을 등에 업고 학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악명을 떨쳤다. 다카트리뷴에 따르면, BCL은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하거나 정부 비판 세력을 공격하는 데 자주 동원됐고, 금품 갈취와 폭력 행사로 캠퍼스 내에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2018년에는 도로 안전 문제를 둘러싼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 BCL 멤버들이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혐의로 비난받기도 했다.
사건의 진상이 알려지자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격렬한 반응이 쏟아졌다. 다카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수천 명의 학생이 거리로 나와 항의 시위를 벌였고, BUET 학생들은 학내 정치 활동 금지를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건 발생 일주일도 안 돼 BUET 당국은 캠퍼스 내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BCL 소속 19명을 포함한 관련 학생들을 정학 처분했다. 당시 하시나 총리는 이례적으로 공식 성명을 발표해 철저한 조사와 엄중한 처벌을 약속하며 여론을 달래려 했다. 유엔 역시 방글라데시 학내 폭력의 심각성을 우려하며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법적 절차는 2021년 12월 8일 하급 법원에서 첫 결론을 맺었다. 다카 제1 신속재판소의 아부 자파르 모하마드 카마루자만 판사는 “이 사건이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며 BCL 소속 20명에게 사형을, 5명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데일리스타는 사형 선고 인원이 20명에 달하는 것이 방글라데시 사법 역사에서도 드문 사례라고 전했다. 종신형을 받은 5명에게는 각각 5만 타카(약 6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됐으며, 미납 시 1년 추가 징역이 선고됐다. 피고인들은 즉각 항소했다. 이번 고등법원 판결은 그들의 항소와 사형 선고에 대한 필수 검토 절차(데스 레퍼런스)를 종합해 나온 결과다. 고등법원은 AKM 아사두자만 판사와 사이드 에나옛 호사인 판사로 구성된 2인 재판부가 심리를 진행해 원심을 확정했다.
모하마드 아사두자만 법무부 장관은 다카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법치와 정의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며 “피고인들은 상급 법원에 항소할 권리가 있으며, 법이 보장하는 모든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사형 집행을 위해 필요한 법적 준비가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파하드의 아버지 바르카트 울라는 데일리스타에 “고등법원의 판결에 만족한다”면서도 “법적 절차가 신속히 마무리돼 정의가 실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파하드의 동생 파이야즈 역시 “예상보다 빠른 판결에 만족하지만, 아직 많은 법적 단계가 남아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모든 피고인을 처벌하기엔 난관이 남아 있다. 다카트리뷴에 따르면, 사형 선고를 받은 20명 중 4명이 현재 도주 중이다. 특히 문타시르 알 자미는 지난해 8월 카시푸르 중앙교도소에서 정치적 혼란 속에 탈옥해 행방이 묘연하다. 사건 직후부터 주요 공모자로 지목된 자미의 탈주로 인해 판결 집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나머지 도주자 3명도 사건 발생 후 잠적한 상태다. 경찰은 이들을 추적 중이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피고인 측 변호사 아지주르 라흐만 둘루는 고등법원 판결에 실망감을 표하며 “상급 법원인 항소부에 상소해 정의를 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데일리스타에 “피고인들은 모두 뛰어난 학생이었고 전문 범죄자가 아니다”라며 선처를 호소했지만,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파하드의 어머니 로케야 카툰은 2021년 하급 법원 판결 직후 “사형 선고자뿐 아니라 종신형을 받은 이들도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며 강경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방글라데시에서 사형은 흔한 형벌이다. 수백 명이 사형수 신분으로 수감돼 있다. 데일리스타는 이번 사건이 학내 정치 폭력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BUET 부총장 사티야 프라사드 마줌더는 “이 판결로 교육기관 내 폭력이 줄어들길 바란다”고 전했다.
파하드 사건은 이후 ‘7월 혁명’으로 불리는 대규모 반정부 운동의 도화선이 됐고, 그의 죽음 5주기인 지난해 10월 7일에는 다카에서 추모 집회가 열렸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이날을 ‘국가 반폭력의 날’로 지정하라는 요구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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