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도 보기 싫어요" 지역·세대 넘어 가족까지 파고든 극렬정치 갈등

"얼굴도 보기 싫어요" 지역·세대 넘어 가족까지 파고든 극렬정치 갈등

르데스크 2025-01-10 12:08:43 신고

3줄요약

#1. 서울에 거주하는 50대 직장인 김성훈 씨(가명)는 요즘 들어 부쩍 아버지와의 갈등이 늘었다. 학창시절에도 이렇게 갈등을 겪었던 적이 없다. 이유는 아버지의 과도한 정치 활동 때문이다. 은퇴 이후 소일거리를 하며 노후를 보내던 아버지가 친구를 따라 거리 집회에 한두 번 참여하더니 요즘엔 그 빈도가 부쩍 늘었다. 영하의 날씨에 혹시나 건강이 악화될까 우려돼 수차례 말렸지만 전혀 듣질 않았다. 심지어 얼마 전엔 감기 때문에 병원까지 갔는데도 다음날 바로 거리 집회에 나갔다. 김 씨는 안팎으로 바쁜 자신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긴 한국 정치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2. 경기도 수원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이유나 씨(가명)는 이번 설 명절에 부모님 댁에 가지 않기로 했다. 명절 때마다 아버지와 오빠가 다투는 탓에 남편과 아이들 얼굴 보기가 민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결국 얼마 전 일이 터지고 말았다. 두 사람이 다툰 이유는 다름 아닌 정치 이야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엔 연말 안부인사차 연락을 했다가 전화로 심하게 다툰 것이다. 어머니는 결국 앞으로 얼굴 보지 말자는 식으로 전화를 끊었다면서 올해 명절엔 각자 집에서 보내자고 통보했다.

 

정치 양극화에서 비롯된 부작용이 지역과 성별, 세대를 넘어 가족 단위까지 번졌다. 서로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가족 구성원 간에 갈등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가족 내 갈등이 심화될 경우 사회 전체의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가족 보다 이념을 중요하게 여기는 공산주의 붕괴가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들은 "사태가 더욱 심각해지기 전에 국민 모두가 나서서 정치 양극화를 조장하는 '비이성적 극렬정치'를 철저히 고립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성향 다르다고 집안싸움에 연애·만남 기피…국민 일상 깊숙이 침투한 편향정치 부작용

 

▲ 태극기집회에 참가한 보수단체 회원들. [사진=뉴시스]

 

종합교육기업 에듀윌이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20~40대 성인남녀 11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명절 연휴 가족 간 갈등을 일으키는 대화 소재 순위에서 '정치적 견해와 관련된 질문'이 3위에 올랐다. 응답률은 13.2%에 달했다. 1위 '대학 입시나 성적(15.8%)', 2위 '결혼 유무(14.9%)' 등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같은 조사에서 추석 연휴가 부담스러운 이유 중 1위는 '가족과 세대 간 갈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28.9%)'가 차지했다. 설문 결과를 정리하면 정치적 견해 차이에서 갈등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가족 간의 만남을 불편해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문제는 앞으로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정치적 갈등이 우리나라의 고질적 갈등 요인인 소득이나 세대, 젠더 등에 비해 더욱 심각하다고 여기는 국민이 급격하게 늘어난 탓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75세 남녀 39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 방안(Ⅹ)'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92.%가 '진보와 보수 간 정치적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고 답변했다. 빈부갈등(76.1%), 노사갈등(68.9%), 세대갈등(55.2%), 젠더갈등(42.2%) 등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정치적 갈등은 국민 일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족 구성의 첫 단계인 남녀 간 연애나 결혼에 있어 응답자의 58.2%는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나 결혼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남성(53.90%)보다 여성(60.9%)에서, 청년(51.8%)보다 중장년(56.6%)과 노년(68.6%)에서 더욱 많았다. 심지어 정치 성향이 다르면 친구·지인과의 술자리를 할 수 없다고 답한 사람도 33.0%에 달했다. 정치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연애나 단순 만남조차 꺼린다는 것은 정치적 인식이 갈수록 경도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 국회 본회의장 전경. [사진=뉴시스]

 

익명을 요구한 한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한 쪽으로 치우친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한 쪽으로 경도된 편향적 시각을 갖게 되면 다른 생각에 대해서는 반사적으로 공격적인 성향을 띄기 마련인데 이러한 모습들이 외부로 표출되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극렬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이 전체 인구의 20%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나오는데 지금이라도 유연한 사고를 지닌 80%의 '평범한' 사람들이 사회를 정상화시키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며 "극렬 정치인이 소멸되면 극렬 지지자도 사라질 것이다"고 강조했다.

 

대다수 시민들도 극렬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그에 따른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는 부분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울러 주권자로서 극렬 지지자에 의존하는 정치 행태에 철퇴를 가해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았다. 직장인 이우정 씨(44·남)는 "주변을 봐도 그렇고 집안에 정치 성향이 유별난 사람들이 꼭 하나 씩은 있는 것 같다"며 "결국 정치인들이 극단 정치를 하니까 지지자들도 자연스럽게 물든 것 아니겠나"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아직까진 극렬 지지자라고 해봐야 정당 별로 10% 남짓인데 이제는 '정상적인' 국민이 나설 때라고 본다"며 "극단 정치인을 철저히 배척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가정주부 양은선 씨(49·여) 역시 "우리 집도 명절에 가족끼리 모였을 때 남동생과 아버지가 뉴스를 보다가 정치 관련 문제로 말다툼을 한 적 있다"며 "그 모습을 보면서 옆에서 느낀 감정은 '저게 저렇게 싸울 일인가'라는 것 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정치인들끼리 저리 싸우는데 저런 사람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오죽 하겠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불현듯 우리 가족 얼굴이 떠올랐다"며 "결국 국민들끼리 편을 가르고 싸움을 조장하는 것은 정치인들인 것 같아 앞으론 싸움만 일삼는 정치인은 절대 안 찍어줄 생각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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