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 미국 제철소 설립 검토…트럼프 보호무역 정책 대응

현대차그룹이 작년 10월 미국 조지아주에 준공한 친환경차 전용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 [사진출처=현대차그룹 미국법인/뉴시스]

【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보편관세 부과와 같은 보호무역주의 정책 강화를 예고한 가운데,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제철이 미국에 대규모 제철소 설립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국 기업들에게 미국 내 생산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전략적 행보를 준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자동차용 강판 등 주요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제철소를 미국에 건설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공장이 위치한 조지아주를 포함한 몇몇 주 정부와 인프라 및 투자 조건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은 공시를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꾸준히 검토 중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은 지난해 3월 주주총회에서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 생산 거점을 검토하고 있다”며 “무역 장벽을 극복할 최적의 지역을 세밀히 분석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자동차 업계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강화 정책에 대한 우려 속에서 현대차그룹이 과감한 대미 투자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제철이 미국에 제철소 건설을 결정하면 이는 해외에서 처음으로 쇳물을 생산하는 제철소 설립 사례가 될 전망이다. 업계는 이 제철소가 연간 수백만 톤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투자 규모는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대규모 투자를 검토하는 배경에는 미국 내 자동차 생산량 증가와 함께 강판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앨라배마와 조지아 공장을 포함해 여러 생산 기지를 운영 중이며,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량이 확대되면 연간 120만 대 규모의 미국 내 생산 체제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산 철강은 수출 쿼터가 적용돼 추가 공급에 한계가 있다. 이는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해 한국산 철강 수입량을 2015~2017년 평균의 70%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미국 현지에 제철소를 설립할 경우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사업 안정화뿐만 아니라, 한국 철강 산업의 대미 사업 확장에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대규모 투자는 트럼프 정부의 투자 유치 정책에 부응하는 긍정적 메시지를 전달하며 현대차그룹의 미국 내 사업 환경 안정화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규모 무역적자가 미국 경제와 일자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며, 관세 장벽을 높이는 방안을 통해 외국 기업들이 자국 내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현대제철의 이번 검토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현대차그룹이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된다.

김진범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불허 사태를 고려할 때, 미국 내 철강 공급망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제철은 이를 감안해 인수 대신 직접 투자를 검토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려면 철강재와 같은 핵심 인프라 자원의 안정적 확보가 필수적이고,  미국 내에선 외부 철강재에 대한 무역 장벽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현지 생산 능력을 갖춘 철강 업체들은 글로벌 공급 과잉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제철의 현지 투자 검토는 전략적으로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