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공식 계정(@offlinegirls.official)에서 찾은 정보에 의하면 시작은 가벼운 산책이었다. 매주 일요일 오후 12시 반. 베를린 프리드리히스하인 공원의 분수대 앞에서 만난 여성들은 함께 걸으며 친구가 되었다. 삼삼오오 팀을 꾸려 원데이 클래스를 수강하거나, 핼러윈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파자마 파티를 열고, 드레스 코드를 정해 모이는 걸스 나이트를 주최하는 등 모임의 규모가 커질수록 콘텐츠의 종류는 다양해졌다. 피드를 스크롤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의구심이 피어난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새로운 사람 만나는 일에 이토록 적극적이었던 시절이 없었던 나에겐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렇게나 다채로운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사실이 허구에 가까워 보였다. 단순한 친목 모임을 넘어서 어딘가 단단한 결속력까지 느껴지는 이 여성들의 관계가 정녕 처음 만난 사이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두려운 일에 가깝지 않나? 그래서 궁금했다. 베를린이 아닌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여성들의 모임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지. 또 어떤 가능성을 보여줄지. 그전에, 불특정 다수의 여성들과 함께하는 오프라인 모임이 성사되기는 할지. 오프라인 걸스의 한국 지부는 그렇게 시작됐다.
모임을 만들기 위해 ‘문토’라는 소셜 모임 앱을 주로 활용했다. 금요일 오후 2시 서울숲역 3번 출구 앞. 장소와 시간을 공지하고 함께 산책하고 차를 마시는 1시간 반 남짓한 일정을 소개한 글을 업로드한 뒤엔 우려와 기대가 섞인 묘한 감정을 느꼈다. ‘좋아요’ 수는 늘어나지만 정작 참여하겠다는 사람은 없는 상태로 영겁의 3일이 흐른 뒤. ‘민밍민’이라는 닉네임의 첫 참가자가 나타났다. 모임에 대한 관심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그때부터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는 그다음의 문제가 되었다. 오프라인 만남까지 이어갈 의사가 있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다음 모임의 가능성까지도 있는 것일 테니. 모임 당일, 참가 의사를 밝혔으나 끝내 연락이 닿지 않은 두 명을 제외한 채, 총 여섯 명의 여자들이 함께했다.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서로를 확인하며 머쓱한 웃음이 오갔다. 어색한 공기를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단 걷는 것이었다.
학교 복학을 앞둔 대학생과 졸업을 하고 회사에서 막 일을 시작한 사회초년생, 아닌 밤중에 발생한 국가 비상 사태에 야근으로 지쳐 있던 언론사 직원, 프리랜스 디자이너, 경복궁 한복 대여소에서 일하는 중국인까지. 나를 포함한 여섯 명의 여성들에겐 20대라는 사실 외에는 어떤 공통점도 없었다. 가장 신기한 건, 어느 누구도 선뜻 먼저 나서 말을 꺼내지 않는 소극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낯을 가리고, 자신을 소개하는 일을 어려워하는 이들은 대체 무얼 기대하며 이 모임에 참여한 것일까. 돌아오는 답은 비슷했다. “걷는 걸 좋아해요.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사람을 사귀기 편한 방법은 없는 것 같고요. 사실 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목적 같은 것보다는, 그저 같이 걷고 대화하는 시간만이 줄 수 있는 환기가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던 것 같아요.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공감하고 지지해줄 수 있는 부분은 분명 있을 테니까요.”
결론을 말하자면, 그날 이후 우리 여섯 명이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거나, 평소에도 연락을 하고 지낼 만큼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된 건 아니다. 모임 이후 따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도 없다. 그저 뉴스를 보거나 인스타그램 피드를 훑어보다 우리가 나눈 무수한 대화의 일부가 떠오를 때 한 번씩 그 흔적을 곱씹어볼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답지 않게 처음 만난 사람에게 별소리를 다 했다. 올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뒤 내 안에 생긴 불안에 대해, 해가 갈수록 새로운 사람 만나기를 멀리하려는 방어적인 태도에 대해. 누구보다 독립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굉장히 의존적이고 외로움을 느끼는 성향인 것 같다는 고백을 불쑥 꺼내 일순간 분위기를 싸하게 만든 것도 같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한 번 보고 말 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모두가 또래인 데다 성향까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난 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의 목적이 그저 만나서 눈을 마주보며 대화하는 단순한 일에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마음만 먹으면 만나지 않고서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시대. 보통의 방법을 벗어나 수고스럽고 조금은 불편한 선택을 감행한 사람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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