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김기주 기자] 삶에서 자연에 마음을 기대지 않고 생을 살아가는 이는 없을 것이다. 자연은 존재 자체로 인간에게 풍족함과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대상이 된다. 이렇듯 모두가 선망하는 자연을 멀리서 관조하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일 수 있지만 속을 가까이 들여다본다면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인정하는 것들과 달리 수많은 미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름 모를 잡초나 반려동물의 몸에서 빠져나온 털들, 바람에 휩쓸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 같은 것들이 모두 그것에 해당할 것이다. 아무런 소리 없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도 알 수 없을 만큼 지난한 세월 동안 묵묵히 자라며 성장해 온 자연은 작가에게 산다는 것의 의미와 삶을 잘 운영하는 것의 정의에 대해 스스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금단아 작가는 아무 일 없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살피면 하찮은 것 하나하나가 전부 맹렬하고 치열하게 살아가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작품을 통해 이러한 기운을 고스란히 전한다.
작업은 작가가 손수 터치하는 선들이 모이고 쌓이면서 진행된다. 삶의 매 순간 스쳐 지나가는 보잘 것 없는 무언가에 시선을 보내면서 거대한 세상 속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금 되새긴다. 더불어 틈틈이 몰려왔던 부정적인 생각이 얼마나 작고 나지막한 것인지 생각한다. 스스로 잘 살아온 것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정해진 보상을 원하는 인간의 욕심은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은 채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는 자연 앞에서 아득해진다. 변화하지 않고 현재를 지속하는 것도, 언젠가 때가 되어 형태를 달리할 때도 자연은 아무 이유 없이 그저 흘러가면서 정해진 또는 정해져 있지 않은 말하자면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로 우리의 눈에 노출된다.
작가는 이와 같은 자연의 섭리에서 강렬한 에너지를 자각하여 표현한다. 나아가 개별적으로 의미를 두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애써 드러내려는 고의적 사고방식을 벗어나 본연 그대로의 시각적 양상을 지향한다. 작업 과정에서 그려지고 그어지는 섬세한 선들은 구태여 형식적인 목적을 지니지 않으며 포괄적인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낸다.
화면에서 나타나는 시각적 이미지는 거듭 이행한 모든 선의 결과물이 되고 선들은 면적과 크기에 제한받지 않은 채 포개지고 겹쳐진다. 작가는 자연의 깊은 안쪽을 헤아려 저마다 현생을 착실히 살아가는 견고함과 그 속에서 살아있다고 외치는 무수한 파동을 몸소 경험한다. 작품을 바라보고 있으면 작가가 느껴온 고유의 감각이 와닿는 듯하다. 그렇게 차츰 물아일체의 순간에 스며들고 자아와 예술의 조화가 이루어진다.
작가는 사람들이 대체로 선호하는 광활하고 웅장한 자연의 모습 속 소소하고 미세한 대상에 주목하며 현실에서 겪는 목적성과 의무감, 행위에 따르는 대가와 보상을 뒤로하여 무상의 주체를 예술로써 자처한다. 전체와 부분을 아우르는 작품은 멀리서, 가까이서 함께 관찰할 때 비로소 응집된 활력을 느낄 수 있다.
무상은 작업에서 동음이의어로 존재하며 무(無)는 상이 뜻하는 의미에 깃들어 작가의 궁극적 의도를 뒷받침한다. 모든 것이 순리적으로 흘러가는 자연에 스스로를 투영하여 상념을 비우고 위안을 받는 일은 작업의 중요한 계기이자 인공 수단을 거치지 않은 원초적 철학으로 이어진다. 물질적이고도 영적인 자연의 특성을 여과 없이 비추는 작품은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하여 버티고 자생하는 모든 생명체에 힘을 불어넣으며 온전한 가치를 지닌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삶에 서린 무상을 내면 안팎으로 깊이 있게 헤아려 보기를 바란다.
2025년 상반기 갤러리 도스 ‘시선 너머’ 기획공모 선정작가展 금단아 ‘無-상’展오는 8일부터 13일까지 갤러리 도스에서 열린다.
글=최서원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사진=갤러리 도스
뉴스컬처 김기주 kimkj@knewscor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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