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상에게 '고독한 미식가'는 '먹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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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상에게 '고독한 미식가'는 '먹방'이 아니다

엘르 2025-03-14 01:58:29 신고

언어를 포함해, 특정한 나라의 문화를 주로 다루는 작품이 다른 나라에서 사랑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그럼에도 기어코 문화의 장벽을 뛰어 넘어 보편적 공감을 자아내는 이야기들은 존재합니다. 올해로 방영 13년차를 맞는 테레비 도쿄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처럼 말이예요.



이 드라마는 한 중년 남성이 길을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배가 고프다"고 방백한 후 주변 음식점으로 들어가 밥을 먹는 걸로 한 회차를 채웁니다. 등장하는 인물도 거의 없다 보니 대화랄 것도 없습니다. 주인공인 아저씨가 소리를 내어 입 밖으로 꺼내는 말은 "잘 먹겠습니다"와 "잘 먹었습니다" 정도죠. 이렇게 설명한다면 정말이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는 일본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서 오랜 시간 인기를 얻으며 수많은 마니아들을 보유하게 됐어요. 테레비 도쿄 60주년 기념으로 〈고독한 미식가〉의 첫 번째 극장판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세계의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 덕일 겁니다.


13년 동안 〈고독한 미식가〉의 이노가시라 고로를 연기한 마츠시게 유타카는 이번 극장판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에서 주연은 물론, 감독과 각본까지 맡았습니다. 지난해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프리미어 상영에 맞춰 한국을 찾았던 그는 영화의 한국 정식 개봉과 함께 다시 한 번 내한했습니다. 마츠시게 유타카는 13일 열린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가장 먼저 우리나라의 팬들부터 언급했는데요. "한국 관객들의 애정은 길거리를 걷다가도 실감할 수 있다"라며 "일본보다도 한국의 젊은 관객들이 더 잘 봐주고 계신 것 같아 개봉을 기대하는 마음 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영화 제작 단계에서 봉준호 감독에게 이 작품을 연출해 줄 수 있겠냐고 편지를 보냈던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죠. 공교롭게도 최근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이 상영 중인 터라, 두 사람은 감독으로서 한국 박스오피스에서 맞붙게 됐습니다. 이를 두고 마츠시게 유타카는 "설마 봉준호 감독과 같은 시기에 관객들을 함께 의식하는 입장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라며 놀라워 했어요. 재미있는 건 그가 출연한 또 다른 영화 〈라스트 마일〉이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개봉 일주일 후에 한국 극장에 걸린다는 점입니다. 마츠시게 유타카의 팬이라면 매우 기쁜 소식이겠네요.


처음으로 한 영화의 주연부터 각본과 감독까지 전부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그에게 쉽지 않은 작품이었을 거예요. 마츠시게 유타카는 자신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리더십을 발휘해 이끌어야 했던 것보다, 아시아 각국의 관객들이 극장에서 작품을 봐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힘들었다고 털어 놨습니다. 그렇다면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감독으로서 본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는 어땠을까요?


감독으로서 본다면, 그(마츠시게 유타카)는 그럭저럭 잘 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저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놀라운 연기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안심하면서 볼 수 있는 배우죠. 그는 꽤 괜찮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위트 있는 답변으로 웃음을 준 '감독' 마츠시게 유타카는 곧 진지해졌습니다. 영화를 통해, 특히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까지 말했죠. 그는 "한국 영화가 일본 영화보다 몇 보 앞서 있다는 감각이 있다. 한국의 영화 만드는 방식 등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한국은 (일본과) 가까운 곳이고, 여러 의미로 협력해 나가야 하는 사이다. 앞으로 세상에 어떤 파도가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를 넘기 위해 협력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한일 간의 인연을 잇는 데에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 같은 영화가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면서요.


영화에는 한국의 섬과 식재료가 큰 비중으로 등장합니다. 한국 배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마츠시게 유타카는 유재명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는 "말로 소통하지 않고 표정과 행동만으로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는 장면을 찍고 싶었다"라며 "3년 전부터 그런 배우를 찾기 위해 한국 영화를 많이 봤는데, 영화 〈소리도 없이〉 속 유재명의 연기를 보고 '아, 이 사람이다' 싶어 제가 열렬하게 러브콜을 보냈다"라고 말했죠. 그러면서 "(유재명은) 제 생각보다 훨씬 제작 의도를 잘 파악하고 연기하는 분이었다. 일본에서도 그가 나오는 부분이 영화의 정점이라고 말할 정도로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마츠시게 유타카는 최근 성시경과 넷플릭스 예능 〈미친맛집: 미식가 친구의 맛집〉에도 출연했는데요. 성시경을 친근하게 '성시경짱'이라 부른 그는 아쉽지만 본격적으로 한국 예능에 진출할 계획은 없다고 합니다. 다만 이를 두고 "지난해 가을 TV 시리즈로 〈저마다의 고독한 미식가〉가 나왔는데,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여러 상황에서 이노가시라 고로처럼 미식을 하는 옴니버스 스토리다. 이 시리즈의 한국판을 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라고 했죠.


언급했듯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의 인기 요인은 단연 '보편적 공감'입니다. 어떻게 보면 '원조 먹방'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드라마는 '먹는다'는 행위에 '고독'을 가미해 방해 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감각적 치유를 공유합니다. 마츠시게 유타카가 여기에 더불어 극장판을 통해 그리고 싶었던 건 '고독하게 먹는 사람의 주변인'이었습니다.


'먹는다'는 건 그 어떤 나라에서도 살기 위해, 또는 행복하기 위해 하루에 몇 번이고 이뤄지는 행위입니다. 거기엔 공감과 놀라움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깃들어 있죠. 아저씨가 밥을 먹는 것이 전부인 작품을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재밌게 봐 주는 것도 이 같은 감정들을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번엔 (이노가시라 고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는 잡화상인 이노가시라 고로가 프랑스에 살고 있는 한 노인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죽기 전에 고향 일본에서 먹었던 국물 요리를 꼭 한 번 더 먹고 싶은데, 어릴 적 기억이라 요리의 별칭과 맛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없는 거예요. 아무리 고객이어도 단칼에 거절할 법한 의뢰지만, 이노가시라 고로는 이를 받아들입니다. 심지어 '국물 찾기'에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거는' 상황들이 이어지죠. 이야기는 시종일관 따뜻하게 데워진 국물 같지만 어딘가 비현실적인 맛이 납니다.


마츠시게 유타카는 "실제로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한다면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이노가시라 고로처럼 무모한 짓을 하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손사래를 칩니다. 하지만 그는 영화라는 매체의 어떤 본질을 말하며 자신의 첫 작품을 변호했습니다.


영화는 때론 기쁨이기도 하고, 놀라움이기도 합니다.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에서 주목해줬으면 하는 건 이 감정들입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아니냐'고 할 법한 영화 속 거짓말들을 관객들로 하여금 '진실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극 중 인물들의 관계를 보면서 비현실적인 설정들을 납득하게 되고, 결국 대담하게 영화를 즐기게 되는 거죠. 그럼에도 '말이 됩니까?'라고 하신다면 저는 '미안합니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웃음).



마츠시게 유타카는 그러면서 〈고독한 미식가〉 시리즈는 '먹방'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음식의 맛 자체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다. '먹는다', '맛있다'는 감각을 표정이나 잠깐의 공백 같은 것으로 공감하게 만드는 작품"이라며 "항상 배고픈 상태에서 촬영을 하는데, 음식이 '맛있다'는 기억을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이 기억에 거짓이 없다는 사실이 이 작품의 훌륭한 점"이라고 설명했어요.


13년째 뭉근하게 이어져 온 〈고독한 미식가〉이지만, 언젠가는 끝을 마주할 날도 올 거예요.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도 마츠시게 유타카와 함께 나이를 먹을 테고요. 마츠시게 유타카도 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는 "연령도 그렇고,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저도 하고 있다. 이 작품은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굉장히 힘들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게 된다 하더라도 이 힘듦을 다 제거하고 넘겨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요. 이어 "제작 체제 같은 부분도 그렇고, 제가 촬영하며 괴로웠던 부분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여전히 마츠시게 유타카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고로상'의 표류기,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는 19일 한국 개봉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영화를 볼 관객들에게 엔딩크레딧이 전부 올라갈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한국 관객들에게 남기는 '고로상'의 특별한 메시지를 보고 싶다면, 끝까지 남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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