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우군' 자처한 한은 총재...이창용 "경제 고려한 불가피한 결정"

최상목 '우군' 자처한 한은 총재...이창용 "경제 고려한 불가피한 결정"

아주경제 2025-01-02 09:35:4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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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발표한 데 대해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평가가 다르겠지만 최 권한대행이 대외신인도 하락과 국정공백 상황을 막기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해서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오전 한은 본관에서 열린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발표하며 "이는 앞으로 우리 경제 시스템이 정치 프로세스와 독립적으로 정상 작동할 것임을 대내외에 알리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이같이 말했다.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 3명 가운데 2명을 임명을 강행한 최 권한대행에게 여당과 대통령실 참모진의 화살이 돌아오자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 총재는 "이제는 여야가 국정 사령탑이 안정되도록 협력해야 할 때"라며 "한국은행도 풍랑 속에서 중심을 잡고 정부 정책에 조언하며 대외 신인도를 지켜내는 방파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최근 들어 국제사회의 관심이 금융·외환시장 불안을 넘어 국정 컨트롤타워가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로까지 확대됐다"며 "정치적 갈등 속에 국정공백이 지속될 경우 대외 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경제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충격이 더해질 수 있어 국정 사령탑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 총재는 신년사를 금리 인하나 통화정책에 대한 언급에 할애하기보다 현 경제적 상황에 대한 고찰과 구조개혁에 할애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 통화정책만으로 우리 경제를 안정시키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왜 통화정책 목표 간 상충관계가 갈수록 심화되어 통화정책의 손발을 묶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며 "금액 기준으로만 보면 지난해 수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둔화된 이유는 우리 수출 구조가 다변화되지 못하고 반도체, 자동차 등 몇몇 주력 상품 위주로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매출액 상위 15대 기업을 10년 전과 비교하면 미국은 7개 기업이 신규로 진입한 반면 우리는 2개 기업만이 바뀌었고 그중 신산업을 통해 성장했다고 볼 수 있는 기업은 1개에 불과해 사실상 신규 진입이 거의 없었다"며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를 언급했다. 

혁신 기업의 탄생에는 혁신에 성공하지 못한 기업의 퇴출이 수반돼야 하는데 사회적 갈등을 관리하기보다 안정을 추구한다는 이유로 회피해 온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밸류업을 위해 기존 기업의 배당률을 제고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라며 "경제 부문 만큼이라도 혁신을 제한하거나 기득권을 보호해 창조적 파괴를 가로막는 규제들을 하루속히 걷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1480원까지 치솟은 원·달러 환율과 관련해서도 거론했다. 그는 "밸류업 문제는 최근 높아진 환율 수준과도 연관된다"며 "지난해 900억 달러 수준의 높은 경상수지 흑자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상수지 흑자 규모에 상응하는 자금을 외국인과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우리 주식시장에서 빼 나갔기 때문"이라며 "우리 주식시장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아 투자자들이 떠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준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는 "이렇게 해외로 자금유출이 계속되면 국내시장에서는 자금조달의 어려움으로 새로운 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신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를 통해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고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밸류업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한은의 실기론에 대해서 거듭 언급하며 "가계부채 관리를 좀 미루고 경기 부양에 더 힘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그렇게 하면 당장의 경기둔화 고통을 줄이고자 미래에 다가올 위험을 외면해 왔던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은은 지난해 11월 올해 성장률을 1.9%로 전망했지만 하방 위험이 커진 것이 사실"이라면서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의 성장률이긴 하지만 현재의 잠재성장률 2%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이상인 26개국의 성장률 전망치 평균인 1.8% 국제통화기금(IMF)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5년 성장률 전망 기준와 유사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를 밑도는 성장률의 절대 수준만을 과거와 비교하면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고통을 줄여주는 진통제로만 사용한다면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기적인 부양과 함께 고통스럽더라도 구조조정 문제에 집중해서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일례로 추경을 통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도와주더라도 이들의 현상 유지를 위한 지원에만 초점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연체율이 치솟고 있는 자영업자에 대해선 "전체 취업자중 자영업자 비중은 23.2%로 미국(6.1%), 유로지역(14.1%) 등 주요국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라며 "이 비중이 점차 낮아질 수 있도록 채무조정, 전직 교육, 퇴직자의 재취업 기회 제공 등을 통해 자영업자들이 보다 생산적인 부문으로 진출하게 도와주는 구조조정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손자병법의 '근심을 이로움으로 삼는다'는 이환위리(以患爲利)를 언급하며 "'좋은 위기를 낭비하지 마라'라는 서양 격언은 모두 '위기는 곧 기회'라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가르쳐 준다"며 "우리 모두가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우리가 해야할 것부터 차분하게 실천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낸다면 우리 경제는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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