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국경이 없는 곳이 있다. 돈이 없고, 도시가 없으며, 인간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땅. 문명이 비워진 자리에서 인간이 어떻게 다시 작고 단순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곳. 소설가 김금희가 일찍이 남극에 끌린 건 그곳에 ‘없는’ 것들 때문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지구상에 그런 ‘없는 상태’가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숨이 좀 트였다.” 작년 2월, 그는 어릴 적부터 품은 남극 탐험의 꿈을 기어코 이루어냈다. 취재기자 자격으로 남극에 한 달여간 머무르며 체류기를 한겨레에 연재한 뒤 책 『나의 폴라 일지』로 묶었다.
그 ‘없음’의 대륙에도 존재하는 것들이 있었으니, 붓 모양 꽁지깃을 지닌 젠투펭귄과 ‘꾸르꾸르땍’ 우는 턱끈펭귄, 남극의 최상위 포식자라 불리는 스쿠아, 바위처럼 누워 있는 물개와 ‘꿀렁꿀렁’ 기어다니는 해표, 검고 노란 빛의 지의류 우스네아와 같은 생명들이었다. 알면 알수록 남극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땅이 아닌, 또 다른 질서가 있는 세계였다. 무엇보다도, 기지의 동료들이 있었다. 안전을 위해 최소 2인 1조로 외출하는 것이 필수고 매일의 일과를 보고해야 하는 그곳에서, 김금희 소설가는 그냥 김금희가 되었다. 도시에서 지녔던 소설가라는 정체성과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울타리를 거두고, 그저 더 큰 공동체 속 일부로서 존재하는 방식에 익숙해졌다. 게다가 그곳의 주류는 펭귄이었다. 비펭귄인간으로서, 커다란 자연에 속하는 하나의 종이라는 감각으로 매일을 그저 ‘살았다’.
인간처럼 펭귄도 개중 좀 늦된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이 왜 이렇게 고마울까. 가장 강한 것만 존속하지 않고 저마다 다른 힘과 속도를 지닌 존재들이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질서라는 사실이. - 『나의 폴라 일지』 중에서
자연의 질서를 관찰하고, 순순히 그 일부로 머무르는 시간. 그러나 언뜻 평화로워만 보이는 그 고요 속에서도 변화는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리 남극의 여름이라지만, 자갈로 뒤덮인 풍경을 보며 그는 걱정스러웠다고 고백한다. 기지에서 함께 생활하는 연구자들과의 식탁 위 대화 주제는 종종 기후 변화였는데, 역세권도 숲세권도 아닌 ‘침세권’이라는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었다. 가까운 미래, 우리는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어디가 물에 잠기고 어디가 안전할지를 고민하며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책이 위기의식만을 강조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김금희는 남극으로 향하는 여정에서 ‘작은 낙관’을 발견한다. 19세기 남극해에서는 고래 180만 마리가 살상됐다. 그러나 남극 조약 발효 후 고래는 고기, 가죽, 기름을 얻기 위한 대상에서 보호하고 존중해야 하는 생명체가 되었다. 자연을 대상화하던 시대에서 우리는 이미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시대로 넘어왔다. ‘생명에 대한 경이와 사랑을 택한’ 이러한 ‘마음의 변화’야말로 인류의 진보와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그는 분명 힘주어 말하고 있다.
입원한 아빠와 나누는 에필로그의 대화 장면에서 알 수 있듯, 어떤 대화나 대면은 때때로 ‘그간 보지 못한 삶의 어느 측면’을 비로소 볼 수 있게 해준다. 낯선 경험은 상황을 보는 새로운 각도를 더하고, 우리를 자라게 한다. 자연의 리듬 속에서, 느리고 서툰 존재들과 공존하는 법. 그리고 언어로 다 담을 수 없는 감정들을 받아들이는 법. 작가는 그 모든 것을 펭귄의 보폭으로 천천히 배웠다. 독자인 우리에게도 묻는 듯하다. 당신의 남극은 어디 있느냐고.
‘없음’의 대륙을 다시 떠올린다. 너무 많은 것에 둘러싸인 우리 삶을 돌아본다.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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