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바이킹의 대이동이 일어났던 8세기부터 최근까지 세계사의 흐름에 따라 전개된다. 대구를 말려 식량으로 사용함으로써 먼 거리를 항해할 수 있던 바이킹은 콜럼버스보다 500년 빠르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영국의 종교 박해를 피해 바다를 건넌 청교도들이 북아메리카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대구를 잡아 무역했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들이 하루 16시간이라는 혹독한 노동을 버티게 한 힘도 소금에 절인 대구에 있었다.
다른 생선에 비해 커다랗고 번식이 왕성한 대구는 머리부터 알과 위, 그리고 간과 껍질까지 식용으로 사용되기에 유럽인들의 식재료로 인기를 끌었다. 자연스럽게 대구를 둘러싼 유럽 국가들의 경쟁이 심해졌고, 대구 어획을 둘러싼 치열한 갈등은 전쟁으로 이어져 세계사에 대구의 존재감을 뚜렷하게 입증했다.
1700년대 영국이 식민지인 뉴잉글랜드에 시행한 대구 무역 제한은 미국 독립전쟁의 시발점이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어업 기술의 발달로 대서양에 분포한 대구의 수가 줄어들자, 급기야 아이슬란드와 영국은 아이슬란드 근해서의 대구 어업권을 둘러싸고 세 차례에 걸쳐 ‘대구 전쟁’까지 벌인다.
이 전쟁은 세계 각국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하는 계기가 됐다. 대구는 인류의 행방을 끝없이 좌우했다. 이정모 전 국립과천과학관장이 “대구는 전 세계를 연결하는 끈”이라고 표현한 이유다.
<대구>는 역사의 흐름 속에 등장한 대구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자연이라는 선물을 무자비하게 탐하는 인류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바다의 빵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류 역사상 중요한 어종인 대구는 어자원 파괴의 상징이기도 하다.
19세기 과학자들은 수백만 개의 알을 낳는 대구의 산란성을 근거로 대구를 제한 없이 포획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무분별한 남획은 1940년대 130만t이었던 포획량이 19 90년대 20만t으로 줄어들며 멸종 위기를 초래했다. 마침내 1992년 세계 4대 어장으로 불렸던 그랜드뱅크스 어장에 대구 어업 금지령이 내려졌다.
저자는 인간의 욕심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인류의 대응에 따라 자연의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고 말한다. <뉴욕타임스>가 “세계사를 조명하는 새로운 도구”라고 평하고, <파이낸셜타임스>가 “자연의 선물에 대한 예찬인 동시에, 인류가 그 선물을 무례하게 다루면 과연 무엇을 잃어버리게 될지를 경고한다”라고 했듯 이 책의 가치는 해를 거듭할수록 제고되어야 한다.
기후위기와 자원 고갈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지금, 우리는 다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대구>가 음식 관련 명저에만 주어지는 ‘제임스 비어드 상’을 수상한 것은 다양한 대구 요리법을 한 권에 압축해 놓은 전무후무한 책이기 때문이다.
또 철저한 자료 수집에 근거한 저술로 명성 높은 쿨란스키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대구를 통해 세계사의 흐름을 보고, 당시의 문화생활을 맛보고, 앞으로의 인류의 향방을 음미하는 이 책은 그야말로 세계사 잡학사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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