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 대만 반도체 산업 부흥 이끈 살아있는 전설

[이슈메이커] 대만 반도체 산업 부흥 이끈 살아있는 전설

이슈메이커 2025-01-09 09:15:2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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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대만 반도체 산업 부흥 이끈 살아있는 전설
 

TSMC를 부동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1위 업체로 키워낸 건 대만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모리스 창 창업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반도체 산업의 태동기부터 지금까지, 무려 70년째 그 중심에 자리 잡으며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그는 어떻게 세계 기술산업 흐름을 재편한 선구자가 되었을까.

 

ⓒGretchen Ertl/MIT.
ⓒGretchen Ertl/MIT.

 

독학으로 익힌 반도체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난 창은 어린 시절은 홍콩에서 보냈다. 전쟁과 빈곤에 시달리던 조국을 떠나 미국에 자리 잡았고,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 뒤 메사추세츠 공대(MIT) 기계공학과로 편입했다. 1955년 석사를 마치고 미국 실바니아 전자에 입사해 갓 태어난 반도체 산업과의 본격적인 인연이 시작된다. 당시 4개 회사가 취업을 제안했는데 유명한 포드 자동차 대신 월급을 1달러 더 주기로 한 실바니아를 선택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창의 첫 임무는 트랜지스터 수율(정상 제품의 비율)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그는 납땜의 열이 트랜지스터를 손상하는 걸 알아내고, 간접 열로 와이어를 연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일을 위해 반도체 이론을 공부하기로 한 그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노벨상 수상자 윌리엄 쇼클리 책과 공장의 나이 많은 선임 엔지니어를 교과서 삼아 반도체 전문지식을 쌓아나갔다.


  이후 1958년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는데, 당시 TI는 IBM이 주문한 트랜지스터 생산라인 수율 때문에 골머리 앓고 있던 때였다. 당시 수율은 거의 0이었는데, 한마디로 불량품만 생산 중이었던 셈이다. 이 트랜지스터 생산 라인을 그가 맡게 되고 창은 실바니아에서 쌓은 독학과 경험으로 석 달 후 수율을 25~30%로 끌어올렸다. 회사는 그에게 박사학위 후원을 제안했고, 그는 급여와 학비를 지원받고 스탠퍼드대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2년 반 만에 마친다. 이후 승진을 거듭하며 1967년 집적회로 총괄 관리자가 됐다.


  1978년이 되자 회사는 창을 소비자 제품 총괄 부사장으로 임명해 실적이 부진하던 계산기와 손목시계 사업도 부활시켜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실패였고, 창은 1981년‘품질 및 인력 효율성 책임자’라는 직책으로 사실상 강등된다. 창은 이를 두고 “여전히 수석 부사장이었지만 사실상 방목지로 내쫓긴 것 같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더욱이 1980년 IBM이 신제품인 개인용 컴퓨터(PC)에 TI가 아닌 인텔의 프로세서를 채택하면서 TI 반도체 사업의 내리막이 시작되었다고 느낀 그는 1983년 회사를 떠나게 된다.

 

TSMC를 부동의 파운드리 세계 1위 업체로 키워낸 건 모리스 창 창업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Mori/Taiwan Presidential Office/Flickr
TSMC를 부동의 파운드리 세계 1위 업체로 키워낸 건 모리스 창 창업자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Mori/Taiwan Presidential Office/Flickr

 

반도체 산업을 바꾸고 세상을 변화시켰다
그때 그에게 손을 내민 것이 대만 정부다. 대만공업기술연구원(ITRI) 원장을 맡아 줄 수 없겠냐는 제안을 받고 창은 1985년 모두의 만류를 뒤로 한 채 대만으로 떠났다. 중국 본토 출신으로 대만과는 별 관련이 없을뿐더러 이미 1962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해 미국인으로의 삶을 살고 있던 그에게 대만은 낯설고 가진 게 없는 나라였음에도 말이다.


  당시 대만 정부는 반도체 회사를 육성할 적임자를 찾고 있었는데, 창은 오랜 기간의 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사 주문을 받아 칩을 생산하기만 하는 ‘순수 파운드리’ 사업이라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주문할 고객(팹리스 기업)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아예 없는 시장을 새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지금의 TSMC가 탄생했다. 1987년 2월 자본금 2억 2,000만 달러와 50명의 직원으로 설립됐는데 정부가 절반, 외국 투자자가 절반의 자금을 댔다. 창의 선견지명은 들어맞아 1987년 당시 전 세계에 20개 남짓이던 팹리스 기업은 이제 수천 개로 늘어났다. 엔비디아가 초기부터 TSMC와 손잡은 대표적 고객사인데,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모리스와 TSMC에 대해 알게 됐을 때 설렜다”면서 “TSMC 없이는 엔비디아가 불가능했다”고 여러 차례 밝히기도 했다. TSMC는 고객사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인 기술 유출 부분에 있어 극비사항을 유지하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양산해내며 업계 점유율을 높여나갔다.

 

TSMC는 1987년 2월 자본금 2억 2,000만 달러와 50명의 직원으로 설립됐다.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TSMC는 1987년 2월 자본금 2억 2,000만 달러와 50명의 직원으로 설립됐다.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현업을 떠날 법한 나이에 회사를 창업한 창 전 회장은 정말로 물러날 것 같은 나이에는 위기의 회사를 위해 경영에 복귀했다. 고령을 이유로 2005년 한 차례 은퇴했지만 3년 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 TSMC 매출이 급락하자 78세이던 2009년 다시 현업에 복귀했다. 이후 모든 것이 위축된 시기의 ‘해고직원 복귀와 투자 확대’라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조기 회복을 예상했던 것인데, 그의 경영 감각은 적중해 2010년 TSMC 매출액은 전년 대비 41.9% 늘어난 4,195억 대만달러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8년 모든 직책을 내려 두고 현업에서 물러났다. 처음 TSMC 회장을 맡던 때 창이 당시 받은 지분은 0이었는데, 몇 년 뒤 자신이 저축한 돈을 털어 회사의 지분 0.5%를 사들였고, 현재 그 가치는 50억 달러로 불어났다.

 

TSMC는 2024년 3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 64.9%를 기록하며 2위 삼성전자(9.3%)를 7배가량 앞섰다.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TSMC는 2024년 3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 64.9%를 기록하며 2위 삼성전자(9.3%)를 7배가량 앞섰다.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
이제 TSMC는 다른 어떤 기업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반도체 사업을 지배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는 2024년 3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점유율 64.9%를 기록하며 2위 삼성전자(9.3%)를 7배가량 앞섰다. 게다가 TSMC와 삼성전자의 점유율 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아울러 235억 400만 달러의 매출에, 111억 6,200만 달러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2023년 대비 매출은 36.4%, 영업이익은 58.2% 늘었다.


  특히 2010년 이후 스마트폰 시장이 커지면서 애플에 AP 반도체를 납품하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인공지능에 필요한 엔비디아 GPU를 독점 생산하면서 무섭게 성장 중이다. 이에 대만 국민은 TSMC를 ‘나라를 지키는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의미의 ‘호국신산’으로 부를 정도다. 세간에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해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국은 가장 먼저 TSMC를 구할 것’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TSMC는 경쟁사들과의 기술격차를 크게 벌리기 위해 2025년 시설 투자를 크게 늘릴 방침이다.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TSMC는 경쟁사들과의 기술격차를 크게 벌리기 위해 2025년 시설 투자를 크게 늘릴 방침이다. ⓒ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 Ltd.


  이처럼 TSMC가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창 전 회장의 전략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우수한 기술력으로 공급자 우위 시장을 만들어내면서, 고객사가 원하는 대로 생산해 주는 ‘맞춤형 협업 생태계’를 구축한 것이다. 그는 2017년 한 강연에서 ‘성장과 혁신’이란 주제로 발표하면서 “사람들이 우리를 수탁 생산 업체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우린 돈을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은행에 가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한국의 계엄령 사태가 삼성전자에 악영향을 끼치면서 TSMC와의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모리스 창은 자신의 자서전 출판 기념회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재 한국의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삼성은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은 몇 가지 기술적인 문제에도 부딪혔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와 함께 TSMC에 대해서는 “현재 경쟁자가 없는 상황”이라며 “전 세계 대부분의 AI 반도체 기업의 제품을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TSMC는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다른 경쟁사들과도 기술격차를 크게 벌리기 위해 2025년 시설 투자를 크게 늘릴 방침이다. 대만 경제일보에 따르면 TSMC는 전 세계에 10개 신규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며, 시설 투자액은 340억~38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기존 예상치인 320억∼360억 달러 대비 최대 18.75% 이상 늘어난 액수로 기존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 2022년 설비투자 규모인 362억 9,000만 달러를 뛰어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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