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F/W ‘But Beautiful’ Hand Sewn Coat
이 코트는 언더커버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다섯 시즌에 걸쳐 완성한 ‘But Beautiful’ 컬렉션의 첫 번째 시리즈다. 봉제 인형을 만드는 앤 발레리 듀폰, 재활용품으로 액세서리를 만드는 미셸 정크와 협업해 완성되었는데, 이 시리즈를 자신의 역작이라 말할 정도로 디자이너 준 다카하시의 애정이 담긴 옷이기도 하다. ‘But Beautiful’ 컬렉션은 ‘어릴 적 본 무서운 영화’라는 주제에서 시작했다. 삐져나온 안감, 닳아 해진 듯한 마감, 불규칙적인 단추와 비대칭 디자인까지. 봉제 인형 코트에는 유년기의 타카하시가 느꼈던 기괴하고 오싹한 이미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옷은 확실히 좀 이상해요. 하지만 그래서 아름다워요. 컬렉션 이름처럼요. 그게 이 옷을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죠.” 그는 열정적인 큐레이터처럼 언더커버 최전성기의 피스들을 수집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봉제 인형 코트를 두 벌이나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마 박민성뿐일 거다. - 박민성 (세컨핸즈 숍 레강샵 대표, @msstar0405)
2001 F/W ‘Riot! Riot! Riot!’ Collection
라프 시몬스가 1년여의 휴식 끝에 선보인 2001 F/W 컬렉션은 당시 남성복 시장에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대범한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밀리터리 스타일, 의도적인 빈티지 디테일, 참신한 레이어링은 컬렉션의 이름처럼 전형을 깨부수는 ‘폭동’이었다. 특히 조이 디비전 콘서트 포스터와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 멤버 실종 기사 등 유스 컬처와 관련된 이미지를 패치워크한 이 재킷은 칸예 웨스트가 입은 뒤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라프 시몬스 컬렉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특별해지는 것 같아요. 투박한 디자인은 지금 봐도 근사하고요. 요즘 컬렉션과 궤가 달랐던 시절에 대한 향수도 느껴지죠.” 2000달러가 넘는 투박한 탄띠 벨트, 5000달러에 거래되는 스카프, 3년 전 5만4000달러의 매물을 끝으로 자취를 감춘 값비싼 보머 재킷까지. ‘RIOT! RIOT! RIOT!’ 컬렉션 피스를 4점이나 수집한 최승혁은 라프 시몬스가 유독 반짝이던 시절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최승혁 (브랜드 언더마이카 대표, @murslanger)
1999 F/W M69 Flak Jacket
한때 트렌드를 좇기 바빴다고 고백한 오세훈은 몇몇 디자이너의 아카이브 피스를 경험하며 본격적으로 패션에 눈을 떴다. “요즘 옷이 왠지 익숙해 보일 때가 있어요. 왜 그런지 이유를 찾다 보면 자연스레 헬무트 랭이나 마르탱 마르지엘라 같은 디자이너로 이어지죠.” 그는 자신의 컬렉션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21세기 미니멀리즘 패션을 선도한 디자이너 헬무트 랭을 꼽는다. 특히 M69 플락 베스트를 모티브로 제작된 1999 F/W 컬렉션의 재킷을.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디자인과 완벽한 재단, 하이테크 소재와 기능성에 입각한 디테일은 분명 헬무트 랭 미니멀리즘의 표본이다. 오세훈은 이 재킷을 입어본 다음에야 헬무트 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가방처럼 멜 수 있는 본드지 캐리 스트랩, 탈부착할 수 있는 안감, 편안한 착용감에는 ‘사람들이 실제 삶에서 입을 수 입어야 한다’고 굳건히 믿은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겨 있으니까. - 오세훈 (대학생, @thvbsnd)
2018 F/W Uchida Suzume Leather Jacket
요지 야마모토 2018 F/W 컬렉션에서 처음 발표된 블랙 스캔들 라인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내면, 아름다운 여성성을 주제로 활동하는 일본 화가 우치다 스즈메와의 협업으로 시작했다. 이 재킷을 더욱 특별하게 하는 건 ‘어둠의 여자’를 테마로 한 우치다 스즈메의 자화상. 공들여 만든 레더 재킷에 강렬한 백 프린트로 방점을 찍었고, 오사카 다카시마야 백화점과 하카타 한큐 백화점에서만 두 차례 한정 판매됐다. 최초 발매가는 400만원대. 하지만 현재 시세는 1000만원을 호가하며 지금도 꾸준히 가격이 오르고 있다. 탐내는 사람은 많고, 매물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캔버스에 전시한 그림은 움직이지 않아요. 그러나 옷 위에 그려진 그림은 다르죠.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예술 작품을 보는 것 같아요.” 강도완은 이 재킷을 미술과 패션의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옷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는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알 게 될 거다. - 강도완 (프리랜서, @junkboyz)
2003 F/W ‘Touch Me I’m Sick’ Grunge Knit Cardigan
최준희는 젊은 시절 밴드 활동을 했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밴드 신과 음악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러니 밴드 문화나 뮤지션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 넘버나인에 빠지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일본 유학 생활을 할 땐 사고 싶은 건 많고 돈은 없었어요. 그래서 중고 옷을 사고팔며 넘버나인을 조금씩 사 모았죠.” 커트 코베인의 그런지 룩을 재해석한 2003 F/W 컬렉션은 지금도 넘버나인의 대표 컬렉션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아이템은 커트 코베인의 DNA가 여실히 담긴 바로 이 카디건이다. 다양한 니팅 기법으로 조각을 이어 붙인 디자인, 음표 무늬를 음각 처리한 나무 단추 등 세심한 디테일이 숨어 있으니까. “타카히로 미야시타가 만드는 옷이 그래요. 요즘 이렇게 진정성 있는 기성복은 못 봤어요. 이런 사소한 부분 하나 때문에 넘버나인 옷이 특별한 거죠.” - 최준희 (세컨핸즈 숍 러브트레인 대표, @neroombelt)
1999 F/W – 2004 S/S Collection
디자이너의 디자이너, 패션계의 이단아, 얼굴 없는 디자이너…. 마르탱 마르지엘라만큼 많은 수식이 붙는 디자이너가 앞으로 또 나올까? 패션계의 마지막 혁명이었다고 평가될 만큼 그의 행보는 남달랐다. 모델의 얼굴을 베일로 감싸는가 하면, 일본 전통 신발 타비에 힐을 달고, 버려진 양말이나 장갑을 이어 옷으로 만들기도, 옷에 의도적으로 페인트를 칠하기도 했으니까. “가장 놀라운 대목은 지금 패션 신에서 신선하다고 여겨지는 것들 대부분을, 이미 한참 오래전에 마르지엘라가 했었다는 사실이에요.” 곽에릭은 마르지엘라의 전위성에 매료돼서 그의 아카이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의 첫 컬렉팅 피스는 1999 F/W 아티저널 컬렉션의 실버 페인트 재킷. 화이트 페인트 재킷을 포함한 같은 시즌의 재킷을 3점 더 소장하고 있으며, 이 밖에 프랑스 군복에 페인트를 칠한 2004 S/S 아티저널 컬렉션 피스도 있다. 2003 S/S 컬렉션의 벨트들은 카우보이의 버클 벨트의 문법을 따르지만 버클을 레더나 데님으로 덮어 재탄생시켰다. “그는 은폐를 좋아해요. 원래의 모습을 감춰서 궁금증을 유발하죠. 이 재킷이나 벨트 모두 같은 맥락이에요.” 지금도 곽에릭의 옷장 안에는 마르탱 시절의 마르지엘라가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 곽에릭 (패션 스타일리스트, @erickw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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