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정부는 취약한 대학을 돕겠다는 어미 닭 신드롬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대학을 지원하지 않는 대신, 규제도 하지 말아야 한다.”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The Institute for Industrial Policy Studies, IPS) 이사장은 본지의 신년인터뷰에서 국내 교육계에 애정 어린 쓴소리를 던졌다. 조 이사장은 대학의 이원화 체제를 기반으로 국립대는 교육중심대학과 연구중심대학의 역할을 맡기고, 사립대는 정부의 지원과 규제의 늪에서 벗어나는 대신 자율성을 가지고 독립할 것을 주장했다.
조 이사장의 이 같은 의견은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역임한 국립인천대 총장 시절 추진한 혁신의 경험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당시 조 이사장은 조직도를 뒤집고, 구성원들에게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등 대학을 이끄는 주체가 총장, 보직자가 아닌 직원들이라는 인식과 자신감을 심어줬다.
이뿐만이 아니다. 조 이사장은 국립인천대를 연구중심대학이자 “1등(First one)”이 아닌 ‘유일(Only one)’을 지향하도록 함으로써 혁신에 앞장서는 대학으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전세계 혁신대학을 대상으로 대학순위를 매기는 WURI(World’s Universities with Real Impact) 랭킹 평가에서 국립인천대는 전세계 35위 혁신대학으로 선정됐다.
조 이사장은 국내 교육계를 대표하는 ‘석학’이자 ‘혁신’의 아이콘으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발전자문위원장 겸 석좌교수를 역임하며 제자 양성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였다. 본지는 지난달 27일 조 이사장을 만나 국내 고등교육의 문제점, 대학의 위기 극복 방안, 국내 교육계가 나아갈 길 등에 대해 들어봤다.
- 현재 한국의 고등교육 체제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고,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한국 대학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고객이 정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은 교육부가 원하는 교육의 형식만을 맞춘다. 그러나 대학의 고객은 학생과 졸업생들이 취업하는 기업이다. 따라서 대학은 학생들이 원하고, 기업이 원하는 교육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진정한 고객인 기업들이 대학을 외면하고, 학생들은 대학 외의 다른 기관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대학을 보호하겠다는 ‘어미 닭 신드롬’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대학을 지원하지 않는 대신, 규제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 졸업생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기업을 고객으로 모시고, 다른 대학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다만, 이렇게 대학 교육을 대학산업으로 보는 시장만능주의는 교육을 신성시하는 한국민의 경직된 가치관 속에서 현실적 대안이 되긴 어렵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이 있을까.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을 구분하는 이원화를 제안하고 싶다. 우선, 국립대학은 A형 교육중심국립대학과 B형 연구중심대학이라는 2가지 군으로 나눠 제각기 다른 역할을 맡긴다. 그리고 사립대학은 앞서 얘기한 것처럼 정부의 지원과 규제의 늪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가지고 독립하는 것이다.”
- 장기간 동결된 등록금과 저출산으로 인한 재정적 어려움은 대학가의 난제다. 재정 부족은 교육 인프라와 연구 환경의 질을 저하시켜 교육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이 같은 이슈는 교육부가 대학을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돕겠다는 태도를 가지는 한 해결되지 않는다. 대학을 산업으로 보고 경영효율성을 도입하면 훌륭한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대학 재정을 건전화하는 방법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또한 취업 시장과의 미스매치 문제도 대학이 눈 앞에 있는 정부가 주는 지원만 바라보고 멀리 서 있는 기업을 고객으로 섬기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문제다. 이 문제는 대학이 취업시장, 즉 기업을 진정한 고객으로 모실 때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본다.”
- 최근 국가교육위원회 기조강연에서 고등교육, 평생교육, 직업교육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점이 인상 깊었는데.
“기조강연에서 전달한 메시지는 명확하다. 대한민국은 30대 선진국을 훌쩍 뛰어넘어 10대 선진국 중 하나로 안착했다. 최근에는 세계 특허 출원, 국가브랜드, 군사력 등 다양한 지표에서 세계 4위권의 경쟁력을 갖춘 최선진국이 되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앞장서고 있는 60대, 70대, 80대의 인력에 대한 석박사교육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다. 따라서 고등교육, 평생교육, 직업교육을 각각 별도의 교육으로 보지 말고, 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통합적으로 작동할 때 100세를 지향하는 국민 개개인을 통해 한국이 이러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고등교육, 평생교육, 직업교육 등 이러한 세 가지 교육이 교차하는 지점에 국민이 있어야 한다. 국민이 고등교육을 평생교육 형태로 받으면서 그 내용으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는 통합적 접근을 한다면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고, 사회적 기여를 확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등교육이 첨단과학에 대한 학문적 지식을 제공하고, 평생교육이 건강한 100세 국민에게 첨단과학에 대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직업교육이 첨단과학으로 무장한 100세 국민을 통해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게 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특히 한국의 60~80대 노령인구가 AI, 바이오, 우주 과학 등 첨단산업에서 한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
- 그렇다면 기존의 정년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미인지.
“기존의 60세, 또는 65세 정년제도는 100세 시대를 대비하는 데 비효율적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난 현대 사회에서 정년 연장 또는 폐지와 더불어 평생학습과 재취업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정년제도가 고정돼 있으면 고령층의 경험과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정년을 유연화하면 고령 근로자들이 자신의 건강 상태와 역량에 따라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단기 재교육 프로그램과 창업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과 지역 경제가 고령층의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과 세제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
- 앞서 제안한 100세 시대 통합교육 시스템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
“고등교육, 평생교육, 직업교육이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는 구조가 100세 시대에 필요한 통합교육 시스템이다. 예를 들어, 평생교육은 기술변화에 따른 개인의 재교육을 가능하게 하고, 직업교육은 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며, 고등교육은 사회적 통합과 학문적 발전을 목표로 한다.
100세 시대 통합교육 시스템의 주요한 특징은 유연성과 지속 가능성이다. 학생들이 생애 어느 시점에서든 자신의 필요와 관심에 따라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학습 경험이 경제적 자립과 사회적 기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제안하는 것이 바로 ‘Tri-versity’ 개념이다. 이는 대학이 국민의 생애 주기마다 필요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의 학습을 인생의 세 단계에 걸쳐 나눠서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모델이다.”
- 지나치게 이상적인 모델이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을 것 같다. ‘삼중 나선 모델(Triple Helix)’과 같은 유기적이고 융합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 아닐까.
“앞서 제안한 대학-고등교육, 정부-평생교육, 기업-기업교육으로 이뤄지는 역할 분담의 진정한 의미는 ‘비중’이다. 즉, 각 조직이 자신이 맡은 교육 이외의 다른 교육을 담당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교육에 비중을 높이 두라는 뜻이다. 제가 제시한 모델에 ‘삼중 나선 모델(Tripl Helix)’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셔서 감사하다.”
- 대학, 정부, 기업이 유기적 협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대학, 정부, 기업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은 학문적 지식과 창의적 역량을, 정부는 재정적 지원과 정책적 뒷받침을, 기업은 현장 경험과 실질적인 고용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협력 체계는 단순한 분업을 넘어 국민 개개인의 성장과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한 통합적 접근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혁신 기술 분야에서 대학과 기업 간의 산학 협력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 ‘평생교육’이 학령인구 감소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구체적 방법이 무엇인지.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 입학 정원의 축소를 초래한다. 특히, 지역 대학들의 경우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는 지역 경제와 연계된 대학의 역할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지방 소멸이라는 사회적 문제로도 연결된다. 그러나 세계의 상당 지역은 인구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주변에 있는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의 동남아 국가들은 인구 증가가 가히 폭발적이다. 여기에 더해 전세계 국민의 평균 교육기간이 지난 60년 동안에 2배 이상 올랐다. 개발도상국에서는 1950년대의 2년이 2010년대에 7년이 됐고, 선진국에서는 6년이 12년으로 늘었다. 세계 교육산업은 가장 성장률이 높은 산업 중 하나다. 다라서 교육산업을 국내 학령인구 감소 문제로 보면 사양산업이지만, 교육산업을 글로벌 산업으로 보는 순간 성장산업이 된다.”
- 국내 유학생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한국 교육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K-Wave를 활용해 한국을 글로벌 교육의 허브로 만들 수 있다. 이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유럽 국가에 있는 수많은 대학들이 한국 대학들과 학생 교환 활동을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유럽으로 가고 싶어하는 한국 학생들이 한국으로 오고 싶어하는 유럽 학생보다 압도적으로 많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서유럽 대학 총장들이 한국 대학 총장들과 학생 숫자를 따지지 말고 교환학생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을 한다. 유럽 대학으로 가고 싶어하는 한국 학생들 숫자보다 한국 대학으로 오고 싶어하는 유럽 학생 숫자가 더 많다는 의미다.
한국 대학에 유럽 대학의 학생을 현재보다 더 늘리기 위해서는 영어 기반 교육 과정 확대, 국제 학생을 위한 장학금 및 지원 정책 강화, 글로벌 산업과 연계된 학위 프로그램 개발 등이 필요하다. 또한 한국에 온 유학생들에게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글로벌 인재가 한국에서 성장하며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한국은 글로벌 교육 허브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 향후 10년 내에 한국의 교육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무엇이 되리라 보는지.
“향후 10년 동안 우리는 고등교육, 평생교육, 직업교육의 유기적 통합과 전 국민 교육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주체가 협력해 통합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특히, 기술 발전과 고령화 사회에 맞는 유연하고 개인 맞춤형 교육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한국이 글로벌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조동성 이사장은…
조동성 산업정책연구원 이사장은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aSSIST) 발전자문위원장 겸 석좌교수로, 제네바에 있는 UN 산하기관인 국제연합훈련조사원의 협력대학인 SDG경영대학 이사장도 맡고 있다. 1978년부터 2014년까지 36년간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교수로 봉직했으며, 서울대 국제지역원장·경영대학장, 북경 장상강학원 전략전공 교수, 국립인천대 총장, AI경영학회 창립회장, 국제경영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대담=최용섭 주필 겸 편집인 정리="백두산" 기자 사진="한명섭">대담=최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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