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소설'블러핑'75] 영창에서 나온 정열이 '원대복귀'를 고집한 이유?

[팩션소설'블러핑'75] 영창에서 나온 정열이 '원대복귀'를 고집한 이유?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01-03 04:20:00 신고

3줄요약
삽화=윌리엄리
삽화=윌리엄리

“이쪽으로 데리고 나와!”

 밖의 모랫바닥에 병사를 눕혔는데 숨은 쉬는 것 같았다.

“이 미친놈이! 사람을 그렇게 패면 어떡해! 진짜 꼴통이네.”

 여기서 사고가 나면 당번 헌병도 영창 신세가 된다. 조 하사는 아찔했다. 병사가 정신을 차리자 두 사람을 영창으로 들여보내고 취침 준비를 시켰다. 당번은 헌병 하사들이 3시간 간격으로 근무를 한다. 그 3시간 동안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혹은 특별관리 대상을 괴롭히기 위해 갖은 고문을 짜낸다.

 자리에 누운 정열은 옆 병사가 걱정되어 모포라도 덮어주려고 했더니 이곳은 아예 모포가 없다. 모두 오돌오돌 떨면서 옆으로 눕는 칼침 자세로 누워있다. 장작 나무처럼.

“미안합니다. 저 때문에.”

“괜찮습니다. 이게 일상입니다.”

 병사와 통성명을 하고 영창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이 사람은 계급이 대위로 탄약 사고로 잡혀 왔다고 한다. 이름은 이종명, 광주 출신이다.

 밤새 얼차려를 시키더니 아침이 되자 또다시 고문이 시작됐다. 근무 하사가 바뀔 때마다 정열은 노리개가 된다. 문에 달린 조그만 철창에 얼굴을 갖다 대면 곤봉으로 턱을 집중적으로 때리기, 철창 타기로 공중에 매달고 발뒤꿈치를 곤봉으로 사정없이 때리기, 침상 밑 기어 나오기를 연달아 하다가 고목나무 패기가 시작되었다.

 감방 동료들이 양쪽으로 밀착한 상태로 나무 침상의 중앙을 비우면 거기에 서서 헌병이 철창을 곤봉으로 두드리는 신호에 따라 고목처럼 쓰러져야 한다. 나무가 잘려 쓰러지는 것처럼.

3번째 고목나무 패기로 쓰러졌다가 일어섰는데 멍하면서 아무런 생각이 안 났다. 조 하사가 정열을 보더니 황급히 문을 열어 밖으로 데려 나갔다.

“어이! 왜 그래? 여기 어딘 줄 알겠어? 네 이름이 뭐야?”

질문을 하는데 아무 생각이 나질 않는다. 이때, 정열은 스스로가 정신이 나갔다는 것을 알았다. 정열은 엄마 얼굴을 기억해야 하는데 생각이 안 난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조 하사는 담뱃불을 붙여주며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한다.

한참을 지나 정열은 오른쪽에 있는 조그만 철창문으로 허리를 숙여 들어왔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탱크가 있는 부대도 어렴풋이 생각났고 엄마 얼굴이 생각났다. 엄마가 보고 싶어 또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그 후로 심한 고문은 피할 수 있었고 어느덧 영창의 최고 고참이 되었다.

석방 시간을 훌쩍 넘긴 밤 11시쯤 조 하사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철창 사이로 얼굴을 박으며 소리친다.

“군수사 이정열! 석방!”

석방 시간은 오후 7시인데 그걸 넘기자, 정열은 모든 것을 체념했다. 오늘을 넘기면 민간 교도소로 넘어가고 호적에 빨간 줄이 그어진다. 그런데 석방이란다.

한밤중에 15P를 나와 헌병 짚차를 타고 9보충대로 이송하는데 조 하사가 부대 앞에서 맥주 한잔하고 가자고 한다.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그러자고 했다.

“이 이병, 나에게 개인적으로 원한 같은 거 가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위에서 지시해서 할 수 없이 그런 것이니 용서해 주시오.”

“어찌 잊겠어! 제발 앞으로 내 눈에 띄지 마라. 다시 만나면 당신은 내 손에 죽어!”

조 하사는 정열의 섬뜩한 눈빛에 주눅이 들었다. 맥주 한 잔을 들이켠 정열은 조 하사와 더 이상 이렇게 마주 앉아 있기가 싫었다.

“이제 갑시다.”

“아, 예!”

보충대 따뜻한 막사에서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온몸이 쑤신다. 긴장이 풀렸는지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도 없었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겨우 일어났는데 인사계 장교가 서류를 들고 찾아왔다.

“고생했는데 어느 부대로 가고 싶은가? 원복만 빼고 어디든 보내주겠네.”

“저는 원대복귀 하겠습니다.”

“규정상 사고 친 부대로 다시 돌아가는 원복은 절대 안 돼!”

“원복 안 시켜주려면 다시 영창으로 보내세요.”

“이거 참, 고집불통이네.”

9보충대에서 며칠을 보냈다. 정열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결정이 안 나는 모양이다.

짙은 선글라스를 쓴 원사가 정열을 찾아왔다.

“자네가 이정열 이병인가?”

“네, 맞습니다.”

“청하라는 분을 아는가?”

“청하 누나요?”

“그 분이 보내서 왔네. 마음 놓고 이야기해 보게. 왜 굳이 원복하려 하는가? 그 쪽도 자네가 불편할 텐데.”

“별 이유 없습니다. 단지 그 곳에 제 훈련소 동기가 있어서. 그 친구가 나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꼭 그 부대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좀 도와주세요.”

“사고만 더 이상 치지 않는다면 내가 도와주지!”

“고맙습니다. 청하 누나는 어떻게 제가 여기 있는 걸 알았습니까?”

“그 분이 자넬 15P에서 석방시켜 주었네. 아니면 민간 교도소로 넘어 갔겠지. 지금부터 사흘간 휴가를 줄 테니 준비하고 밖으로 나와. 지금 부대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네. 이건 휴가증이고.”

“청하 누나가요?”

정열은 휴가증을 받아 쥐고 뛰어나갔다.

보충대 정문에서 기다리던 청하는 계급장도 없이 남루한 군복을 입고 뛰어오는 정열을 왈칵 껴안았다.

“이게 무슨 꼴이야! 정말 넌!”

“누나,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었어.”

“집으로 가자. 엄마가 기다리셔.”

“엄마도 알아?”

정열은 엄마는 모르는 줄 알았는데, 모르게 하고 싶었는데… 부산 집에 도착하니 영숙은 말없이 아들의 손을 잡는다. 목욕하라고 갈아입을 옷을 내어 오던 영숙은 아들의 몸을 보고 깜짝 놀란다.

“이 죽일 놈들! 어떻게 했길래 내 아들을 이리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았어!”

“괜찮아, 엄마. 씻고 잠 좀 잘게.”

정열은 몸을 감추고 욕실로 향했다. 엄마에게 더 이상 걱정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는데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 엄마를 부르려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왔다. 이때 엄마가 들어왔다.

“애가 왜 이러니? 열아! 나야! 엄마야.”

의사가 오고 3일 만에 깨어났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제 괜찮아. 엄마, 걱정 마. 오늘 부대 들어가야지.”

“이 몸으로 어디를 간다고 그래.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냥 쉬어.”

“안돼, 엄마. 나 가야 해!”

“이놈의 고집은 누굴 닮아서…”

“내가 엄마 닮지 누굴 닮아. 내가 엄마 새끼잖아.”

연제동에 있는 종합정비창 검문소 앞에 도착했다. 빡빡 밀은 머리에 계급장도 없이

시커먼 얼굴에 살기 어린 눈빛으로 걸어오는 정열을 보고 검문소 바리케이드가 활짝 열렸다.

 오늘 이정열 이병이 원복한다는 소식을 듣고 정비창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입구에 대대장과 중대장이 정열을 반겼다.

“충성!”

“고생했다! 내무반에 들어가 쉬어.”

본부중대 내무반으로 들어간 정열을 제일 먼저 반긴 사람은 홍 이병이다. 완전 시골 출신인 홍 이병은 정열이 다시 부대로 오자 이제 살 것만 같았다. 따돌림에 무시를 당해 왔는데 이제 친구가 돌아왔다.

내무반장인 김 병장이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고생 많았다고 들었다. 지나간 것은 모두 잊고 잘 지내보자.”

“그냥 잊을 수는 없지. 내가 원복을 한 것도 빚을 갚기 위한 것이니까. 지금부터 홍 이병을 건드리는 놈들은 내가 가만있지 않겠어!”

내무반은 살벌한 분위기에 빠졌다. 이때 중대장이 들어왔다.

“오늘부터 2주일간 휴가니까 바로 귀가해. 대대장님이 내리신 포상 휴가다.”

“아니, 귀대하자마자 휴가를 줍니까? 저는 못 갑니다.”

“명령이다!”

더 이상 사고 치지 않으려고 할 수 없이 휴가를 나왔다.

집으로 갈 수는 없고 황백 누나가 하는 술집을 찾아갔다. 진희는 갑자기 찾아온 정열을 보고 놀랐다.

“얼굴이 왜 이래? 이 행색은 도대체 뭐야?”

“누나, 나 술 한 잔 줘.”

“그래, 오늘은 나랑 간만에 술 한잔하자.”

“누나, 나 2주일 동안 있을 곳 좀 알아 봐줘.”

“어딜 가려고, 나하고 있으면 되지! 딴 데 갈 생각 말아!”

진희와 술을 마시는데 긴장이 풀어지니 식은땀이 흘렀다.

“웬 식은땀을 이렇게 흘려? 몸이 안 좋구나. 이리 누워,”

 정열을 안았다. 정열은 누나의 품속이 따뜻했다. 머리를 쓰다듬던 진희는 정열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팩션소설'블러핑'7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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