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의대 증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가 1년 가까이 갈등하는 것을 두고 국민 대다수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은 7일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보건의료 개혁 정책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를 살펴보면 평소 의사 인력의 지역이나 진료과별 배치 불균형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 응답자의 비율은 전체의 87.6%로 조사됐다.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9.4%), ‘생각해 본 적 없다·별다른 의견 없다’(3.0%)와 큰 차이를 보였다.
평소 의사 수가 모자란다고 생각했다는 응답은 전체의 과반이 넘는 57.7%에 달했다. ‘적정하다’는 26.9%, ‘적정 수준을 초과한다’는 6.5% 수준이었다.
부족한 의사 수에 대한 대안으로 응답자 53.0%는 ‘의사 수 증가와 다른 정책 수단 둘 다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의사 수 증가보다는 진료과 별 수가 조정·개선 등 다른 정책 수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국민은 14.7%에 머물렀다.
지난해 2월 정부가 제시한 2025년 의대 모집 정원부터 2000명을 증원하는 방안’에 대해 동의하냐는 질문에 ‘증원 시기와 규모 모두 정부안에 동의하지 않는다’라는 응답은 29.0%를 차지했다. ‘증원 시기와 규모 모두 동의한다’는 응답자는 27.2%였다. 그 외에는 ‘증원 규모만 동의한다’(18.8%), ‘증원 시기만 동의한다’(16.0%)로, 전체의 34.8%는 증원 시기와 규모 중 하나만 동의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현재 시점에서 2025년 의대 증원안을 두고 전체 응답자의 46.4%는 ‘2025년의 의대 모집 정지나 증원 백지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28.8%는 ‘의대 모집 정지나 증원 백지화가 여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지속되고 있는 의정갈등이 막을 수 있었던 갈등이라고 판단한 응답자는 전체의 69.0%로 과반을 넘었다. 이들에게 정책 갈등을 촉발한 이유를 추가 질문한 결과, ‘사전에 주요 이해관계자의 해당 정책 신뢰도를 파악하고 협력을 도모할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하지 못함’(61.9%)과 ‘사전에 전문성 있는 투명한 정책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39.6%)이 각 1, 2순위를 기록했다.
응답자 54.0%는 의료개혁·의사증원 정책이 현 상태를 유지할 경우, 정부와 의사 단체의 갈등이 해결될 가능성이 낮다고 봤다. 정부와 의사 집단의 정책 갈등이 해결되지 않을 때 초래될 결과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인식은 전체의 75.5%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에 전체의 45.4%는 ‘갈등과 문제가 있으므로 의료 개혁 안을 수정하거나 추진을 보류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37.7%는 ‘갈등과 문제가 있더라도 의료 개혁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갈등과 문제가 있으므로 개혁안을 전면 무효화·백지화해야 한다’의 응답은 9.9% 였다.
국민들은 의정갈등으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응답자 71.6%는 의료개혁·의사증원에 대한 의정 정책 갈등으로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긍정적 감정을 느낀다’고 응답한 비율은 17.8%에 그쳤다.
참여한 국민 70.0%는 스트레스나 피로감을 느낀다고 답했으며 일반 국민과 환자는 정부와 의사 단체의 정책 갈등이나 대립에서 소외되기 쉽다고 여기는 응답자도 75.1%나 됐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보건의료 정책 관련에 대한 정부 신뢰를 묻는 질의에서는 ‘낮아졌다’(53.8%), ‘변화가 없다’(37.0%), ‘높아졌다’(9.2%) 순으로 나타났다.
조사 설계와 진행을 맡은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는 “정책 방향과 목표에 타당성이 있어도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과 그 여파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면 그 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정부와 의사 단체 중 어느 쪽도 정책 결정과 대응에서 국민과 환자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믿음을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는 결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이유 1순위로 ‘국민은 참여 기회가 없다’가 꼽힌 것을 두고서는 “앞으로 정부는 국민과 환자의 정책 참여와 권한을 높이는 노력이 의료개혁 정책의 성공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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