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드넓은 숲이, 울창한 산이 되어주는
속 깊은 사랑에 대하여.
이준혁 배우님은 커플 화보가 처음인 거죠? 오늘 첫 컷 촬영할 때 어색하신지 뚝딱뚝딱.(웃음)
준혁멜로 분위기의 화보는 처음이라서요.
지민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도 “지민 씨, 저 이런 거 처음 해보니까 알려주세요. 어떻게 하면 돼요?” 하시고. 귀여웠어요. 어쩔 줄 몰라 하는 거죠. 직전 작품이 <좋거나 나쁜 동재>니까 남자들끼리 있다가 와서 아기자기한 거 하려니까 처음에는 되게 낯설었던 것 같아요.
준혁 뭐, 워낙 전문가니까.
지민 전문가 아니야.(웃음) 말도 안 돼. 이런 말 절대 쓰시면 안 돼요. 알았죠?
준혁 사실이잖아요. 지민씨 칭찬에 약하다? 근데 나도 이 마음을 알아. 나도 칭찬에 약해. 이렇게 뚝딱거리게 돼.
준혁배우님, ‘전문가’와 함께 하는 작업 어떠셨나요?(웃음)
준혁 지민 씨가 출연한 멜로영화를 많이 봐왔고, 팬심으로 작품을 같이 했다는 게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거든요. 요새 들어 함께 작업하는 배우분들에게 더 큰 고마움을 느껴요. 장인의 연기를 내 눈앞에서 고화질로 볼 수 있다는 게 놀라운 경험이 아니었나 싶어요. 아이맥스 그 이상의.
지민자꾸 8K로 내 연기를 봤다는 거예요. 방금 전까지 같이 연기해놓고는. 상대 배우가 아니라 마치 제삼자처럼 이야기를 하셔가지고.(웃음)
준혁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현장에서 내가 연기할 것에 치이다 보니 여유가 없었어요.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니 이제야 상대의 연기가 잘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더 고마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저에게 배우로서 큰 자극이 되고요. 연기로 극을 더 살려내는 경우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경이롭고 감동받거든요. 요새 제 큰 기쁨 중 하나예요.
1월 3일 SBS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의 첫 방송을 앞두고 있죠. 대본을 처음 읽던 날을 기억하나요? 어떤 날이었는지, 또 어떤 기분과 마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지민 대본을 받아 읽었을 때는 오랜만에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따뜻한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아 마음이 끌렸어요. 시대가 워낙 빠르게 바뀌고 변화하잖아요. 자극적인 요소가 포함된 작품이 많아진 시기인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한 헤드헌팅 회사 CEO인 ‘지윤’은 일에만 몰두해온 인물이다 보니 어떤 면에서 좀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요즘 사회에서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것 자체가 어렵잖아요. 일에서는 완벽주의자인데 인간적으로는 미성숙한, 아이 같은 모습이 지윤이의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비서 ‘은호’를 만나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조금씩 변화하는 이야기가… 어떻게 보면 예상 가능한 이야기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소재라고 생각했어요.
준혁 대본을 처음 받고 “어휴, 난 이런 거 못한다. 너무 어렵다. 낯간지럽다” 그랬는데.(웃음) 저와 가까운 친구인, 우리 회사 본부장이 지민 씨의 아주 오랜 팬이에요. 그 친구와 그동안 이야기한 일들이 꽤 이뤄졌는데, 그중 하나가 ‘지민 씨와 연기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운명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저 역시 팬이고요. 대본을 읽으면서는 ‘그래, 그럼 내가 이 역할을 할 수가 있느냐’ 생각하니… 저는 독특한 인물을 연기하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인데, 그간 하도 독특한 캐릭터만 하다 보니 필모그래피가 독특함으로만 채워졌더라고요. 근데 그 사이에 은호가 있으니까 외려 가장 독특한 인물이 되는 거죠.
작품으로 만나기 전 배우로서 호감을 가질 순 있지만, 함께 작품을 하고 난 다음의 감정은 변화할 수 있잖아요. 두 분은 어떤가요?
지민 준혁 씨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독특한 매력이 있어요. 그리고 굉장히 부지런해요. 처음에는 그저 과묵한 사람으로만 알았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런 것도 한다고?’ 하고 놀랄 만큼 관심사가 넓고 깊어요. 키우던 강아지를 추모하기 위해 동화책을 만들어 제게 선물해 주시기도 했죠. 게임을 만들었다고도 하고요. 제일 점수 높은 스태프에게 선물을 주기도 했어요. 본인이 몰두하는 무언가에 굉장히 깊게 들어가서 실행하더라고요. 저처럼 게으른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촬영이 다 끝난 지금 ‘이준혁’을 생각하면 귀엽고 웃음이 나요.(일동 웃음) 제가 겪은 준혁 씨는 오래 이 일을 했음에도 다듬어지지 않은, 본인만의 개성을 잘 지키고 있는 느낌이에요. 좋은 뜻이에요.
너무 좋은 칭찬이잖아요.
준혁 제 마지막 꿈이 스탠딩 코미디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민 되게 특이한 꿈이 항상 있어요. 저한테는 다음 작품으로 꼭 코미디물에서 만나자고 하더라고요.
준혁 가까이에서 본 지민 씨는 굉장히 단단하고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멀리서 볼 때는 외면의 아름다움이나 빛이 먼저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서 ‘오랜 시간 내면을 갈고닦아 왔구나, 그래서 이렇게 오래 이 일을 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자주 느꼈어요. 이 세계에서 이렇게 자기만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건 고통과 어려움을 강인하게 이겨냈기 때문인 거잖아요. 배울 점이 많아요.
시놉시스에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는 이야기’라는 문장이 참 좋더라고요. 성인의 성장담이죠. 두 배우 역시 이 작품에 임하며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나요?
지민 아무리 힘든 작품이라도 그 안에서 분명히 배우고 성장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연기라는 게 함께 하는 사람들과 호흡이 너무나 중요한 현장이기 때문 에 과정이 힘들었을지언정 지나고 나면 ‘이런 걸 내가 또 배웠구나’ 하는 깨달음이 분명히 있거든요. <나의 완벽한 비서>는 지윤 역할 자체가 저에게 잘 맞는 옷이 아니었어요. 전문직 여성 캐릭터를 맡은 적이 없어서 지윤이와 친해지기까지 그 과정이 쉽지 않았는데, 다른 배우들이 저에게 주는 에너지 덕분에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어요. 회사 내 직원으로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이 준비를 열심히 해오셨거든요. 상대적으로 제 미흡한 부분을 그분들의 에너지를 받으며 채울 수 있었어요. 경력이 오래되고 경험치가 많다는 이유로 ‘내가 현장을 이끌어가야지’ 하는 책임감 같은 것이 있었는데, 오히려 제가 에너지를 받으면서 촬영한 거죠. 이런 경험들이 쌓이며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하는 계기가 됐어요.
헤드헌팅 회사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이다 보니 두 배우 외에도 등장인물이 많더라고요.
지민 맞아요. 배경이 오피스다 보니까 직원으로 나오는 배우들이 저마다 매력적으로 연기하셔서 처음 대본 리딩할 때부터 ‘오, 재미있겠는데!’ 했어요. 나중에 촬영본을 보니 배우들이 이 장면을 이렇게까지 살려 연기했구나 싶더라고요. 많이 고마웠어요.
각자 기대하는 장면이 있다면요?
지민 지윤이가 은호의 집에서 은호가 차려준 밥을 먹는 장면이 있어요.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은호라는 사람에 의해 조금씩 틈새가 벌어지던 차에 그곳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지윤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장면이에요.
준혁 예술의전당에서 은호와 지윤이 마주 보는 장면이요. 스케일이 매우 큰 장면인데 인파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 딱 마주하거든요.
지민 맞아요. 예고편에도 나오는데 지윤이 “망했네” 하는 그 장면이에요. 인파 속에서 대사 없이 눈빛으로만 서로를 바라보거든요. 워낙 큰 장면이라 현장 상황이 소란하기도 했는데, 막상 촬영하니까 집중되더라고요. 주변에서도 그 장면이 너무 잘 나왔다고 해서 저도 기대하는 장면 중 하나예요.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촬영을 마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싶나요?
지민 맛있는 걸 먹을 때, 좋은 풍경 앞에 있을 때 함께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은호가 지윤에게 마음을 써주는 게 그 작은 것 하나하나부터인 것 같거든요. 대단한 에피소드가 생겨 ‘사랑하나 보다’ 하고 깨닫는 게 아니라 은호가 일상에서 조금씩, 소소하게 마음을 써주는 게 지윤의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서 사랑을 느끼거든요. 그런 것들이지 않을까…. 나이가 들면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지 않아도 같이 있을 때 편안하고, 좋은 것 앞에서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게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나 싶어요.
준혁 사랑이라… 지금 생각해보면 안심시켜주는 것 같아요. 그게 되게 큰 것 같아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은호처럼 마음을 써서 그 사람을 안심시키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 안심된다는 느낌이요. 어떻게 보면 지윤도 은호를 안심시키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렇게 서로를 안심시키는 존재들인 것 같거든요.
지민 지윤이 입장에서는 은호의 존재가 든든해지기 시작하는 계기가 있어요. 그 부분이 은호의 사랑이 느껴진 포인트인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을 할까요.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는 따뜻한 이야기가 주는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양념이 덜 된, 다정한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과 힘에 대해 느끼기도 했나요?
준혁 콘텐츠를 굉장히 다양하게 소비하는 시청자로서 자부심이 좀 있는데요.(웃음) 자극적인 것이 많아서 오히려 제게는 이 작품이 좀 튀는 느낌이 있어요. 왜 자극적인 음식만 먹다 보면 따뜻한 온면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지금은 이런 온면 같은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피자도, 마라탕도 필요하지만 뭐랄까 자극적이지 않은 건강한 느낌을 주는 음식이 당길 때거든요. 지금이.
지민모든 장르가 본연의 매력이 있지만 따뜻한 이야기가 주는 힘은 공감인 것 같아요. 남의 이야기 같지 않고, 가슴을 건드리는,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은 작품이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길게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작품을 고를 때도, 연기를 할 때도 따뜻한 이야기에 마음이 더 가요. ‘맞다, 나도 그럴 것 같고, 이랬었던 것 같아’ 싶은 이야기들이요. 또 이런 작품은 시간이 많이 흘러도 “ 제가 그 드라마 보고 많이 울었어요. 덕분에 많이 위로받았어요” 하는 이야기를 해주세요. 이런 말들이 따뜻한 이야기를 하는 작품의 힘인 것 같아요. 언제 꺼내 봐도 사람 사는 이야기는 다 비슷하잖아요. 이런 작품들은 뭔가를 가미하지 않아도 가슴을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두 분 다음 작품은 코미디로.(웃음)
지민 아… 네, 꼭 한 번.
준혁 정말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