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약점인가? 천만의 말씀, 당신이 무얼 원하든 가능케 하는 서현우만의 초강점이다. 흰 도화지에 먹칠하듯 매번 얼굴을 갈아 끼우며 곡예 널뛰기하는 연기자 덕분에 보는 이들은 눈이 즐거울 따름이다.
27일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2'(극본 박재범·연출 박보람)가 마지막 회인 12회를 끝으로 대장정을 마쳤다. 낮에는 사제, 밤에는 천사 파 보스로 활약하는 열혈 신부 김해일(김남길 분)이 부산으로 떠나 국내 최고 마약 카르텔과 한판 뜨는 이야기를 담은 수사극이다. 시즌1부터 큰 사랑을 받은 독특한 세계관으로 김남길 이하늬 김성균 등 원년 멤버와 성준 서현우 김형서 등 새로 투입된 멤버들이 활약해 시즌2를 마무리했다.
서현우는 극중 흑수저 출신이지만 초고속 승진을 이뤄낸 부산 남부지청 마약팀 부장검사 남두헌 역으로 변신했다. 마약왕과 손잡은 비리검사로 야망을 위해서라면 정의도 언제든지 저버리며 거물급 인사들의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고 눈감아주는 활약으로 어린 나이에 초고속 승진을 이뤄낸 인물.
시즌1이 구축한 방대한 세계관과 탄탄한 팬덤. 시즌2 출연진들에게는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해 어깨를 짓눌렀다. 서현우는 "시즌1의 성공적 방영에서 오는 부담감이 컸다. 그 명성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적어도 구멍이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일념 하에 집중했다. 김홍식 역할 성준 배우와 둘이 따로 만나기도 했다. 캐릭터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나름 작전 회의를 했다"고 당시의 결의를 회상했다.
서현우가 스스로에게 내린 첫 번째 숙제는 기시감을 지우는 작업. 비리 검사는 여타 다수 작품에서 단골 소재로 차용되어 수많은 배우들이 다양한 모양새로 이미 그 쓰임을 다한 상황. 서현우는 달라 보이고 싶었다. 그는 "외형을 보았을 때 슈트핏이 딱 떨어지는 모습이 아니길 원해 헐렁하게 입었다. 3벌 정도 돌려 입었다. 나만의 디테일일지 모르겠지만 비교적 값싼 전자시계를 찼다. 안경도 보통의 검사라면 귀티 나는 안경, 카리스마 넘치는 안경을 착용했을 거 같더라. 평범해지고 싶었다. 지방 변두리 어딘가 한직에 있을 거 같은 질감을 살리고 싶었다. 남 부장이 타고 다니는 차도 선택지가 있었다. 이 역시 고급은 피했다. 헤어도 싹 올린 포마드가 아닌 머리 감고 나와서 자연건조된 느낌으로 맞췄다"고 설명했다.
남 부장은 극중 경상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해 몰입도를 높였다. 서현우는 부산 출신이고, 통영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기에 이 대목에서는 비교적 수월한 과정이 예상됐다. 하지만 서현우는 여기에서도 작은 디테일을 추가했다고. 그는 "어머니께서 부산 분이시고 아버지께서 통영 분이시다. 같은 경상도에도 디테일이 있다. 같은 사투리지만 분명 다르다. 남 부장의 자격지심을 표현하고자 올드하게 구사했다. 지방색을 지향한 사투리다. 요즘 부산 사투리가 많이 완화됐다. 억세고 예스러운 억양을 구사했다"고 밝혔다.
작품에는 수많은 인물이 얽히고설켜 관계도를 형성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전반의 이야기를 납득시켜야 하기에 모든 인물의 서사 전반을 담는 것은 불가하다. 그럼에도 서현우는 자신의 역할 남 부장의 인생 전반을 살펴 젖어들어가는 작업도 잊지 않았다. 그는 "김해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학창 시절은 괜찮았을 거다. 기고만장 꿈을 펼치는 탄탄대로였을 거다. 서울에 입성하고서 자신이 생각한 조각이 어긋났다고 설정했다"며 "선후배들과 섞일 때도 애로사항이 많았다. 선택을 극단적으로 반대로 갔다. 서초동 왕따였다지만,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을 거다.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호시탐탐 올라갈 생각을 꿈꿨을 거다. 딱히 집안이 어려웠을 거라는 설정은 구축하지 않았다. 평범해서 연줄, 지연, 학연은 없었던 그런 설정을 구축해 봤다"고 전했다.
이러한 만반의 준비로 역할의 심지를 단단하게 굳힌 서현우는 완성된 재료로 한번 더 비틀어 극의 재미를 높일 두 번째 작전을 펼쳤다. 선역과 악역, 진지와 웃음 그 가운데서 줄타기 곡예를 널뛰어 시청자에게 혼란을 주기 시작한 것. 그는 "작품 속 남부장이 그려진 방식은 명확하게 악역이었다. 그 사람이 저지른 악행에 대해서는 확실했다. 개인적으로 남부장을 풀어가면서 혼란스러운 감정을 제공하고 싶었다. 괜한 정이 가는 그런 사람 말이다. 궁극적으로 우리 삶 속에도 우리가 사람을 제대로 명료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분명 있지 않나"라고 귀띔했다.
극중 남 부장은 보기보다 연기 난도가 상당히 높은 인물이었다. 화려한 액션신도, 대단한 소품도, 으리으리한 세트도, 환상의 파트너도 없이 협소한 검사실 안에서 시청자의 지루함을 달랠만한 번뜩이는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했기 때문. 서현우는 "활용할 것들이 부족해서 참 어렵더라. 부장 검사실을 정말 다각도로 촬영했다. 촬영팀도 고생 많이 하셨다. 나만의 디테일로 슬리퍼도 신었다가 구두도 신었다. 재킷을 벗었다가 애를 썼다"며 "독백 연기가 참 많았다. 계속 혼자 통화하고 지령 내리고 오는 손님맞이했다. 언제 나오냐더라. 갇혀서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서현우가 남 부장을 해석할 때 빼놓지 않고 거듭 되새긴 감정은 자격지심이다. 남들을 향한 자격지심, 이것이 꿈틀거리다 결국 남 부장을 집어삼켜 괴물로 만들었다는 것. 묘하게 배우란 직업과도 겹쳐 보인다. 연기라는 업으로 먹고살며 함께 공부하고 호흡을 맞추지만,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를 꺾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배우들이 자격지심에 사무쳐 몸부림친다. 혹자는 이를 원동력 삼기도 하며 누군가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칸막이를 치고서 이 감정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에 대해 서현우 역시 공감을 표할 수밖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기과 출신 서현우는 비교적 늦게 뜬 스타다. 그의 동기, 선후배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한다. 자격지심에 타들어가기 딱 좋은 지푸라기 틈바구니 속에서 연기라는 단물만 바라보며 버텨온 모양새다.
서현우는 "대학 졸업 후 밖에 나와서 공연도 하고 프로필도 열심히 돌렸다. 같이 단편영화도 찍은 배우들이 하나 둘 소위 스타가 되어가더라. 그 과정을 지켜봤다. 동생들도 끊임없이 격려해 주더라. 그 과정의 연속이었다. 조바심이 생겼다. 정말 치열한 30대였다. 원인을 스스로에게 찾을 수밖에 없더라. 외부 구조나 시스템을 문제 삼았다면 그것만 탓했을 테지만, 배우는 본인 선택이더라. 떠나고 싶으면 떠나면 되는 일 아닌가. 부모님께 연기자 아닌 연기 가르치는 교수가 될 것이라 거짓말까지 해가며 스스로 택한 일이다. 남 탓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버텼다"라며 자신이 찾은 현답을 내놓았다.
이렇듯 스스로를 다듬고 태우고 식히는 담금질의 연속으로 더욱 단단해진 서현우는 다소 밋밋한 얼굴에 대한 해답도 찾았다. 그는 "예전에는 얼굴에 더 특징이 있으면 어떨까 원할 때도 분명 있다. 단역 시절도 길었으니 당연하다. 배우들은 몸이 재료다. 예전에는 증량도 해보고 특징을 잡아내보기도 했다. 지금은 장점으로 나에게 스며들었다"며 "나에겐 분장이나 의상, 장착할 수 있는 재료가 소중하다. 평범한 얼굴, 하얀 도화지 같은 정체성이 조금 더 용기를 주는 시간이 드디어 됐다. 새 작품에 들어가면 이젤 위에 하얀 캔버스를 세우고 고심하는 편이다. 어떻게 칠해야 할지 매번 기분 좋은 고통"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번 더 꼬아 생각하면, 배우 이름보단 역할명이 더욱 긴 잔상을 남긴다는 뜻이다. 본업보단 유명세, 배우보단 스타를 꿈꾸는 이들에겐 잔인한 딜레마가 될 수도 있는 것. 하지만 서현우는 괜찮단다. 그는 "이제는 나에게 궁극적으로 배우 생활 철학이 됐다. 계속해서 역할로 남고 싶다. 연기하는 순간과 역할로 삶을 살아갈 때 개인의 삶 둘을 분리하려고 노력하며 일한다. 앞뒤가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마치 유명해지고 싶지만 유명해지고 싶지 않은 요즘이다. 연기할 때 가장 스릴 있고 재밌고 괴롭다"고 전했다.
서현우는 업계 정평이난 선수들이 인정하는 선수다. 과거 남건 PD는 필자가 '뜰 거 같은 배우가 누군가' 묻자, 단번에 서현우를 꼽았다. 당시에도 서현우는 재야의 고수로 업계 사람들에게는 매번 감탄을 주는 인재였던 셈이다. 스스로 이유를 자평해 달라니 그는 "연기 이야기로 하루종일 떠들 자신이 있다. 그만큼 진지한 편이고 파고드는 편이다. 동료 배우들을 만나면 사적인 대화는 재미없다. 왜 아직도 내가 카메라 앞에서 긴장하는지, 어찌 해소해야 하는지 탐구하고 토론하는 게 정말 재밌다. 이런 게 쌓여 '서현우를 만나면 연기 이야기 할 수 있어'라는 그런 포지션이 된 거 같다"고 밝혔다.
아직도 연기가 목마르고, 재밌는 서현우다. 그는 "후회한 적도 있다. 경제적으로 현실적으로 고통스러웠던 적 분명 있다. 연기적으로 많이 배고팠다"며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사라질 갈증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산 넘어 산이더라. 하면 할수록 연기의 정답을 모르겠다. 이렇게 저렇게 접근 방식에 대해 토론하다가도 현장에 가면 벙찔 때가 있다. 유행의 흐름, 매체의 방향과 정답이 매번 달라지는 시대 아닌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얄궂은 게 바로 연기인 거 같다. 노하우가 생겨서 눈감고도 할 줄 알면 재미가 반감되는 게 또 연기인 거 같다"며 또다시 한참을 눈을 빛내며 연기 토론을 이어간 서현우다.
iMBC연예 이호영 | 사진출처 저스트엔터테인먼트, SBS,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CJ ENM, 더 램프(주) 등
※ 이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바, 무단 전재 복제,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