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아줌마도 뛰어든
암화화폐 투자 실화들
국내 최대 증권사 명동지점장까지 지낸 뒤 집에서 놀고 있던 최대영(59·가명)은 2022년 5월10일 이른바 '불알친구'라는 고향친구로부터 다급한 휴대폰 전화를 받았다.
"대영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빨리 암호화폐 거래소 들어가서 계좌를 개설하고 테라-루나 코인을 무조건 사라. 우리도 코인으로 대박칠 수 있어!!!! 지난주 10만2천원 하던게 갑자기 1200원으로 떨어졌어. 이건 하늘에서 우리에게 준 기회야. 지금 강남 아줌마들도 난리났어.
그리고 이 코인은 대원외고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 경제학과 나온 권도형하고. 티몬의 신현성 알지?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고모부인 그 유명한 신현성 있잖아? 너도 알다시피 삼성그룹 홍라희 여사의 남동생 신문사가 중앙일보야. 아무튼 삼성그룹, 중앙일보와 관계된 코인이라는 거야. 미국 연방의원들도 극찬한 코인이고. 테라-루나 창업자들의 배경이 이런 코인인데 말하면 뭐하겠어. 그런데 며칠전 10만2천원하던 코인이 1000원대까지 떨어졌는데, 여기서 어떻게 더 떨어지겠냐? 완전 바닥에 지하까지 도달한 코인이야. 더 바라지도 말고, 3만원까지만 회복하길 바라자. 그럼 몇배냐? 한번 따져봐. 30배야!!!!! 난 벌써 1억원을 샀어. 나한테는 늦어도 일주일만 지나면 떼돈 30억원이 보장된 코인이야. 너도 당장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땡겨서 테라-루나라고 써 있는 코인이라면 무조건 사야해!!!"
2022년 개발자 권도형(33)과 투자자 티몬 창업 신화의 신현성(40)은 블록체인 스타트업체인 테라폼랩스를 설립했다. 여기서 발행한 암호화폐 테라USD(UST·미 1달러와 테라를 연동시키는 것 )와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자매 코인인 루나(LUNA·갓 태어난 권도형의 딸 이름으로 알려짐)를 유통시켰다.
이런 말을 들은 최대영은 순간 흥분했다. 평생 증권사에서 주식을 중개한 냉철한(?)사람인데도 이건 좀 말이 되는 것 같았다. 더구나 삼성가 인물들과 관계된 코인이라고 하니, 잘못되겠어? 부도 나기 전에 어떻게든 삼성이 살리든 중앙일보가 살리든 하겠지.
최대영은 통장에 있는 돈을 다 끌어모아 2천만원을 우선 챙겼다. 없어도 되는 돈이라 생각하고 전액을 테라(LUNA)코인에 눈딱감고 몰빵했다. 1200원대에 모두 샀다.
그러나 하룻밤을 자고 나니 순식간에 반토막이 나 500원대로 떨어졌다. 2022년 당시 테라(LUNA)코인은 5월 5일 82.58달러(약 10만2천원)하던 것이 정확히 일주일뒤인 5월 12일에는 99.9993124243%나 폭락한 0.08달러(약 99원)의 동전코인이 됐다. 이 코인은 전세계적으로 58조원의 손실을 입히고 파산한 셈이다. 국내에서만도 28만명의 피해자가 나왔다.
미국의 3조8천억원대 가상화폐 헤지펀드인 쓰리애로우즈캐피탈이 결국 테라-루나사태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기도 했다.
고향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원망하듯 따지며 "네 말들었다가 망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고향친구는 되레 그를 구박하듯 "이럴때일수록 더 독한 맘먹고 어디가서 과부 달라빚이라도 얻어다가 물타기를 해야지!!!!"라는 핀잔만 들었다. 주식 전문가였던 그였지만 침착하게 사퇴를 분석하고 되돌아볼 시간도 없었다. 와이프의 절친 돈을 급히 빌려 2천만원을 추가로 물타기에 투자했다.
결국 최대영은 눈깜짝할 사이에 4천만원을 투자해 코인 1개당 1원까지 떨어진 잔돈 몇푼 챙기고 고스란히 다 날렸다.
다음날 투자를 권유한 고향친구와 단둘이 강남 커피숍에서 만났다.
고향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넌 4천만원이나 잃었지. 난 1억원에 추가로 1억원 물타기 해서 다 날렸지~. 또 나몰래 간큰 와이프가 7억원을 날렸더라고. 내가 너하고 집에서 통화하는 소리를 와이프가 엿듣고, 마침 집을 팔아 현금으로 잠시 챙겨논 돈 7억원을 몽땅 다 테라루나를 샀더라구. 그래서 부부싸움하고 이혼을 할까 지금 고민중이야."
당시 강남에서 실제 벌어졌던 일화의 한토막이다.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같은 테라-루나사태의 암호화폐 스토리를 모티브로 만든 영화는 과연 어떨까? 실제로 이 사건을 겪은 사람이 보면 시시하지 않을까?
권도형의 테라-루나사태를
영화 '폭락'으로 제작해 상영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테라-루나 사태의 영화같은 단면은 수없이 많다. 그런데 현해리 감독이 이를 소재로 암호화폐 영화 '폭락'을 제작해 오는 15일 개봉할 예정이라 눈길을 끈다.
주인공 양도현역을 맡았던 송재림 배우는 지난해 작고해 그의 유작이기도 하다.
"내가 사기꾼 처럼 보여요?"
대원외고에 스탠포드 경제학과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한 것으로 알려진 그가 사기꾼으로 보이겠나?
탐욕스런 주인공 도현은 케빈이라는 젊은 투자자를 통해 엄청난 자금을 챙긴다. 도현은 간이 부어 자신에게는 사업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사기나 마찬가지인 가상화폐 '마미'를 개발한다. 고등학교때 영어웅변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뛰어난 언변과 돈에 대한 집착으로 글로벌 투자자들을 순식간에 현혹시켰다. 전세계에서 각광을 받으면서 끝내 어마어마한 돈인 58조원의 피해를 입힌다.
한편 테라-루나사태의 핵심인물인 권도형은 2022년 4월 한국을 떠나 싱가포르로 도주했다. 그는 도피생활을 이어가다가 2023년 3월 몬테네그로에서 위조여권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 한국 검찰과 미국 검찰의 송환 경쟁 줄다리기 끝에 지난해 12월31일 미국으로 범죄인 인도됐다.
권도형은 사기죄 등 9개 범죄 혐의가 모두 인정되면 최대 130년형에 처해질 수 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개별 범죄마다 형을 모두 매겨 합산하는 병과주의 때문에 형량이 매우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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