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의 노래 ‘술 한잔 해요’가 떠오르는 계절이다. 그리운 사람 만나 따끈한 국물 앞에 놓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만 싶다. 속절없이 흐른 시간 너는 어떻게 보내었느냐고 나는 이렇게 보냈다고 이야기꽃을 피워야지. 그간 보고 싶었던 마음 말로 전하기는 왠지 조금 느끼한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정작 만나서는 시시덕거리느라 시간을 다 쓰고 집에 갈 시간이 되어 또 다음을 기약한다. 중요한 말, 하고 싶은 말 고이 눌러 담아 편지로 전해보면 어떨까. 마음을 전하는 데는 편지만 한 것이 없다. 하고 싶은 만큼 공을 들여 내 마음 대변할 말들을 고르고, ‘오다 주웠다’는 듯 수줍게 틱 건네기만 하면 된다. 코끝이 찡해지는 건 상대의 몫. 분량도 자유다. 부담된다면 작은 엽서나 카드에 짧게 핵심만 적어도, 편지지 서너 장에 진심 어린 정성을 보여도 좋다. 준비되었는가. 편지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당신에게 영감을 줄 몇 권의 책을 소개한다.
1. 조금 더 쓰면 울어버릴 것 같다, 내일 또 쓰지
남하 지음 | 봉투북스 펴냄 | 136쪽 | 8,500원
그 사랑 일시적인 감정의 탓이었노라고 말할 것이라면 사랑이란 말을 증오해야지.
1985년부터 1988년까지 20대이던 아버지(남하)가 어머니(희)에게 쓴 50여 통의 편지를 모은 서한집이다. 부모님의 27주년 결혼기념일을 맞아 딸들이 기획한 독립출판물로, 당시 연인이던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편지 속에는 부모님 사랑의 역사뿐만 아니라 20대의 솔직한 고민이 다 담겨 있다. 보지 못해 그리운 마음, 군대에 있느라 희의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아쉬움, 자신의 나태한 생활에 대한 반성과 성찰 등…. 편지의 구절에서 따온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 진솔하면서도 절제된 사랑의 표현이 가득해, 연인에게 편지를 쓸 예정이라면 참고하기 좋을 것. 또는 부모님의 풋풋하던 시절을 상상하며 마음을 전해봐도 좋을 것이다. 한없이 진지한 표현으로 애절한 사랑의 마음 전하다가도 ‘보고 싶다. 빨리 와라. (응석 부린다) / 22일 날쯤 오면 좋다. 생일 선물 줄게. (오면)’ 같은 대목이 등장해 웃음을 터뜨리게 된다.
2. 연애편지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 이정순 옮김 | 을유문화사 펴냄 | 972쪽 | 38,000원
안녕이든 아듀든 저는 시카고에서 보낸 이틀을 잊지 않겠어요. 제 말은 당신을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위의 책이 우리 부모님―어쩌면 누구나―의 사랑 이야기라면, 이 책은 모두가 아는 유명 인사의 사랑 이야기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 페미니스트인 시몬 드 보부아르가 미국의 작가 넬슨 올그런에게 17년간 보낸 300여 통의 연애편지를 묶은 서한집. ‘계약 결혼’ 형태로 프랑스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와의 관계를 50년 넘게 유지한 것으로도 유명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여자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그런 보부아르를 ‘불쌍하게’ 여기려는 시도가 무색하게도, 책 속에는 넬슨을 향한 보부아르의 정열적인 사랑이 가득 담겨 있다. 시카고에서 지내는 연인을 위해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충실히 묘사한 덕분에 당대 파리의 문화예술계를 엿볼 수 있는 기록문학으로써의 가치도 충분하다. 서툰 영어로 자신의 진심을 적어 내려간 보부아르처럼, 어설픈 표현으로라도 한 자 한 자에 마음을 담아보자.
3. 두 개의 편지를 한 사람에게
봉주연 지음 | 현대문학 펴냄 | 192쪽 | 12,000원
우리가 할 수 있는 사랑을 다 해버릴까봐 겁이 나.
시와 편지는 어쩐지 닮았다. 잘 쓴 편지는 시적이고, 잘 쓴 시는 독자에게 건네는 편지 같다. 시집 한 권에 편지를 동봉해 보내는 선물도 낯설지 않으니, 둘은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시인은 시라는 형식을 빌려 독자에게 편지를 부친다. 수신인은 ‘너’ 혹은 ‘당신’이다. 시 속에서 시인은 자기를 고백한다. 편지는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독백적 공간인 듯도 하다. 편지를 쓸 때만큼은 혼자니까. 나는 아직 당신의 반응을 살피지 못하니까. ‘이제 이 정도의 비밀은 꺼내어볼 수 있지 않을까. // ‘편지를 받는 사람이 직접 뜯어보라’ / 겉봉에 적어 보냅니다.’ 이렇듯 시인은 독자를 수신인으로 상정하며 ‘나를 다 보여’주듯 문장을 적어 내려간다. 때로는 ‘그래서 당신, / 결말을 다 알고서도 같은 선택을 할 건지.’ 하고 묵직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편지를 빌려 시를 보내봐도 좋겠다. 마음에 드는 구절이 있다면 따라 적어 봐도.
4. 얀 마텔 101통의 문학 편지
얀 마텔 지음 | 강주헌 옮김 | 작가정신 펴냄 | 634쪽 | 18,000원
어떤 책이든 한 번 읽을 때마다 한 번의 삶이 더해집니다.
『파이 이야기』를 쓴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은 어느 날 우연히 무척 바빠서 책이라는 건 읽을 틈도 없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총리 스티븐 하퍼를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나를 지배하는 사람이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상상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결심한다. 격주마다 총리에게 읽어야 할 책과 편지를 동봉해 보내겠다고. 그렇게 총리의 관저로 4년간 날아든 101통의 편지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부터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까지, 지도자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권하는 동시에 문학의 효용에 대해서도 열정적으로 논하고 있다. 총리로부터는 간접적이고 형식적인 일곱 통의 답장을 받았을 뿐이라고 전해지는데… 얀 마텔이 보낸 편지는 고스란히 남아 이렇게 전 세계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참고가 되어주니, 잘 쓰인 편지는 그 자체로 유용하다. 오래도록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편지라는 형식으로 기록해 보면 어떨까.
[독서신문 이자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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