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 “연말 잔치 때 구청장과 구민 500명을 불러놓고 신입직원에게 공연을 시켰습니다. 기관장과 팀장들에게 이런 문화는 없어져야 된다고 이야기했지만 ‘예전부터 내려오던 관습을 네가 왜 바꾸려 하냐’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 “신입 직원은 복지관에서 뿐만 아니라 기관이 소속된 법인 행사에서도 장기자랑을 강요받았습니다. ‘내가 이러려고 복지관에 들어왔나’ 회의감이 들었으나 시키니깐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재단 행사에 차출돼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강요받은 ‘한림대 성심병원 장기자랑’ 사건이 발생한 지 7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일부 사회복지시설에서 직원들에게 장기자랑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갑질119 온라인노조는 26일 사회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지난 3일부터 13일까지 장기자랑 제보를 받은 결과 총 31건의 제보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제보를 살펴보면 전남 소재 한 복지관에서는 새로 취임한 관장님을 위한 축하공연을 해야 했으며, 부산의 한 복지관에서는 사회복지 실습생들에게 춤을 추도록 요구했다. 또 경남의 한 복지관에서는 미혼의 사회복지사만 모아 춤을 추게 한 뒤 “해당 선생님의 짝꿍을 구한다”는 공지를 유튜브 채널에 띄우기까지 했다.
노인인력개발센터, 재활원 등에서도 장기자랑 강요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장기자랑은 복지시설의 가장 약자인 신입사원들에게 강요됐다.
이를 두고 직장갑질119는 “기관장의 권력이 막강하고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데 이어 문제제기를 할 경우 ‘블랙리스트’가 돼 다른 복지관에 취업하기 어려운 조건을 악용해 장기자랑과 같은 악습이 없어지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직장갑질119가 지난 2일부터 11일까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2024년 연말 송년회가 예정돼 있는지’에 대해 물어본 결과, ‘있다’는 응답이 28.5%로 집계됐다.
‘회사나 부서에서 진행하는 송년회·회식 참석이 의무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그렇다’는 응답이 27.3%로 파악됐다. 특히 송년회·회식 과정에서 경험한 불쾌한 행위에 대해 물어보자 ‘음주 강요’(38.9%), ‘노래, 춤, 개인기 등 강요’(29.4%), ‘상사·동료의 주사(술주정)로 인한 피해’(26.3%) 등의 응답이 나왔다.
직장갑질119는 장기자랑 강요는 근로기준법 제76조의2에 명시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며 시설장의 직장 내 괴롭힘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는 이유로 해고 등 불리한 처우를 내릴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종수 노무사는 “장기자랑을 거부하면 사회생활 못 하는 사람으로, 나아가 부적응자로 낙인찍는다”며 “지금이라도 사회복지계가 각성하고 악습을 근절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온라인노조는 사회복지시설을 대상으로 장기자랑 실태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와 지자체 등을 대상으로 장기자랑 시설에 대한 특별감독을 요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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