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사람과 사물들을 지나 멀리, 더 멀리까지 어떤 힘이 퍼져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작품과 역할을 거치며 한복의 아름다움과 힘을 익히 익혀온 김태리 배우가 4명의 한복 디자이너와 함께 첫 한복 화보를 촬영했다. 창덕궁이 문을 열기 전인 아침 8시 30분, 한복을 갖춰 입은 그가 한국의 가장 고아한 정원, 창덕궁 후원을 선선히 걷기 시작했다. 사위는 고요했고, 때마침 햇살이 쏟아졌으며, 간혹 새소리가 여백을 채웠다. 촬영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앞의 그는 어느 순간 6백 년의 시간을 멀리 거슬러 오르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고요하게 침잠하며 쌓이는 힘이, 그날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공기가 우리를 에워쌌다.
한복 치마의 우아한 주름 형태가 돋보이는 한복 스튜디오 혜온(Studio Hyeon), 머리 장식 메종드윤(Maison de Yoon)
4점의 도기는 잊혀가는 흑유도기(黑釉陶器)의 전통을 잇는 청곡(淸谷) 김시영 작가의 작품.
한복을 입으면 겉은 한없이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속은 강인해지는 듯 내면에 힘이 생겨요. 그 내면의 힘이 은은하게 밖으로 넓게 퍼져나간다고 상상하며 화보 촬영을 했어요.
지금 어느 때, 어느 자리에서 이 질문에 답을 적고 있나요. 창밖으로는 무엇이 보여요?
아주 오랜만에 친구와 외식으로 곰탕을 먹고 골목들을 돌아다니다가 예전에 가본 적 있는, 지금은 이름이 바뀐 카페에 들어와 창가에 앉아 있어요. 오늘은 올겨울의 첫눈이 내리는 날이고, 하얀 하늘에서 눈이 무지하게 내리고 있어요. 오늘 서면 인터뷰를 작성할 생각은 없었는데, 문득 이 첫 질문이 저 무지하게 내리는 눈발 사이로 스쳐 지나가며 딱 지금 아닌가 싶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2024 한복웨이브’ 프로젝트 화보를 함께 촬영했습니다. 곧 뉴욕 타임스 스퀘어와 파리 스타디움 코마르탱(Citadium Caumrtin) 옥외 광고로 공개될 예정이고요. 어떤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에 함께하게 됐어요?
제안을 듣고 너무 좋았어요. 우연히 시대극에 많이 참여했고 한복을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한복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거든요. 기쁜 마음으로 함께하게 됐습니다.
그간 여러 작품에서 특정 역할로 한복을 입었지만, 화보 촬영은 처음이죠. 4명의 한복 디자이너가 김태리 배우를 생각하며 여덟 벌의 한복을 완성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새삼 한복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했나요?
그러고 보니 화보로는 처음이네요. 디자이너 분들과 미팅하는 것도 굉장히 특별한 기회였고요. 한복을 입으면 겉은 한없이 부드럽고 유연하지만, 속은 강인해지는 듯 내면에 힘이 생겨요. 그 내면의 힘이 은은하게 밖으로 넓게 퍼져나간다고 상상하며 화보 촬영을 했어요. 한복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사람과 사물들을 지나 멀리, 더 멀리까지 어떤 힘이 퍼져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느낌을 살려야겠다 생각했고요.
지난 11월에 드라마 <정년이>가 종영했죠. 2021년부터 정년이와 긴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별천지’를 다녀온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는 중인가요?
생각해보면 아주 오랜 기간이었고, 그만큼 허무감 같은 것도 드는 것 같고 그래요. 벌써 아득히 오래된, 전생 같은 기분도 들고요. 일을 안 하고 있다는 느낌에 익숙해지려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은 어떤 동기랄까 움직임에 대한 욕구가 하나도 없어 당황스러워요. 일단 좋아하는 예능 프로 같은 걸 보고요. 근데 또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닌지라 그 일들을 챙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드라마 <정년이>에서 소리와 무대 연기, 1950년대 시대 배경과 사투리 연기, 극 안에 존재하는 4개의 큰 무대를 치러냈습니다. 호흡을 맞추는 배우도 많았죠. 험준한 산을 넘고 난 지금 배우에게 무엇이 남아 있나요?
진심이 남은 것 같아요. 제 진심만큼은 모두에게 전달되었다고 여겨지고, 해볼 것은 다 해봤다는 작은 성취도 있고요.
<정년이>를 보는 동안 탄복하곤 했습니다. 성실을 뛰어넘는 강력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작품에 스스로를 온전히 다 쓰고자 하는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다고 보나요?
단순해서 그래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지레 안 될 것을 예상하며 안 하진 않아요. 사실 죽자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제 어떤 노력들이 남들 눈엔 과하게 비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는 게 우습게도 민망할 때도 많았어요. 그럼에도 열심히 임한 건 주인공인 제가 묵묵히 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무의식으로 느꼈던 거 같아요. 행동으로 마음을 보이자. 그리고 결과가 잘 나오지 않더라도 스스로 떳떳한 과정을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문득 김태리 배우는 한계를 마주할 때면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궁금해집니다.
먼저 한계라는 것을 정의해봐야 할 거 같아요. 제게 한계는 더 이상 헤쳐나갈 수 없는 결과로서의 상태거든요. 과정 중에는 한계라는 생각을 잘 안 하긴 해요. 그래서 헤쳐나간다기보다는 그냥 하는 거죠. 대신 한계라고 인지하기 전에 해볼 만한 걸 다 해봤나, 혹은 내가 그럴 수 있는 상태나 상황인가 생각해보고, 여기가 지금 나의 한계구나 하고 인정해요. 울거나 웃거나 하면서.
한복 치마의 우아한 주름 형태가 돋보이는 한복 스튜디오 혜온(Studio Hyeon), 머리 장식 메종드윤(Maison de Yoon).
한복웨이브 사업은 잠재력과 기술력을 지닌 국내 한복 기업과 한류를 이끄는 문화 예술인이 협력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한복 상품을 개발하고, 한류를 통한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추진하는 사업입니다.
2024 한복웨이브(한복분야 한류연계 협업콘텐츠 기획·개발)
2024 Hanbok Wave(The Korean Wave Collaboration Content Planning and Development Support Project)
주최 | 문화체육관광부(Ministry of Culture, Sports and Tourism)
주관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orea Craft and Design Found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