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이, 그것도 바이든 행정부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민감국가' 지정이라는 선물(?)을 전해준 것에 대해 말들이 많다. 여당은 야당의 탄핵남발이 원인이라고 하고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가 주요 요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대치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DOE)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임기 만료 직전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 국가'(Other Designated Country)에 추가했다.
이와 관련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방송에 출연해 "미국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와 우리나라 연구소 간에 많은 글로벌 공동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올 한 해 약 120억 규모의 공동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히고 "공동 연구 자체가 무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규정에 의해서 45일 전에 미리 신고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불편한 점이 나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언론은 이에 대해 미국이 한국을 북한과 같은 범주에 넣었다고 흥분을 하지만 이스라엘과 대만 등이 우리와 같이 '기타 지정국가'에 지정된 것을 보면 그 내용을 좀더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감한 외교문제 정략적 대응으로 일관, 한미 동맹관계는 물론 북중러 관계 파탄으로 이어져
최근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17'의 중국 개봉을 계기로 사드배치 이후 수년째 이어져온 '한한령'이 해제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에 관련주들이 급등하는 일도 있었는데 그렇다면 한중관계에 그토록 엄혹한 결과를 가져온 사드배치는 도대체 어떤 과정을 통해 도입이 되었던가.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에 근무했던 고위관계자에게 들은 말이다.
"우리 정부가 사드 배치를 결정한 것은 중국의 책임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서방국가들이 외면했던 중국 전승절 행사(2015년)에 참석한 것은 중국이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시켜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의 핫라인도 개설을 했다. 하지만 북한이 막상 핵 실험을 강행하자 그런 핫라인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에 박 대통령은 중국에 경고를 날리기 위해 사드 배치를 전격 결정한 것이었다"
2016년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면서 "최초의 수소폭탄 핵실험이 성공했다"고 선전하던 것에 긴장감을 느끼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에게 전화를 할 때는 무시하더니 같은 해 2월 5일에는 시진핑 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사드 배치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배치 반대를 설득한 것에 분개하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후 한·중 관계가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에서 일했던 고위 관계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이른바 보수정부의 대중국 외교에 치밀함보다는 감정적 대응이 우선했음을 알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이 설령 어쩔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해도 외교적 절차를 너무 무시한 것은 실책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중국과 큰 마찰이 있었다. 바로 미군 기지의 평택 이전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중국은 서해안에서 중국을 바로 감시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에 미군 기지를 이전하는 것은 북한이 아니라 바로 중국을 겨냥하는 태도라고 긴장을 했다. 평택 미군 기지가 중국 서부를 감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서 중국이 반발하는 내용과 별차이가 없었다. 해서 당시 우리 정부(노무현 정부)는 그 전부터 지속적으로 중국을 설득했다. 중국에 전혀 피해가 가지 않게 관리하겠다고 설득한 것이 그래도 인정을 받아 중국의 반발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 과정을 보면 그같은 중간 과정이 빠져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전인 2015년 9월 3일 중국에서 실시하였던 전승절에 직접 참석, 미국 조야(朝野)를 경악하게 하면서까지 중국의 비위를 맞추었는데 북한 핵개발이라는 결과물 외에는 얻은 것이 없어 분노한 것은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후 한중관계가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아쉬움은 아주 크게 남는다.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을 '민감국가'에 분류한 것을 두고 여야 책임공방이 거세지만 계엄 이후 한국에서 전개된 상황을 보면 우리 정치권 모두의 책임임을 굳이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 12월 계엄 국면에서 국회에 출석한 김어준씨가 "한동훈을 사살하려는 암살조가 있었고 미군을 사망에 이르게 해서 미군의 북폭을 유도하려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증언하고 그 제보를 "우방국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들었다"고 해서 큰 파장이 일었다.
군장성 출신인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방송에 출연해 "미국 측에서 많은 정보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는데, 여기에다 미국이 한국군 동향을 도청해서 얻은 정보일 수도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이 문제는 자칫 이번 계엄에 미국이 개입하지는 않았더라도 방조한 것 아니냐는 뚜렷한 근거없는 의심론으로 확산될 수도 있는 매우 가연성이 높은 이슈였다.
게다가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윤석열 대통령 1차 탄핵안에서 "북중러와 멀리 하고 미국, 일본에 치우친 외교정책"을 문제삼은 대목에 미국이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 탄핵안이 나온 뒤 에반스 리비어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수석 부차관보는 "윤 대통령이 미국, 일본과 협력한 내용이 탄핵 사유로 포함된 건 매우 충격적(very disturbing)"이라고 평했다.
결국 외교 관련 대목은 이재명 대표의 지시대로 2차 탄핵안에서는 빠졌다.
계엄 이후 진보계열 일부 유튜버들은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추진 과정에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의 도움을 얻었다"는 내용을 퍼트리려고 시도하다 전혀 반응이 없자 그냥 접기도 했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암약하던 중국요원 99명을 미군이 체포했다는 내용만큼이나 황당한 스토리였다.
아무튼 미국이 우리나라를 '민감국가'로 지정한 것은 혼돈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 정치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믿었던 윤석열 정부가 자칫 주한미군은 물론 한국에 체류중인 수십만명의 미국인들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비상계엄 선포를 사전에 알리지 않은 행태에 불안감을 느끼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지나치게 친(親) 우크라이나 정책으로 일관한 윤석열 정부의 외교전략으로 러시아와도 큰 갈등을 빚은 것도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북한군의 러시아 전선투입에 자극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 제공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최악의 단계 직전까지 갔다.
노태우 정부에서 시작된 북방외교의 성과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계엄 탄핵 국면을 거치면서 한미일 협력구도까지 망가지는 것을 보면 향후 한국 외교에 닥쳐올 시련의 무게가 가늠조차 되지 않은 실정이다.
◇외교문제를 국내정치 갈등에 활용하는 근시안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바이든 행정부가 임기 말기에 한국을 민감국가에 분류한 것에 대해서도 여야가 서로 책임공방만 벌일 뿐이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고민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거듭 지적하지만 국내 정치에서 남북문제를 포함한 외교문제는 그저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 외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이미 대다수 국민들은 눈치채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박근혜 정부에서 일본 아베정부와 합의한 위안부 문제를 뒤집으면서 일본의 경제보복을 경험한 바 있는 한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미국, 일본은 물론 러시아, 중국과도 외교관계를 벼랑끝까지 몰고가는 갈짓자 행보를 보여와 이미 국제 외교무대에서 신뢰를 잃은지 오래됐다.
때문에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말도 안되는 황당한 음모론이 거침없이 유포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일본에 나라를 팔아넘기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문재인 정부는 물론 이재명 민주당까지 조종하고 있다"
이런 각종 음모론이 득세하고 있는 와중에 미국의 '민감국가' 목록에 이름을 올린 나라중에 미국과 '상호 방위 조약'을 맺은 동맹국은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이 지정한 '민감국가'에 이름을 올리게 되면 원전(原電)은 물론 반도체, AI(인공지능), 양자, 바이오테크 등 첨단산업 분야까지 한미 협력관계는 중대한 차질을 빚게 된다.
문제는 단순히 첨단기술 한미간 협력에 차질이 온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방위비, 관세 등 한국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이처럼 좋은 협상무기는 없을 것이다.
반미, 반일, 반중, 반러, 반북 등 무조건 반(反)으로 시작하는 외교 정책으로는 향후 격동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짐을 여야 정치권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진지하게 받아들여할 시점이 아닐 수 없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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