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양우혁 기자】 유럽연합(EU)이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CO2 배출 규제를 완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내 배터리 및 완성차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규제 완화는 전기차 보급 확대 속도를 늦추는 한편, 배터리 업계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는 반면, 완성차 업계에는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를 통한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EU는 내년부터 신차 평균 CO2 배출량 상한을 ㎞당 95g에서 93.6g으로 강화할 예정이지만, 이에 따른 벌금 규정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 업계는 CO2 배출 규제가 과도할 경우 벌금 부담으로 인해 경영 압박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자동차 생산국들은 규제 완화 논의를 강력히 요구하며,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독일 완성차 업계는 이번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 규제는 유럽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심각하게 약화시키고 있다”며 “벌금 제도가 지나치게 강경하면 전기차로의 전환 속도를 저해할 뿐 아니라, 투자 여력까지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전 세계 전기차 수요를 촉진한 EU 규제가 완성차 산업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EU의 CO2 배출 규제는 2015년 디젤게이트 이후 강화되며, 전기차 시장 성장을 이끄는 핵심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규제가 완화될 경우 전기차로의 전환이 주춤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배터리 업계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유럽이 CO2 규제를 완화하면 전기차 관련 인프라 투자 속도가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단순히 판매 둔화에 그치지 않고, 배터리 공급망과 충전 네트워크 구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지난 유럽연합(EU) 정상회담 후 “업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벌금이 전기차(EV)에 대한 기업의 투자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하며 규제 완화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유럽 전기차 시장 의존도가 높은 만큼, 규제 완화가 가져올 부정적 영향을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주요 배터리 기업들은 유럽 시장을 주요 수요처로 삼고 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은 유럽 완성차 업체와의 협력을 확대하며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점유율을 넓혀왔으나, 규제 완화가 현실화되면 이 같은 성장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유럽 규제 완화로 전기차 보급 확대가 둔화될 경우, 배터리 수요 감소와 업계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라며 “특히 유럽 시장은 국내 배터리 기업들에게 중요한 수요처 중 하나로, 이에 따른 변화에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는 기술력 강화를 통해 다양한 지역으로 시장을 확대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내 완성차 업계는 상황이 다소 유리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차와 기아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하이브리드차, 고효율 내연기관차, 수소차 등 다양한 친환경 차량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어, 유럽 시장 변화에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하이브리드 차량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중간 단계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꾸준히 높아지고 있으며, 현대차와 기아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 상승에 기여하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현대차·기아의 경우, 전기차보다 내연기관차 판매 시 수익성이 더 높기 때문에, 유럽의 CO2 배출 규제 완화가 반드시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규제가 완화되면 전기차 판매 의무가 줄어들어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판매 비중을 높이는 것이 가능해지고 단기적으로 수익성이 더욱 증가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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