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희준 기자= 누누 에스피리투 산투 감독은 본인 팀 중원과 상대팀 중원을 모두 삭제시켰고, 이를 통해 친정팀을 부쉈다.
27일(한국시간) 영국 노팅엄의 시티 그라운드에서 2024-2025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PL) 18라운드를 치른 노팅엄포레스트가 토트넘홋스퍼를 1-0으로 제압했다. 노팅엄은 승점 34점으로 리그 3위까지 올라갔다.
누누 감독은 원래부터 선수비 후역습에 일가견이 있었다. 2017년 당시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에 있던 울버햄턴원더러스를 맡아 곧바로 PL로 승격시켰고, 그 다음 시즌에는 리그 7위까지 오르는 돌풍을 일으키며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진출까지 성공했다. 이후 2020-2021시즌까지 팀을 중상위권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며 좋은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러나 토트넘에서는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2021-2022시즌을 앞두고 토트넘은 누누 감독을 선임해 변화를 꾀했다. 누누 감독은 토트넘의 요구에 맞게 공격 축구를 시도했는데 누누 감독에게나 토트넘에나 맞지 않는 옷이었다. 결국 누누 감독은 리그 10경기, 모든 대회 17경기 만에 경질되는 굴욕을 경험했다.
누누 감독은 2022-2023시즌 사우디아라비아 알이티하드에서 리그 우승을 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고, 지난 시즌 도중 노팅엄포레스트에 부임했다. 비록 경기력은 아쉬웠지만 팀이 승점 삭감을 당할 정도로 아찔한 상황이었음을 감안하면 17위 턱걸이 잔류만으로도 목표를 완수했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충분한 준비 기간이 주어졌던 이번 시즌에는 개개인 기량과 팀 조직력을 모두 끌어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누누 감독은 우선 크리스 우드, 모건 깁스화이트, 안토니 엘랑가, 칼럼 허드슨오도이 등 기존 애매했던 자원들이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도록 교통 정리를 했다. 엘리엇 앤더슨, 니콜라 밀렌코비치 등 적재적소에 좋은 선수들을 영입한 것도 주효했다.
누누 감독은 전술적으로도 발전했다. 선수비 후역습 기조는 유지하되 공격 전술을 세밀하게 가다듬었다. 울버햄턴 시절에 비해 짧은 패스를 통한 후방 빌드업이나 공격 진영에서 패스워크가 훨씬 유려해졌다.
여전히 누누 감독의 전술이 투박해보이는 건 특유의 ‘중원 삭제’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누 감독은 의도적으로 중원을 배제한다. 역습에 특화된 발빠른 측면 자원들을 극대화하려면 중원을 거치는 것보다 롱패스로 측면 배후를 곧바로 타격하는 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중원을 잠시 거쳐가는 곳으로 만들어 공격 속도를 배가시키고 상대가 미처 정비되지 않은 틈으로 공격을 전개한다. 공 점유가 화두이던 2010년대에는 이러한 전술이 약팀의 생존 전략으로 비춰지곤 했는데, 공수 전환 속도가 중시되는 오늘날에는 오히려 트렌디하다고도 볼 수 있다.
누누 감독이 발전한 또 다른 측면은 압박 강도다. 노팅엄은 수비로 전환할 때 아예 높은 위치에서 반칙으로 공을 끊어내는 경우가 많다. 중원이 텅 빈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수비 전형을 가다듬은 뒤에는 상대가 실수할 때 곧바로 여러 명이 압박을 가해 공을 탈취한다. 대인마크, 패스 길 차단, 가로챈 공 배급 등 역할 분담도 분명하다. 상대는 좀처럼 공격을 날카롭게 전개할 수 없다. 중원으로 공을 배출하기도 어렵고, 노팅엄이 밀집수비를 갖추면 중원이 의미없어진다. 토트넘은 중원에서 공을 잘 다루는 선수가 많이 없어 노팅엄의 수비가 더욱 빛을 발했다.
누누 축구의 정수가 노팅엄 결승골 장면에서 나왔다. 전반 29분 파페 사르가 무리하게 중앙에 있는 제드 스펜스에게 공을 주자 순간적으로 니코 윌리엄스가 달라붙어 공을 빼앗고, 바로 앞에 있던 라이언 예이츠가 더 좋은 곳에 있던 깁스화이트에게 공을 건넸다. 깁스화이트는 순간 아무도 없던 토트넘 중원을 뚫고 드리블했고, 데스티니 우도기와 속도 경쟁에서 이긴 엘랑가를 향해 완벽한 스루패스를 공급했다. 엘랑가는 감각적인 터치로 뛰쳐나온 프레이저 포스터 골키퍼를 넘어 득점에 성공했다.
누누 감독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전술로 중하위권 전력의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 또다시 성공했다. 노팅엄은 현재 리그 3위로 고공행진 중이며, 4연승을 거둬 한동안 상승세가 지속될 동력을 얻었다. 모든 걸 잘해야 하는 현대축구에서 특장점만 쏙쏙 살려 성적을 내는 누누 감독의 축구는 빛을 잃지 않고 더욱 반짝인다.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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