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 500지수 최고점 찍고 16거래일만에 조정국면…"이례적 속도"
월가, 관세정책 '진심' 확인에 목표주가 잇따라 하향…"저가매수 기회" 의견도
[뉴욕 EPA=연합뉴스]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역전쟁 격화에도 불구하고 고율 관세 정책을 고수한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하자 13일(현지시간) 뉴욕증시의 대표지수가 조정국면으로 추락하면서 투자 심리를 더욱 위축시켰다.
관세가 트럼프 행정부의 단순한 협상 전략에 불과하다고 치부해왔던 월가 분석가들은 "이건 예상 밖이다"라는 반응을 보이며 뉴욕증시 주가 전망치를 속속 낮추고 있다.
◇ 美증시 이례적 빠른 조정 속도…트럼프 정권서만 3번째
이날 뉴욕증시를 대표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장 대비 1.4% 하락한 5,521.52에 마감, 최근 고점 대비 10.1% 하락하며 기술적 조정국면에 접어들었다.
지난달 19일 최고점을 기록한 이후 이날 조정국면에 진입하기까지 소요된 기간은 불과 16거래일로, 통상 2개월 안팎에 걸쳐 진행되는 조정장과 비교할 때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로 조정이 이뤄졌다.
블룸버그는 이번 조정이 미 증시 역사상 1929년 이후 7번째로 빠른 속도로 이뤄졌으며, 속도가 빨랐던 7회의 조정장 중 3회는 트럼프 1기 재임 시절인 2018년과 2020년, 그리고 이번에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뉴욕 EPA=연합뉴스]
◇ 트럼프 "관세, 굽히지 않을 것"…美재무 "증시 변동성 우려 안해"
역사적으로도 빠른 투자심리 냉각은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 대한 월가의 커지는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서 유럽연합(EU)이 미국산 위스키에 50% 관세 부과를 예고한 것에 대한 대응으로 EU에서 수입하는 주류 제품에 2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관세 정책과 관련, "약간의 혼란이 있을 것이나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나는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 3주간의 작은 변동성에 대해 우려하지 않는다"고 한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의 이날 인터뷰 발언과 맞물려 다시금 투자자들의 우려를 자극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침체 가능성 질문에 "과도기(transition)가 있다"라는 말로 응답한 게 다음 날 증시 투매로 이어진 지 불과 며칠 만이었다.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 낙관론 펼치던 월가, 이젠 증시전망 경쟁적으로 하향
얼마 전까지 경쟁적으로 주가 전망을 상향 조정했던 월가 전문가들은 이제 경쟁적으로 주가 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행보가 예상했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증시 강세론자인 투자 컨설팅 업체 야드니 리서치의 에드 야드니 회장은 전날 투자자 메모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가 다른 나라의 관세를 낮추고 자유무역을 촉진하기 위한 협상용 카드가 아니라는 사실이 명확해졌다"라고 말했다.
야드니 회장은 "우리는 여전히 미국 경제의 회복성에 베팅하겠다"라면서도 올해 S&P 500 지수 전망치를 종전 7,000에서 6,400으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에 앞서 골드만삭스는 관세 정책 충격을 고려해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1.7%로 낮춘 데 이어 S&P 500 지수 전망치도 종전 6,500에서 6,200으로 낮췄다.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 일각선 "증시 반응 과도" 시각…JP모건운용 "5,500선 아래선 저가매수"
트럼프 관세 정책의 불확실성이 큰 가운데 월가 전문가들은 주가 하락세가 좀 더 이어지는 등 미 증시의 변동성이 당분간 확대될 수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최근 증시의 반응이 과도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JP모건체이스의 니콜라스 파니기르조풀로스 전략가는 회사채 시장에 반영된 미국의 경기침체 확률과 비교해 미국 증시에 반영된 침체 확률이 크다며 미 증시의 반등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초기에 더욱 파괴적인 정책을 우선시할 경우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겠지만, 회사채 시장이 옳은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회사채 시장이 증시보다 좀 더 냉철하게 경기침체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다고 보는 가운데 증시가 악재에 과민 반응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회사 웨이츠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도 최근 보고서에서 "미 증시 조정 기간 평균 손실은 약 13%였으며, 역사적으로 약 4개월 정도 걸려 회복됐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시장 조정은 장기 투자자 입장에서 레이더 화면에 나타나는 작은 점에 불과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현재 조정 수준이 10%라는 점을 고려하면 낙폭이 더 커질 수 있지만, 장기 투자자들은 공포심에 휩싸여 주식을 매도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JP모건자산운용의 글로벌시장 전략가인 데이비드 레보비츠는 11일 보고서에서 S&P 500 지수가 5,500선 밑으로 떨어지면 기술주 또는 금융주를 저가 매수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책 불확실성 확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의 월가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글로벌 무역전쟁을 더욱 가속할 수 있다고 보는 탓이다.
투자 전문지 배런스에 따르면 라운드힐 인베스트먼트의 데이브 마자 최고경영자(CEO) 등은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주식 시장이 고통받는 것에 대해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결과적으로 관세의 범위와 경제성장의 단기적 궤도에 대한 불확실성이 모두 높아진 상태"라며 "특히 성장세가 이미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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