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사이트경제TV 최태호 기자] 한미약품그룹 오너가의 모자간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을 맞았다. 장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가 모친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속한 4자연합에 지분을 매각하기로 하면서 분쟁은 화해국면으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차남인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가 형인 임종윤 이사를 다시 설득하지 못할 경우 모자간 경영권 분쟁은 종식될 전망이다.
1차전 승리했던 형제측...분쟁 어떻게 시작했나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은 올초부터 본격화됐다. 한미그룹 오너가는 창업주인 고 임성기 회장이 2020년 별세한 이후 5000억원이 넘는 상속세 재원을 마련해야 했다. 이에 남편(임성기 회장)의 뒤를 이은 송영숙 회장이 장녀인 임주현 한미그룹 부회장(당시 전략기획실장)과 함께 상속세 재원 마련을 목적으로 OCI그룹과 통합을 발표했다.
OCI홀딩스 지분과 한미그룹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의 지분을 교환하는 방식이었다. 통합과정에서 7000억원의 재원이 확보되면 오너일가의 상속세 마련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다만 송 회장의 아들인 임종훈, 임종윤 형제가 이에 반발하며 분쟁이 시작됐다.
당시 증권가의 분석에 따르면 통합 진행에 따라 형제측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이 낮아질 상황이었다.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로, 임주현 부회장이 OCI홀딩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형제측은 사실상 경영 후계구도에서 배제되는 형태였다.
양측의 갈등은 올해 초 정기주주총회에서 표대결로 이어졌다. 모녀측은 이우현 OCI그룹 회장 등 6명을 이사회에 진입시키려 했고, 형제측은 본인 2명을 포함해 5명을 후보자로 추천했다. 승패를 가른 건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표였다. 신 회장은 고 임 회장의 고향친구로, 오너가를 제외하면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주주였다. 당시 지분율은 12.15%였다. 신 회장이 형제측을 지지하면서 형제측은 5명 모두 이사회 진입에 성공, 1차 분쟁에서 승리했다.
주총 전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송 회장을 비롯해 4명으로 구성돼 정관상 공석이 6석이었다. 형제측 인사 5명이 이사회에 진입하면서 5대 4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사회 의석의 과반을 형제측이 가져간 것. 형제측은 곧장 이사회 결의를 통해 지난 5월 송 회장을 대표이사직에서 해임하고 임종훈 단독대표 체제로 변경했다.
신동국 변심에 5대5 된 이사회...형 떠나며 궁지몰린 임종훈
상황이 바뀐 건 7월부터다. 형제 편이었던 신 회장이 돌연 송 회장측으로 돌아선 것. 형제측과 신 회장의 갈등이 원인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은 모녀측으로부터 지분을 사들이며 상속재원을 제공하는 한편 의결권 공동 행사 약정을 맺었다.
신 회장과 함께 킬링턴 유한회사도 합류하며 4자연합(송영숙 회장·임주현 부회장·신동국 회장·킬링턴 유한회사)이 만들어졌다. 4자연합은 지난달 신 회장을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 진입시켰다. 이사회를 다시 5대5 구도로 만든 것.
양측 모두 이사회 과반을 획득하지 못했지만 업계에서는 형제 측이 상대적인 열세에 몰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4자연합의 지분율이 49.42%로, 형제측(28.86%)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한미사이언스 정관상 이사의 선임은 주주총회 출석 주식수의 과반수다. 4자연합은 이사회 선임을 위해 이론상 모든 주식이 주주총회에 참여해도 0.58%의 동의만 추가로 얻으면 된다. 반면 형제측은 4자연합이 반대하면 사실상 이사회 신규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 동수로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이사회에서 단순히 버티기 외엔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 임종윤 이사도 이날 오전 4자연합과 함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4자연합에 보유 지분 5%를 매각하고 △경영권 분쟁 종식 △그룹 거버넌스 안정화 △전문경영인 중심 경영체제 구축에 합의했다. 지분 매각이 완료되면 4자연합의 지분율은 54.42%로 커질 전망이다. 의결권 과반 이상을 확보하게 되는 셈.
4자연합 관계자는 “이번 합의를 통해 거버넌스 이슈를 조속히 안정화하고 오랜기간 주주가치를 억눌러온 오버행 이슈도 대부분 해소할 것”이라며 “경영권 분쟁 종식은 물론 주주가치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종윤 이사의 지분율은 9.47%다. 아내 홍지윤씨(1.14%), 자녀 임성연·임성지·임성아씨(3.27%)의 지분을 다 합하면 13.88%까지 늘어난다. 임종윤 이사의 지분을 4자연합에 모두 합하면 지분율은 63.3%다. 단독으로 이사 선임이 가능한 건 물론, 조건(출석주식수 약 94% 이하)만 맞으면 이사해임 등 단독 특별결의(출석주식수의 3분의 2)도 가능한 수치다. 4자연합이 앞선 임시주총에서 이사회 정원을 늘리는 정관변경(특별결의사항)에 실패해 임주현 부회장의 이사회 진입이 좌절된 것을 생각하면 상황이 급반전된 셈이다.
한미약품 의결권 행사 남았지만...형 설득이 관건
한미약품의 지분 중 대부분은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가 보유하고 있다. 주주구성을 보면 한미사이언스가 지분 41.42%를 가지고 있으며, 국민연금과 신 회장이 각각 10.52%, 9.43%를 보유하고 있다. 그 외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없다. 한미사이언스가 보유한 의결권을 행사하는 자가 핵심 계열사인 한미약품의 경영권도 지배한다는 의미다.
통상 계열사의 주주총회 의사결정 표시자는 대표이사다. 임종훈 대표는 최대주주인 한미사이언스의 이름으로 지난 19일 임시주총을 열고 단독으로 의결권을 행사했다. 당시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와 신 회장을 해임하고, 신규 이사 2명을 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됐다. 4자연합은 임종훈 대표의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천분 신청도 진행했으나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해당 안건은 국민연금의 반대로 특별결의 요건을 달성 못해 무산됐다. 그러나 이사의 신규선임은 보통결의 안건이기 때문에 한미사이언스의 의결권만으로도 통과 시킬 수 있다. 물론 한미약품 이사회는 정관상 정원인 10명이 모두 차있다. 다만 2026년까지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가 무려 6명이나 있다.
임종훈 대표의 한미사이언스 이사 임기는 2027년까지다. 대표이사직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마지막 한 수가 남아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사회 결의를 통해 대표이사 해임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형인 임종윤 이사를 설득하지 못하면 기존 형제측으로 분류된 이사들이 등을 돌리지 않더라도 임종훈 대표는 대표직 유지가 불가능하다.
임종훈 대표는 “형님이 이 상태로 계속 다툼만 해서는 여러모로 안되겠다는 답답함에 결심한 걸로 알려왔다”며 “형님과 논의중”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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