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지만 여운은 깊고 진하게 남는다. ‘나미브’를 통해 안방극장에 복귀한 배우 고현정이 스타 제작자로 변신했다. 동시에 그는 아픈 아들을 둔 엄마로, 제작자일 때의 카리스마와 미숙한 엄마라는 두 가지 면모를 타고난 섬세한 연기로 풀어내고 있다.
지난달 23일 첫 방송한 지니TV 오리지널 ENA 드라마 ‘나미브’는 해고된 스타 제작자 강수현(고현정)과 방출된 장기 연습생 유진우(려운)가 만나 각자의 목표를 위해 나아가는 이야기다. 강수현은 판도라엔터테인먼트의 대표였으나 주변 인물들의 음모로 하루아침에 해임된 인물. 이후 10년 동안 데뷔를 못한 연습생 유진우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알아보고 스타로 만들려 한다.
고현정은 스타 제작자라는 역할을 능수능란하게 소화한다. ‘선덕여왕’, ‘대물’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었듯 리더의 위치에서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카리스마와 강인함은 ‘나미브’ 강수현에게도 새겨져 있다. 유진우가 오디션을 앞두고 자신 없어 할 때 “난 돈 안 되는 일은 안 해. 한 번 선택한 일은 반드시 성공시키고”라고 말하는 강수현은 자신의 감이 절대 틀릴 수 없다는 확신에 차 있다. 고현정은 기둥 같은 단단함, 흔들리지 않는 눈빛, 신뢰를 주는 또렷한 대사로 캐릭터의 강인함을 표현 해낸다.
연출을 맡은 강민구 감독은 제작발표회에서 “강수현 캐릭터를 봤을 때 고현정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고현정은 굉장히 강력하고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있는 배우”라며 “카리스마와 섬세함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새로움과 반전이 드러나는 지점은 완벽해 보였던 강수현의 맨살이 드러나는 순간, 바로 엄마일 때의 모습이다. 강수현은 업무 연락을 하다 어린 아들 심진우(이진우)를 놓치고 그 사이 교통사고가 난다. 이 사고로 심진우는 청각장애를 앓게 되고 강수현은 평생 아들에 대한 죄책감을 갖게 된다.
제작자일 땐 냉철하고도 이성적이지만 엄마일 땐 미숙하기 그지없다. 정확히 말하면 제작자 마인드를 엄마일 때도 똑같이 가져가는 탓에 모자 관계에 균열이 인다. 청각장애를 갖게 된 아들의 수업을 도와주는 친구에게 뒷돈을 주는가 하면 심진우의 꿈도 마음대로 ‘공장 대표’로 정해놓고 움직인다. 강수현은 “돈을 받아야 책임감이 생긴다. 경영자 마인드라고 몇 번을 말하냐”고 아들 친구에게 돈을 준 이유를 강변한다.
이때 강수현의 강함과 카리스마는 단숨에 고집, 우악스러움으로 변한다. 고현정은 캐릭터가 가진 고유의 성질을 상황과 상대에 따라 미묘한 차이를 두고 표현한다. 얼핏 보면 단단해 보이지만 너무 단단해서 어느 순간 부서질 것 같은 인물의 다층적 면모를 그만의 디테일로 풀어내며 시청자를 극 안으로 빨아들인다.
카리스마 이미지가 강조된 탓에 언제나 그런 역할만 한 것 같지만 고현정은 작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는 항상 새로움을 찾았다. ‘디어마이프렌즈’에서는 모녀의 애증 관계를, ‘너를 닮은 사람’에선 금기된 사랑에 빠져 갈등하는 여자를, ‘마스크걸’에선 딸을 구하기 위해 탈옥을 감행하는 살인자를 연기했다. 매번 의외의 선택을 했고 이는 ‘나미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고현정이 맡아온 캐릭터가 자기 자신의 문제에 몰두해 있는 인물들이었다면 이번엔 중심에서 살짝 빗겨나 주변을 둘러보는 위치에 가깝다.
지난 7일 6회까지 방영한 ‘나미브’는 유진우의 오디션 도전기가 본격적으로 그려지면서 멘토로 활약하는 강수현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향후 회차에서는 제작자라는 사회적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을 강수현이 동시에 어떻게 수행해 나갈지가 고현정의 탄탄한 연기력을 통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나미브’는 그동안 고현정이 주로 해왔던 역할들과는 살짝 다른 결의 캐릭터이긴 하다. 엄마로서의 역할이 전면에 많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어른에 대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라며 “아들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어떻게 벗어나는지 이를 표현하는 고현정의 연기가 향후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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