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박성준의 오목렌즈] 52번째 기사입니다. 박성준씨는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뇌성마비 장애인 당사자이자 다소니자립생활센터 센터장입니다. 또한 과거 미래당 등 정당활동을 해왔으며, 현재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한 각종 시민사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국 정치에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사안의 핵심을 볼줄 아는 통찰력이 있습니다. 오목렌즈는 빛을 투과시켰을 때 넓게 퍼트려주는데 관점을 넓게 확장시켜서 진단해보려고 합니다. 매주 목요일 박성준씨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색깔 있는 서사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더불어 박성준 센터장은 2024년 7월11일부터 평범한미디어 정식 멤버로 합류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범한미디어 박효영 기자]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현실감이 없다. 박성준 센터장(다소니자립생활센터)은 2일 평범한미디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딱 사고가 터지고 나서 지금까지 현실감이 없다”며 “비행기 사고라는 게 확률적으로 워낙 희박하고 횟수도 적긴 한데 그 대신 한 번 사고가 나면 사상자가 많은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사고 수습을 하기도 힘들고 착륙 중에 그랬든 공중에서 그랬든 한 번 터지면 굉장히 큰 사고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속보를 접하고 너무 걱정을 많이 했다. 그리고 자칫하면 세월호 때처럼 우리가 수습이 안 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실시간으로 봐야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고 그런 불길한 생각도 들었다.
근 10년간 100명 넘는 사람들이 한 꺼번에 목숨을 잃은 대형 참사가 3차례나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때도 사고 원인들에 대한 추정이 쏟아졌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전부 항공 전문가가 되어 나름대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박 센터장은 “왜냐하면 궁금한 것”이라며 “일어나면 안 되는 거지만 일어났으니까 도대체 왜 일어났는지가 일단 궁금할 건데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전부 추측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 추측으로 인해서 누군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걸 충분히 생각을 해야 되는데 초기에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까 SNS 이용자들이 하는 추측은 그렇게 유해하거나 그러지 않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건 상관이 없는데 이제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혹은 매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과도하게 추측하기 시작하면 이건 굉장히 위험해진다고 생각을 한다.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는 책임 주체의 명백한 실책이 비교적 확실했다. 그러나 이번 참사는 비행기를 몰았던 기장이나, 항공사나, 공항이나 각각의 부분적 책임을 갖고 있을 뿐이다. 더구나 결과적으로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죽었기 때문에 지켜보는 일반 국민들도 이런 저런 가정법을 많이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최악의 결과였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이다. 박 센터장은 “(해당 기장은 최선을 다해서 비상 운행을 한 것 같고)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잘잘못을 논하기는 어렵다. 다만 너무 안타까운 결과와 유족들 앞에서 그분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눈에 보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결과가 너무 안 좋았기 때문에 어떻게 1명이라도 더 구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안타까움 때문에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한 그런 기대감 섞어서 이야기를 하는 건데 사실 그거는 기장이나 그런 분들의 선택의 문제여서 왜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얘기는 사실 안타까움의 표현일 뿐 다른 의도는 없을 것 같다. 세월호하고 비교를 하게 되는데 세월호에 분노했던 이유는 이준석 선장을 비롯 선원들이 자기들만 살겠다고 탈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기장이 어떤 조치를 했는지는 하나하나씩 밝혀지게 될 것이고 아직까지는 이 부분에 대해서 기장이나 승무원의 잘못을 이야기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참사에서는 더 이상 사고 원인을 두고 왈가왈부하지 말고 뉴스로부터 잠시 거리를 두고 말을 아끼자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정주식 대표(토론의즐거움)는 페이스북을 통해 “사고 수습보다 혼란스러운 본인 마음 수습이 먼저인 사람들. 혼란에서 벗어나려고 규탄의 대상부터 찾는 사람들. 본인이 늘상 하던 주장에 사건을 덮어씌워 편안하게 설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명쾌한 해답이 아니라 혼란을 차분히 견디는 능력이 아닐까”라고 강조했다. 박 센터장도 “사실 우리나라 국민들이 대형 참사를 근래에 자주 겪다 보니까 이 대형 참사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대해서 많이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근 10년 내에 대형 참사를 세 번째 겪고 있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참사 이외에 다른 것들을 신경 쓰기 시작을 했다. 원인을 찾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지만 잘 모르는 비전문가군에서 이야기를 확산시키는 것에 대해서 되게 조심스러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형 참사라는 건 어떻게 보면 어쩔 수 없었다로 수렴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거의 대부분 인재일 수 있어서 원인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인재 요소들과 사고 원인들이 바로 구분되고 바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추측성 이야기들을 많이 줄이자는 얘기들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같다.
지난 두 참사와 달리 이번 참사 정국에서는 정치인들의 막말이나 정권을 공격하는 여론이 거의 없었다. 일단 윤석열 대통령이 직무정지된 상태이며 정권의 잘못이 부각되어 공격을 받는 요소가 없기 때문에 반격용으로 여권 정치인들이 거친 말을 쏟아낼 필요가 없었다. 박 센터장은 “국가적으로 잘못을 이야기할만한 타겟이 사라진 상황이 크다”며 “아직 모른다. 최상목 권한대행과 당국이 수습을 어떻게 하느냐 대응의 문제에 따라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번에는 정부 차원에서 대응해서 결과를 다르게 할 수 있는 여지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세월호 때만 하더라도 대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던 이유는 희생자들이 생존한 채로 꽤 오랜 시간 배 안에 있었고 그걸 전국민이 생중계로 지켜봤다. 현장에 출동한 해경도 무능했지만, 대형 여객선이 침몰해서 당황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 중앙정부가 빠르게 판단해서 갑판 위로 나오도록만 했으면 됐는데 그걸 안 했다. 이태원도 포스트 코로나 이후 처음 맞는 할로윈데이 기간이었던 만큼 조금만 대비책을 세웠다면 다를 수 있었다. 압사 사태 1~2시간 전에 관련 신고가 들어왔음에도 경찰이 깔아뭉갠 부분도 있다. 그에 비해 이번 참사는 국가의 잘못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할만한 부분이 아직까진 없다.
그렇다고 구조적으로 짚어봐야 할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흔히 기업들이 고수하는 비용절감 문제가 이번에도 작용했다. 제주항공은 소위 저가항공 업계에서 고수익을 얻기 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항공기를 들여와서 미친 듯이 돌렸으며 그에 비해 정비에는 소홀했다. 타 항공사들에 비해서도 과한 부분이 있다. 대주주 애경그룹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다. 무안공항과 유사한 함량미달 공항들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 생겼고 선거철마다 단골 공약으로 제시되고 있는 상황도 우려스럽다.
말씀해주신 자본주의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저가항공사의 입장에서 항공사를 돌리는데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크다. 기체 구입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무리하게 갔던 것 같다. 구조상으로 그렇게 됐다. 정비사도 충분하고 기장들도 충분하고 기체든 사람이든 휴식 시간도 충분하게 마련을 해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 것이다. 근데 그러면 어느정도 수익성을 내려놔야 가능하다.
유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남겨진 유족이 중요하다. 나아가 승무원이나 기장 등 다른 항공업계 종사자들의 트라우마도 염려된다. 박 센터장은 “사실 그분들은 동료의 죽음이기 때문에 더 힘들 것 같고 이번 사고 기종과 같은 기종의 기체도 여전히 운항을 해야 할텐데 그분들이 트라우마를 앓게 됐다고 해서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없다”며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에서 혹은 회사 차원에서 나서서 적극적으로 대응을 해줘야 된다”고 주장했다.
일반 국민들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유족들한테 위로가 되는 상황은 아니다. 그분들한테는 그야말로 날벼락이니까. 중요한 건 내 이웃 내 가족이 어쩌다가 이런 사고를 당했는지 그리고 이런 사고에 대한 책임이 누구한테 있는지 그 책임자를 어떻게 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이 나오는 게 우선이다. 보상금을 얼마를 준다고 그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끝으로 박 센터장은 “김영삼 정부 후반기에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외환위기 등등 계속해서 큰 사건들이 터졌었는데...”라며 “지금은 그때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것이 그만큼 대한민국 국민들의 성숙도가 많이 달라졌다”고 강조했다.
유족에 대해 막말을 하거나 참사 자체를 지나치게 가십거리 대상화로 여기지 않고 이에 대한 성숙함이 돋보인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번 참사에 대해서도 대응을 잘할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앞으로 이런 일이 정말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1년 365일 안전한 대한민국이기를 바라면서 마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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