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김소현 기자] 정부가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킬러문항 배제’ 원칙을 고수한 이래 두 번의 수능을 치렀지만, ‘불수능’과 ‘물수능’을 오가는 널뛰기 난이도에 사교육 부담은 줄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단기적 관점에서 정책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올바른 대입 제도가 무엇인지 총체적으로 고민하고 논의하는 장이 우선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 “학벌주의 사회에서 킬러문항 배제한다고 사교육 줄지 않아”…현장 교원, 회의적 반응 지배적 = 지난 10월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와 함께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장 교원 10명 중 8명이 킬러문항 배제가 사교육 완화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는 전국 935명의 교원이 응한 가운데 이들 중 80.4%가 부정적 답변을 냈다. 반면에 대입 준비 과정에서 학생들이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의존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는 90.3%의 교원들이 그렇다고 답했다.
강경숙 의원은 “사교육비 총액이 사상 처음으로 27조 원을 넘었고, 1년 만에 4.5%나 증가해 1년 만에 약 1조 2000억 원이 지출됐다”며 “사교육 광풍에 유치원, 초등학생들까지 과도한 선행학습을 강요당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실제 교육부가 발간한 2023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3년 사교육비 총액은 27조 1144억 원으로, 3년 연속 최고치를 경신했다.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사교육비는 7조 5000억 원을 기록해 8.2% 큰 폭으로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사교육 참여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23년 기준 고등학교 74만 원, 중학교 59만 6000원, 초등학교 46만 2000원을 기록해 고등학교 사교육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소재 고등학교에서 영어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A교사도 킬러문항 배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A교사는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화두가 된 적 있는데, 킬러문항을 배제하면 우선 변별력 확보를 위해 나머지 문항들의 난이도가 전반적으로 올라가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킬러문항을 없애면 난이도가 최상은 아니어도 상으로 된 문제들이 늘어나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고, 시험의 난이도가 올라가면 사교육에서는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식의 홍보를 할 것”이라며 “그렇다고 등급이 안 나눠지는 것도 문제기 때문에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려운 문제의 개수를 늘리는 것도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수능 시험에서 킬러문항을 배제하면 등급을 나누기 위해 자연스레 다른 문항의 난이도가 올라가고, 이는 시험의 난이도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져 사교육을 절감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문항의 난이도를 낮추면 상대평가 특성상 학생들의 등급을 나누는 데에도 혼란이 생길 수 있다.
A교사는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고수하는 킬러문항 배제 원칙에 장단점이 존재하는 건 맞지만, 킬러문항 하나 배제한다고 해서 교육부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라며 “학벌주의 사회에서 중·고등학교가 개혁된다고 해도 대입 제도 개편이 안 되면 ‘SKY’ ‘의·치·한’을 뚫기 위해 편법은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교육부의 킬러문항 정의…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 킬러문항의 개념에 대해서도 정부와 교육 현장에서는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공식적으로 교육부는 킬러문항을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으로 사교육에서 문제 풀이 기술을 익히고 반복적으로 훈련한 학생에게 유리한 문항’으로 정의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공교육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내용’을 명확히 정의하기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교사는 “흔히 킬러문항이라고 불리는 학술적 원문에서 가져온 지문을 공교육 과정에서 가르치진 않지만 독해 스킬과 문법, 추론 전략, 풀이 방법 등은 모두 교육 과정 안에 포함된다”며 “‘고난도 학술적 개념을 교과서에서 다루진 않지만 문제 풀이 전략은 배웠잖아’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특히나 간접 연계 방식으로 수능이 출제되는 만큼 킬러문항이 맞고 아니고를 따지는 것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와도 같은 말”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법(선행학습 금지법)’이 존재하다 보니 공교육을 뛰어넘는 범위를 애초에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다. 선생님들이 과목을 구성할 때도 신경 쓰는 부분”이라며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범위의 한계를 정해주다 보니 돈과 시간이 있는 학생들은 사교육에 의존해 내신이나 수능에서 이점을 얻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행 선행학습 금지법에는 ‘선행학습을 유발하는 광고 또는 선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지만 위반 시 처벌 조항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정부가 대대적으로 사교육 특별 점검을 시행하더라도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강경숙 의원은 선행 교습 과정 운영 과정을 규제하는 처벌 조항을 포함하는 이른바 ‘초등 의대반 금지법’을 지난해 9월 국회에 대표 발의한 상태다.
■ ‘입시 불확실성’에 더해지는 사교육 의존…“건강한 대입 제도 마련하려면 정부·학생·학부모·대학·기업 등 머리 맞대야” = 특히 이번 대입은 2006학년도 이후 역대급 ‘N수생’이 참전한 것은 물론 6월·9월 모평 간 난이도 차이, 의대 증원 등의 변수로 예측 불확실성이 더욱 커진 한 해였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고액을 들여서라도 예측 정확도를 높여 1점이라도 유리한 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19일 열린 대교협 2025학년도 정시 대입정보박람회에서 만난 복수의 수험생은 “대입 불확실성으로 인해 친구들이 고액의 입시 컨설팅을 많이 받고 있다”고 전했다.
목동에 거주 중인 재수생 B씨는 “이번 입시에 여러 변수가 존재하는 만큼 본래 성적으로는 절대 가지 못하는 학과에 이른바 ‘구멍(빈틈)’이 생길 가능성을 두고 입시 컨설팅을 수소문하는 경우가 많다”며 “주변 친구들은 원서 넣기 직전까지 컨설팅을 받아 실시간 경쟁률을 보고 지원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재수생 C씨는 “스스로 입시 정보를 찾아보는 것과 고액을 들여 업체에 컨설팅을 받는 것은 얻을 수 있는 정보 면에서 차이가 있다”며 “친구도 입시 컨설팅을 통해 대입 지원을 한 적 있고, 업체에서 지원하고픈 학과에 ‘구멍’이 난다고 해서 지원했더니 정말 합격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C씨에 따르면 해당 컨설팅을 받기 위해서는 2시간 상담에 70만 원까지 지불해야 한다.
이처럼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 공정한 대입 체제를 수립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단순히 하나의 정책을 내기보다 당사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총체적인 논의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민경찬 연세대 명예교수(국가인재경영연구원 이사장)는 “역대 정권이 낸 어떠한 정책으로도 사교육을 줄일 수 없었다”며 “단순히 킬러문항을 배제하는 정책 하나로 사교육이 줄어들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기적인 정책을 내놓으면 풍선 효과로 인해 사교육이 더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정하고 건강한 대입 제도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능력과 역량을 어떻게 키워나갈 수 있을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하는 자세가 우선돼야 한다”고 전했다.
또한 민경찬 명예교수는 “현재 우리 사회는 심화된 경쟁으로 인해 스스로 자해하고 있는 상태와도 같다”며 “입시 제도는 단순히 학생들만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전부 연결돼 있는 만큼 건강한 입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학생과 학부모, 대학 사회, 기업 등이 머리를 맞대고 총체적으로 논의하는 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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