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방기
" 실내의 온도를 높여 따뜻하게 하는 장치
-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시작하기 전에
윌리스 하빌랜드 캐리어는 에어컨의 기초를 만든 사람입니다. 인터넷에는 이 사람이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더라고요. 오늘 저는 겨울철 노벨 평화상 후보들을 소개해 보려 합니다. 라디에이터, 온수기, 전기장판, 온수 바닥 난방 등의 온열 기구로 인류를 추위에서 구원하신 위인들이죠.
1. 첫 번째 후보, 라디에이터
최초의 산업용 난방은 라디에이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업혁명의 시작은 증기기관이고, 라디에이터는 바로 그 증기로 공기를 따뜻하게 만드는 장치이기 때문이죠. 증기기관을 만들어낸 제임스 와트(James Watt)도 1790년대 일종의 라디에이터를 만들어 집에 설치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증기기관이 등장하고부터 다양한 형태의 라디에이터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증기를 사용하는 라디에이터는 압력 때문에 폭발하는 경우가 잦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 1854년 스티븐 골드(Steven J. Gold)이죠. 그가 만든 라디에이터는 기존의 것보다 훨씬 저압으로 작동하는 장치로, 생김새 때문에 매트릭스 라디에이터로 불렸죠. 당시 사용되고 있던 벽난로와 비교해 효율도 안정성도 높아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라디에이터가 됩니다.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라디에이터의 형태는 1863년 발명가 조셉 나슨(Joseph Nason)과 로버트 브릭스(Robert Briggs)가 그 전신을 만들고, 1872년 넬슨 번디(Nelson H Bundy)가 완성한 제품입니다.
아메리칸 라디에이터 회사(American Radiator Co.)는 1891년 많은 보일러와 라디에이터 제조업체들을 통합해 세계에서 가장 큰 라디에이터 제조사가 됩니다. 이 회사는 오늘날에도 존재하는데요. 바로 아메리칸 스탠다드(American Standard)죠.
2. 두 번째 후보, 온수기
옛날에는 따뜻한 물을 쓰려면 냄비에 물을 끓여서 사용했습니다. 씻는 물이라면 펄펄 끓는 냄비 물을 찬물과 섞어 미지근하게 만든 뒤에 바가지로 퍼서 사용했죠.
오늘날처럼 바로 온수가 나오는 기계는 1868년 처음 등장했습니다. 영국의 벤자민 와디 모건(Benjamin Waddy Maughan)이 발명했죠. 모건은 이 발명품을 아이슬란드 온천의 이름을 따서 가이저(Geyser)라고 불렀는데요. 가이저는 차가운 물이 뜨거운 가스에 의해 가열된 파이프를 통과하면서 온수가 되는 원리였습니다. 하지만 가스를 배기하는 장치가 없어 자칫하다가는 터질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장치이기도 했죠.
모건의 발명품을 안전하게 개량한 것은 연료 가스 제조 회사에서 일하고 있던 노르웨이의 엔지니어 에드윈 루드(Edmund Rudd)였습니다. 루드는 1880년 최초의 자동 저장 탱크식 가스 온수기 특허를 받았죠.
루드가 온수기를 개량한 때와 비슷한 시기에 켐프(Clarence Kemp)도 온수기를 생산하고 있었는데요, 1891년 그는 조금 특별한 온수기를 발명합니다. 가스로 물을 데우는 장치가 아닌 태양열로 물을 데우는 온수기인 클라이맥스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었죠. 물이 흐르는 파이프를 지붕 위에 노출해 태양열로 파이프를 데우는 형식이었어요. 뜨거운 물을 사용하기 위해 한여름에도 난로를 데워야 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생각해 만든 것이었죠.
3. 세 번째 후보, 전기장판
최초의 전기장판은 1912년 의사였던 사무엘 러셀(Samuel Irwin Russell)에 의해 발명됩니다. 결핵환자의 몸을 따뜻하게 만들기 위해 발명한 것이었죠. 하지만 부피도 크고 화재의 위험성도 있어서 널리 쓰이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장판이 아닌 담요 형태로 만든 건 조지 크롤리(George Crowley)입니다. 조지 크롤리는 해군 기술자였는데요, 조종사들이 높은 고도에서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하는 전기 온열 비행복을 개발합니다. 그리고 이 기술을 담요에도 적용하죠. 1936년에는 실내 온도에 따라 자동으로 켜졌다 꺼졌다 하는 전기담요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4. 마지막 후보, 온수 바닥 난방
바닥 난방 시스템은 기원전 1300년 중동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르자와 국왕이 터키 비체슬탄의 궁전에 설치된 것이 바로 최초의 바닥 난방이죠. 참고로 우리나라의 온돌은 기원전 4세기경(!)으로 추정됩니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로마에서도 하이포코스트(hypocaust)라고 불리는 바닥 난방장치가 있었어요. 하이포코스트는 돌 바닥 아래의 빈 공간에 연기가 지나 벽면의 연도(연기 길)로 빠져나가게 되는데요. 온돌은 연기가 지나가는 길이 만들어져 있는 반면, 하이포코스트는 바닥 아래가 거의 다 뚫려있는 형태였죠. 또한 가정집보다는 목욕탕 등의 상업시설에 설치되었죠.
로마 제국이 몰락한 후 유럽에서의 난방 시스템은 후퇴하여 벽난로가 난방을 대체하게 됩니다. 다시 바닥 난방이 유럽에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반이죠. 1800년 초, 미국의 발명가 다니엘 페티본(Daniel Pettibone)은 바닥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장치를 개발하는데요. 엄연히 말하면 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아니었고 특정 위치에서 따뜻한 바람이 나오는 장치라 바닥 난방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죠.
온풍을 이용한 난방 방식은 부피가 너무 크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831년이 되면 온수 파이프가 방바닥을 흐르게 해 바닥을 데우는 난방방식이 등장합니다. 앤지어 퍼킨스(Angier March Perkins)의 고압 온수 난방 시스템이었죠. 이 난방 시스템은 영국에서 인기를 끌고, 이윽고 미국에서도 유행하게 되죠.
5. 석탄 → 갈탄 → 연탄 →기름 → 가스
우리나라는 온돌을 오랫동안 쓰다가 주거 형태가 점차 변하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온돌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 집마다 퍼킨슨 방식의 바닥 난방이 도입되기 시작했죠. 물을 데우는 연료는 석탄으로 시작되었다가, 조개탄으로 불린 갈탄, 연탄 순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에는 새마을보일러라는 것도 있었습니다. 퍼킨슨 화로 윗부분에 뚜껑을 만들어 그 안으로 물이 들어가 데워진 후, 옆에 달린 큰 고무통에 온수를 받을 수 있는 형태였죠. 새마을보일러는 1960년대 후반부터 널리 보급되었지만,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때마침 1970년대 다가구주택, 아파트 등이 보급됨에 따라 집마다 있던 퍼킨슨 난방이 중앙 난방식 연탄보일러로 대체되기 시작합니다. 이 중앙식 연탄보일러는 온수 사용이 가능하도록 제작된 최초의 온수용 보일러이기도 하죠.
1975년 이후부터는 아예 연탄이 사라지고 기름보일러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작동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방안에서도 보일러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혁신이었죠. 1997년 중반에는 사용자가 기다릴 필요 없이 순간적으로 온수를 쓸 수 있는 순간식 기름보일러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정부의 에너지 정책과 맞물려 기름보일러보다는 가스보일러로 점차 시장의 흐름이 옮겨가게 되죠.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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