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사람과 사물들을 지나 멀리, 더 멀리까지 어떤 힘이 퍼져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작품과 역할을 거치며 한복의 아름다움과 힘을 익히 익혀온 김태리 배우가 4명의 한복 디자이너와 함께 첫 한복 화보를 촬영했다. 창덕궁이 문을 열기 전인 아침 8시 30분, 한복을 갖춰 입은 그가 한국의 가장 고아한 정원, 창덕궁 후원을 선선히 걷기 시작했다. 사위는 고요했고, 때마침 햇살이 쏟아졌으며, 간혹 새소리가 여백을 채웠다. 촬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의 그는 어느 순간 6백 년의 시간을 멀리 거슬러 오르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고요하게 침잠하며 쌓이는 힘이, 그날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공기가 우리를 에워쌌다.
누군가를 오래 보면 결국 사랑하게 된다고 하죠. ‘정년이’의 어떤 면을 가장 사랑하고, 응원했나요?
전 1화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꿈이란 걸 꾸게 된 아이가 그 어린 나이에 익숙한 모든 것을 버리고 낯섦 속으로 뛰어드는 그 마음이 가장 공감되고 정년이에 동화됐던 부분이에요. 그래서 정년이를 생각하면 1부에 잠옷 입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래 내가 오늘 보고 온거슨 별천지였제” 하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모든 파도를, 그 많은 나날을 이 아이는 이 얼굴로 견뎌내겠구나 싶어서요.
<정년이>를 보며 무모하지만 순수하게 자신의 마음을 따르고 돌진하던 각자의 시간을 떠올리기도 했는데요. 김태리 배우 역시 정년이를 통해 과거의 어떤 내가 이해되는, 이해받는 경험을 했나요?
원작을 보며 그런 부분에서 깊이 공감하고 이해됐던 부분이, 작은 재주(정년이는 큰 재주지만…)만 믿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설레던 제 20대 초반의 무모하고 순진한 태도예요. ‘아, 나도 저랬는데, 맞아’ 하면서요. 꿈을 꾸고 그 꿈을 동경하고, 내가 잘해낼 거라 확신하고 그 확신이 허무맹랑했음을 깨닫는 경험,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닫고 부끄러워한 순간들이 있었어요. 겉으로 티도 못 내고 일기장엔 나 자신에 대한 욕이 빼곡한데, 그 와중에도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그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이를 발판 삼아 한 계단 더 올라설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계속하고 싶었고 또 잘하고 싶었기 때문에. 답은 하나였어요. 진짜 무데뽀였죠. 정년이처럼.
<정년이>는 좋은 대사가 유난히 많았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5회에서 “윤정년은 윤정년 으로 살 수밖에 없응께요”라는 윤정년의 말과 이에 “그 어떤 순간에도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선택은 하지 마”라고 패트리샤 김(이미도)이 답하는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이 대사를 김태리 배우에게 돌린다면, 김태리 배우가 김태리로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 인가요?
저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주변 사람들이요. 자기 확신은 영원할 수 없고, 특히 배우라는 직업은 흔들리는 순간을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럴 때 계속 저를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혼자 오롯이 서 있을 수 있다면 멋있겠지만 그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적당한 의지는 제가 저 자신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하기에 꼭 필요한 부분 같아요.
김태리 배우가 연기한 정년이는 때로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그마저도, 그로 인한 시행착오마저도 주체적으로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김태리 배우가 연기한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단단함을 지니고 있죠. 어떤 캐릭터를 주체적이라 해석할 때 그에게는 최소한 무엇이 있다고 보나요?
자신만의 서사요. 이야기 속에 놓인 캐릭터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만의 이야기가 엿보이는 그런 캐릭터를 볼 때 주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징검다리로서만 기능하는 캐릭터는 주체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그 징검다리를 쇠로 만들지 나무로 만들지 선택해서 만들어간 캐릭터가 주체적인 것 같아요. 그건 캐릭터에 대한 분석과 감독님, 작가님과 소통하며 만들어갈 수 있는 부분이고요. 제아무리 극을 이끌어가는 주연이라 할지라도 그런 징검다리 상황이 주어질 때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나의 서사로 만들어내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배우로서 연기하며 때때로 인물의 극단적인 행동까지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하죠.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고 탐구하는 직업적 속성이 김태리 배우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거창한 어떤 것은 없어요. 그래 봤자 저는 개인이고, 제 작은 삶의 경험에 반추해 다음 선택을 하는 것일 테니까요. 지금 <정년이>를 끝내고 조금 쉬고 있으니 드는 생각인데, 제 끈질긴 기질은 제가 맡은 작업 안에서만 한정적으로 발휘되는 것 같아요. 일상은 별다를 것 없이 살아요. 작은 일에 기뻐하고 작은 일에 분노하며. 그 대신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이 없고, 사람마다 방아쇠는 다른 거니까 조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제일 먼저는 이해하고자 노력하고요.
2025년의 시작을 앞두고 있습니다. 새해 소망을 빌어볼까요. 새해에는 무엇을 꿈꾸고 있나요?
여유와 재치와 평화!
한복웨이브 사업은 잠재력과 기술력을 지닌 국내 한복 기업과 한류를 이끄는 문화 예술인이 협력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한복 상품을 개발하고, 한류를 통한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2024 한복웨이브(한복분야 한류연계 협업콘텐츠 기획·개발)
2024 Hanbok Wave(The Korean Wave Collaboration Content Planning and Development Support Project)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주관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orea Craft and Design Found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