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그저 숫자가 아니다
」몇 년 전, 삶에 대한 허무함과 우울감이 극에 달했을 때 여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과 특성상(!) 그들의 허무주의 역시 만만치 않았지만(문창과였다), 학생들 사이에 있으면서 왜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됐다. 툭하면 분노하고, 작은 일에도 크게 울고 웃고, 함께 모여 여러 일을 도모하는 모습에 꺼진 지 한참 지나 굳은 심지에 미세하게 불이 붙는 느낌이었다,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데, 그래서 나는 좀처럼 힘을 못 내고 있는데 학생들은 어떻게든 뭐라도 해보려 했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조금씩 몸이 일으켜졌다. 늘 방바닥에 누워있던 사람에서 하루 걸러 하루만 누워있는 사람이 되었다. 이후 젊은 여성들이 분노하는 자리에 조금씩 나가게 되었다. 일단 머릿수나 채워보자는 심정으로 ‘불편한 용기’ 시위에 처음 나갔을 때를 잊지 못한다. 어림잡아 내 딸뻘 되는 여성들 사이에 끼어 앉아 어색함에 허둥대던 기억. ‘다시 만난 세계’를 힘차게 부르는 목소리에 울컥해 애써 눈물을 삼키던 기억.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여기에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구나. 결국 이 나이 먹도록 좋은 환경이 되지 못하고, 좋은 환경을 또 찾아오고 만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세상이 이래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내온 102030 여성들이 이제는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왔다. 기성세대들은 이제서야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났다며 기특해(!)하지만, 그동안 젊은 여성들은 분노의 현장마다 존재해왔다. 세월호 진상규명의 현장,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추모 집회,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에도 자리를 지켰다. 이후 촉발된 미투운동은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여성들로 인해 사그라들지 않았고, 안희정, 박원순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힘 있게 연대했다. N번방 사건으로 대표되는 불법 촬영 범죄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규탄 및 각종 셀 수 없이 벌어지는 여성 혐오 범죄 규탄 집회에서 젊은 여성들은 늘 주체였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학교의 일방적인 공학 전환 움직임에 맞서 여대 학생들은 싸우고 있다. 가장 가까운, 혹은 일면식도 없는 남자에게 촬영당하고, 폭행당하고, 고소당하고, 살해당함으로써 삭제되거나 강제 종료되는 삶을 젊은 여성 스스로 멈춰야 한다고 울부짖은 지는 오래되었다. 이번 겨울, 국회 앞에서 그들 사이에 또 한 번 끼어 앉으면서 이제는 나부터 좋은 환경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가진 숫자만큼 태만해 온 시간이 지금의 환경을 만들었다는 것을 ‘리터럴리’ 뼈저리게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가. 그렇지 않다. 나이는 한 사람이 쌓아온 경험이자 역사이고, 누군가에게 제안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며 세상에 대해 갖는 책임감이다. 내가 가진 나이는 나라는 환경을 만들어온 시간이다. 그러니 기성세대가 더 몰두해야 할 것은 외모 안티에이징이 아닌 세상에 대한 안티에이징이 아니겠는가. 40·50대가 아무리 외모를 관리하고 숱 많은 가발을 쓴다고 해서 결코 20대처럼 보이지 않는다. 20대처럼 보이려 애쓰는 40·50대로 보일 뿐이다. 연예 뉴스에 툭하면 등장하는 ‘진짜 50대 맞아?’라는 질문 아닌 질문의 답은 빈틈없이 가꾼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이 일군, 삶이라는 환경이어야 한다.
요가, 비건 지향, 사유. 3가지 키워드를 삶의 모토 삼아 매일 ‘웰에이징’을 실천하는 세 여성의 매일의 궤적,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채우는 몇 가지 물건들.
」양다솔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아무튼, 친구〉 〈적당한 실례〉를 쓴 에세이스트이자, 비건 지향인. 글방지기로서 한 주에 한 편씩 글을 써야 하는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good.dasol
보통의 하루 일과 날마다 다양한 일을 하는 프리랜서라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은 제각각이지만, 그 시작이 몇 시가 되든 일어나면 바로 찻상에 앉습니다. 물을 끓이고 찻잎을 뜯어 우리기 시작해 한두 시간은 차만 마시는 시간을 갖습니다. 당장 외출해야 하는 날이라면 커다란 주전자 가득 차를 팔팔 끓여 보온병에 담아 나갑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뜨끈한 차를 나눠 마셔요. 어떻게 그러냐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많은 분들이 커피 없이 하루를 시작할 수 없고, 술 없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없듯 저 또한 그렇습니다. 농담으로 종교가 다도라고 하거나, 제 몸에 피 대신 차가 흐른다고 말하기도 해요.(웃음)
‘웰에이징’을 위해 꼭 지키는 루틴 저에게 하루를 시작하는 열쇠는 다도입니다. 그냥 좋아서 매일 해왔을 뿐인데 벌써 16년이 됐네요. 오래 다도를 해오며 몸도 천천히 변해왔지만, 사실 매일의 마음에 가장 큰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하루를 새로운 차와 함께 시작하는 일은 머리를 빗는 것처럼 하루를 정갈하게 빗고, 숨을 쉬는 일을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구간인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날마다 조금씩 볕 쬐기, 조금씩 땀 흘리기, 조금씩 읽고 보기 등을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합니다. 매일같이 몸과 마음을 조금씩 움직여줘야지, 단순히 시간이 간다고 해서 무언가 변화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몸만 움직여서는 안 되고, 마음만 움직여서도 안 되는 것 같아요. 몸과 마음을 조금씩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 내 몸과 세상을 연결하는 일이자, 이전의 나와 그다음의 나를 구분하는 전환의 행위가 된다고 생각해요.
비건을 지향하며 찾아온 변화 어느 날 친구들과 식사하러 모였는데, 한 친구가 근래 재밌게 본 책이라며 한 권씩 돌렸습니다. 제목을 보니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이었어요. 별말을 덧붙이진 않았지만 친구가 비건이 됐다는 선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앞으로 제가 그 친구와 함께 식사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죠. 누군가의 뜻에 함께하는 것은 동의보다는 동행이기에 책을 받자마자 “나도 할게”라고 말했고, 그렇게 비건이 됐어요. 비건을 시작하고 나선 몸이 항상 산뜻하고 가볍습니다. 식사 후 몰려오던 나른함과 졸음도 덜해졌고, 자잘한 잔병치레도 많이 없어졌고, 몸무게도 변함없이 일정하고, 생리통도 적어졌어요. 먹을 것이 야채뿐이라 원재료 자체의 신선도, 제철 재료 등을 신경 쓰게 되니 자연히 더 건강한 식사를 하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뜻밖이었던 건 충치도 적어졌다는 점이에요. 질긴 음식을 잘 먹지 않다 보니 이가 과로할 일이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웃음)
‘비건 지향인’으로서 가진 철학 저는 항상 저를 소개하는 일에 늘 막막함을 느껴왔는데요, 직업이나 출신, 나이 같은 것이 딱히 저를 잘 설명해준다고 느끼지 못했거든요. 그런 제게 비건은 가장 멋진 자기소개입니다. 비건은 생물학적 성별로서의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이 지구에 존재하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종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종평등을 말하고 있거든요. 쉽게 말하자면 “네가 생명을 갖고 있다면 너를 사랑하겠다”라고 말하는 일종의 성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분리되고, 단절되고, 각자의 극단으로 나아가는 이 혐오의 시대에 비건은 희귀하다 할 만큼 넓은 사랑의 단어입니다. 저를 비건이라고 소개할 때마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고 믿어요.
내가 정의하는 ‘웰에이징’ 꼭 이맘때 즈음에는 어떻게 나이 들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가장 먼저 2가지가 떠오릅니다. 첫째, 나는 이 세상을 얼마나 다양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다른 말로 얼마나 나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가입니다. 나는 나로 태어났잖아요? 그리고 나와 살아갑니다. 그렇기에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죠. 시간을 보낸다는 건 나 외에 많은 것들 사이를 걸어 다니는 거라고 생각해요. 슬프고 기쁘고 사랑하고 상처 입고 투병하고 투쟁하고 재생하고 끝내 다시 살아가는 이야기를 외우고 살아가고 싶어요. 둘째, 나는 나를 얼마큼 신나게 할 수 있는가. 저는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순간이 신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그 순간 눈처럼 녹아 사라집니다. 때때로 아주 신이 나면 시간과 공간도 힘을 잃고 모습을 감추죠. 전 살아갈수록 제 스스로가 신나는 일을 많이 만나고 만들며, 그것에 뛰어드는 일을 망설이지 않았으면 해요. 몸과 마음이 어떤 것에 진동하고 춤추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여전히 신날 수 있는가. 늘 저에게 물으며 나이 들 것 같아요.
나에게 ‘건강한 아름다움’이란 의식주를 포함해 자신이 언제 어떤 때에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해야 즐거워질 수 있는지를 아는 것.
WELL-AGING ITEM
」희선
브이로그 채널 〈Gmlsunny희선〉을 운영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이자, 요가 안내자. 취미로 요가를 시작해 꾸준히 수련을 이어온 그는 현재 줌 플랫폼을 통해 새벽에 온라인 요가를 안내하고 있다. @gmlsunny
보통의 하루 일과 새벽에 요가 수업이 있어 5시에 일어나 하루를 준비해요. 따뜻한 차 한 잔과 짧은 명상을 마치고 6시부터 새벽 요가 수업을 시작합니다. 수업을 마친 후, 개인 수련을 하며 맑아진 정신으로 일과를 시작해요. 요즘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재미에 빠져 샌드위치와 커피 한 잔으로 식탁을 꾸리죠. 다음 수업을 준비하거나 유튜브 편집 등 보통 집에서 일하며 시간을 보내요. 모든 업무를 마친 저녁 시간엔 남편과 함께 저녁을 요리해 먹고, 책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하죠.
‘웰에이징’을 위해 꼭 지키는 루틴 저에게 있어 건강한 삶은,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것이라 생각해요. 아무리 건강한 몸을 가졌어도 마음이 그렇지 않으면 신체적 반응이 나타나기 마련이죠.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위해 매일 새벽에 일어나는 저만의 루틴을 세웠어요. 수업이 없는 날에도 새벽에 일어나 제가 만들어놓은 루틴대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요가와 명상을 하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마치고 나면 나를 잘 보듬어주고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스스로 대견스러운 마음을 갖게 되니 어떤 일이든 다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요? 이렇게 일상에서 내가 세운 작은 루틴으로 자존감을 키워주고 있어요.
요가가 가져다준 즐거움과 성취 원래 요가는 몸이 좋지 않아 시작한 운동이었어요. 단순히 몸을 단련하기 위한 운동이라고 생각했는데, 수업이 시작되면 고요하게 나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그 순간이 너무 좋았어요. 하루 중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요가를 통해 단단한 등 근육과 하체를 얻었지만, 무엇보다 한결 차분해진 감정이 찾아왔다는 걸 느껴요. 원래 성격이 급하고 불안함을 잘 느끼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감정에 쉽게 휩쓸리지 않죠. 요가원에서 여러 도반과 함께 수련하며 격려해주고 칭찬해줄 때 모두가 요가로 하나가 된 것 같아 따듯함과 사랑을 느끼곤 해요.
내가 정의하는 ‘웰에이징’ 과거나 미래보단 현재에 살기, 내 옆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따뜻한 안부 묻기, 바쁜 일상에서도 사랑과 다정함 찾기. 나이가 들수록 다정하고 똑똑한 어른이고 싶어요. 멈춰 있는 것보단 끊임없이 새로운 걸 공부하고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며 지금의 내 삶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길 꿈꿔요.
나에게 ‘건강한 아름다움’이란 모두에게 웃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
WELL-AGING ITEM
」이나리
배우,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소재 아티스트 레지던시이자 북 스테이 공간 ‘모티프원’의 호스트&큐레이터. 배우로선 극 중 인물을 연기하며 사람과 사회에 대한 소통의 갈망을 해소하고, 모티프원의 호스트로서 게스트와 내면의 번민과 희열을 나누는 깊은 대화를 통해 스스로 확장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naa.ri
보통의 하루 일과 하는 일의 특성상 매일이 다른 일과로 흘러가지만, 모티프원을 찾아주신 게스트분들을 환대하고 환송하는 일,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물을 갈아주는 일과만큼은 매일 변함없어요.
‘웰에이징’을 위해 꼭 지키는 루틴 오전에는 사과와 땅콩버터를 챙겨 먹습니다. 모티프원 동료가 소개해준 아침 식사인데, 혈당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오전에는 주로 커피만 마시다가 가볍게 과일을 먹으니 한층 건강한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저녁엔 따뜻한 차를 우려 마시며 책을 읽는 습관이 있어요. 자기 전에 간단한 요가로 하루의 긴장감을 이완하는 것도 잊지 않죠.
모티프원의 호스트로서 느끼는 성취 모티프원에서의 시간과 경험이 누군가에게 창작의 원천이 될 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합니다. 떠난 게스트분께서 모티프원에서 쓴 글을 책으로 만들어 보내주시기도 하고, 프랑스 일러스트 작가가 모티프원 모습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을 한국으로 여행 왔을 때 직접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모티프원을 통해 불쑥 끌어올려지는 창의력이 누군가의 삶에 한 조각으로 남는다는 것이 큰 보람으로 돌아옵니다. 게스트와 웃으며 “또 만나요” 하고 애정 깊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는 순간도 참 행복합니다.
삶의 제1동기, 모티프원의 의미 수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남기고 간 방명록을 통해, 매일 달라지는 창밖의 자연을 통해, 흐드러져 있는 책의 틈새에서, 서재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을 통해, 그것이 무엇이든 나를 변화하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동력과 동기가 되길 바라요. 또한 모티프원에 오시는 수많은 게스트 역시 자신의 삶을 아끼고 돌보며 스스로를 위안하고, 변화할 준비가 돼 있는 분들입니다. 그들의 도전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삶을 보며 제 삶 역시 확장되고 있다는 걸 느껴요. 모티프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보내는 매 순간 스스로 삶의 동기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있는 것이죠. 가능성이라는 단어를 더 믿게 됐고, 시도와 도전이라는 단어가 더 가까워졌습니다.
내가 정의하는 ‘웰에이징’ ‘보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각자가 생각하는 보통의 정도가 모두 다를 거예요. 저는 저만의 흐름과 나이 듦이 나에게 정상이라고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회적 통념과 평균에 꼭 따라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할수록 나는 더 자유로워지고 무의식중에 생겨나는, 보이지 않는 천장이 사라져요. 개인이 모두 고유하고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모티프원의 호스트를 통해, 연극을 함께 만드는 공동체를 통해 경험했습니다. 그러니 나 역시 고유한 나만의 삶을 개척해나간다는 것, 그것이 웰에이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에게 ‘건강한 아름다움’이란 나의 고유성. 어떤 것과도 대체될 수 없는 내 속의 다이아몬드이지요.
WELL-AGING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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