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한 파묵이 쓴 14년치 일기장 '먼 산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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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한 파묵이 쓴 14년치 일기장 '먼 산의 기억'

바자 2025-02-05 08:00:00 신고


어느 작가의 일기장


오르한 파묵의 14년치 일기장에서 ‘쓰는 노동’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일곱 살 때부터 화가를 꿈꿨지만 스물둘 무렵 내 안의 화가를 죽이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사람. 그럼에도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망이 마치 성욕 같아서 이따금 당장에 연필과 물감을 잡고 노트를 펼치고 만다는 예술가. 하지만 가장 큰 행복은 언제나 소설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몽상가. 2006년, 54세의 나이에 튀르키예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요악하자면 오르한 파묵은 때때로 그림을 그리고 언제나 글을 쓰는 사람이다.
〈먼 산의 기억〉은 그가 14년간 쓴 그림일기를 4백 페이지로 압축한 책이다. 페이지마다 작가가 직접 쓴 몰스킨 다이어리의 단면을 함께 실었다. 가로 8.5cm, 세로 14cm의 손바닥 만한 노트에는 깨알 같은 글씨가 빼곡하다. “마치 세상을 이 공책 안에 숨기고 있는 것 같다”는 작가의 말처럼 거기엔 미국 화가 레이먼드 페티본과 사이 톰블리를 동경하는 마음부터 여행 전의 우울함에 대한 단상 같은 사소한 이야깃거리가 넘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일기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쓰는 일에 관한 것이다. 소설 〈페스트의 밤〉 을 쓸 때 지나온 고민과 영감을 준 대상, 매일 글을 쓰는 작업실의 풍경 같은 것들. 어느 날엔 하루 열두 시간씩 글을 쓰며 등장인물에 흠뻑 빠져 있는 기쁨을 설명했다가, 한두 장 책장을 넘기면 몇 달간 아무것도 쓰지 못해 고통받는 괴로움을 토로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다분하다. “매일매일이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 우리는 순간을 살고, 시간은 흐르고,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꿈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배가 출항한다. 배를 보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꿈을 꾸자. 내가 파도라면. 그렇다.” 유유히 흐르는 매일을 살아내고 기록하는 일에는 거창한 의도도 목표도 없다. 쓰는 행위의 순수한 즐거움만 있을 뿐. 일흔을 훌쩍 넘긴 작가는 오늘도 행복하기 위해 성실하게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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