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를 위한 100명의 목소리와 거버넌스

기후정의를 위한 100명의 목소리와 거버넌스

프레시안 2025-01-04 21:03:01 신고

8개의 테이블에 앉은 사람만 100명이 넘었다. 행사 진행 인력을 제외하고 말이다. 지난 11월19일, 온양제일호텔에는 성별도, 나이도, 소속 기관도, 입장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탄소중립 및 디지털 산업으로의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지원 활성화 방안에 대한 연구 내용을 듣고, 궁금한 점을 묻고, 생각을 말하면서 공통의 의견을 만들기 위해 3시간여를 함께 했다. 이날 집담회 행사는 충청남도 노동전환지원센터가 주관하였다. 충남에서는 보령과 태안 등 기초자치단체별로 기후정의단체와 시민단체 등이 주관하는 정의로운 전환 집담회가 몇 차례 진행되었는데, 충남도가 노동전환 지원을 주제로 집담회를 주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광역지자체 주도 노동전환 집담회: 폐쇄 임박 발전소 노동자부터 고등학생까지

충남도가 이 집담회를 기획한 것은 탄소중립 및 디지털 산업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노동전환 지원 방안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역할을 모색하기 위함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충남도는 석탄화력발전, 자동차부품, 철강,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의 산업이 소재하고 있어 탄소중립 및 디지털 산업으로의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 필요성과 이에 따른 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하게 요구되는 지역이다. 정부의 온실가스감축계획(NDC)과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석탄화력발전소 59기 중 28기가 2025~2036년에 순차적으로 폐지될 예정인데, 그 28기 중 14기가 충남도 관내에 있다. 충남도는 또한 전국의 자동차부품 제조업체(8644개소) 중 11.5%(998개소)가 밀집한 지역으로, 종사자 수로 따지면 17.4%(전국 24만7000명 중 4만3000명)에 이른다. 당진 현대제철을 필두로 한 철강업, 대산 석유화학단지에 소재한 다수의 석유화학업체까지 포함하면 충남도 내 어느 한 곳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에 따른 대책 모색이 시급하지 않은 곳이 없다.

집담회 참석자 면면은 다양하였다. 당장 일자리 상실 위기에 처한, 또는 직무 전환이 필요한 노동자들과 이들이 가입한 노동조합 관계자들에서부터 기업체 담당자, 광역 및 기초 지자체의 일자리·기후대응·지역경제·사회적경제 담당자, 노동부 지역고용노동청 관계자, 노동권익센터 및 비정규직지원센터와 같은 지역 내 노동단체 활동가, 산업정책 및 노동정책 전문가, 그리고 공업고나 마이스터고 학생들과 관내 고등학교 교사들이 참석하였다. 탄소중립 및 디지털 전환에 따라 산업과 노동정책만이 아니라 사회안전망, 지역경제, 마을공동체, 세대 간 통합, 직업교육훈련정책 등 다방면에 걸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반증했다. 참석자들은 충남도 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따른 영향 분석과 자동차산업의 현황과 전망, 충남 노동전환지원센터의 역할과 운영 방안 등 3개 주제에 대한 발표를 듣고 8개 분과로 나뉘어 토론을 진행하였다. 분과는 석탄화력발전(3개), 자동차(2개), 제철철강·석유화학·운수산업(각 1개)으로 구성되었다.

발전소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고용안정 지원 방안 구체화 요구

각 분과 논의에서는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이후 발전산업 재구조화 전망은 무엇인가? 공공 신재생에너지 산업으로의 전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노동전환 협의체 구성시 원청과 하청의 특성을 어떻게 잘 반영할 수 있는가? △전환 교육은 어떤 프로그램으로, 어떻게 진행되는가? 교육 이후 재취업 시 현재 임금과 노동조건 수준을 보장하는 수평 이동은 가능한가? △발전소 부두에서 일하는 석탄하역노동자들의 물량 감소에 따른 임금 하락에 대한 대책이 있는가? △정의로운 전환 기금은 어떻게 결정하고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등이다. 다양한 의견도 쏟아졌다. 정의로운 전환 개념과 의미, 노동전환지원 센터의 역할 등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강화할 것, 실태조사를 더욱 세세하고 구체적으로, 또한 지속적으로 실시할 것, 불가피한 실직과 전직 시에도 고용을 보장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할 것 등이다.

질문과 토론을 이어가면서 참석자들은 정부를 상대로 노동전환 지원을 위해 시급히 해야 할 일도 제안하였다. 국회와 중앙정부에 대해서는 이미 몇 개의 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지 지역 지원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할 것과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을 요구하였다. 충남도에 대해서는 석탄화력발전소 단계적 폐지와 내연기관차 축소에 따른 대체산업(신재생에너지사업 등) 발굴과 녹색일자리 창출, 정의로운 전환 기금의 확대 운영을 주문했다. 노동전환지원센터에는 노동전환 지원산업 수요조사와 지원사업의 활성화, 지역 이해관계자 참여에 기반한 정부 대책 수립을 위한 공론장 마련 등을 요구하였다.

ⓒ이정희

날줄과 씨줄이 교차하는 지역 거버넌스의 가능성

이날 집담회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는 것과 함께 지역 수준에서의 거버넌스를 통한 기후위기 대응 방안 모색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한 지방정부 거버넌스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탄소중립기본법에 근거한 2050지방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고용정책기본법에 근거한 지역고용심의회, 지방정부가 자체 제정한 조례 등에 기반한 위원회 등이다.

우선, 탄소중립기본법에서는 지방자치단체의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 추진을 위한 주요 정책 및 계획과 그 시행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하여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자치단체별로 2050 지방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도지사는 10년을 계획기간으로 하는 시·도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시행하여야 하고, 이 시·도 계획 수립 및 변경은 이 지방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둘째, 고용정책기본법에서는 중앙정부 수준의 고용정책심의회와 함께 광역 시·도에 지역고용심의회를 두어 지역 내 고용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토록 하고 있다. 시·도 지사는 이 지역고용심의회 심의를 거쳐 지역 주민의 고용촉진과 고용안정 등에 관한 지역고용정책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하여야 한다. 지역고용심의회는 별도로 구성할 수도 있지만 노사관계발전법에 따른 지역 단위 노사민정협의체가 구성되어 있는 경우 이를 지역고용심의회로 볼 수 있다. 셋째, 앞선 2개의 유형과 관계없이 지방정부가 자체 제정한 조례 등에 기반한 위원회도 있다.

충남도에는 탄소중립, 정의로운 전환, 노동전환 지원 등을 주 기능으로 하는 5개의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는데, 충남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는 첫 번째 유형, 충남도 노사민정협의회는 두 번째 유형에 각각 해당한다. 충남도 노사민정협의회는 산하에 노동전환지원특위를 설치하였다. 이날 집담회를 주관한 노동전환지원센터는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 지원 및 이·전직 지원에 필요한 사업을 수행하는 기구인데, 노동전환지원위원회 설치 근거인 조례에 기반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기고글("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산업·업종별 거버넌스가 필요하다")에서 중앙과 지방정부 간 중층적 구조에서 ‘사회적 협의’와 ‘단체교섭’이 함께 이뤄지는 거버넌스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였다. 충남의 사례는 사회적 협의가 날줄(중앙과 지역)과 씨줄(지역 내 이해관계자들)이 상호교차하며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옷감을 만들어 내는 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날 집담회는 이 구조가 법률과 조례상의 조문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정부나 기업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들이 그 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 참여하여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거버넌스의 다른 한 축은 단체교섭은 여전히 기업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 현재 직면한 전환 의제는 특정 기업 내 노력만으로는 풀 수 없는 과제인 만큼 발전5사와 자회사 및 협력사가 함께 하는, 또한 완성차와 협력사가 함께 하는 업종 수준에서의 단체교섭 구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함께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비상행동 활동가들이 16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기후 위기를 유발하는 석유·가스 시추계획을 중단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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