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공연에 환호성…갈비찜·케이크 먹고 온종일 미소
절반은 부모 기억 없어…학대로 돌아갈 수 없는 아이도
(서울=연합뉴스) 장보인 기자 = "작년에는 선물을 못 받았거든요. 이번에는 선물도 엄청 많이 받고, 올해 크리스마스가 훨씬 좋아요!"
성탄절인 25일 서울 관악구 상록보육원에서 만난 A(10)군은 '즐거운 하루를 보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새아버지의 학대로 인해 보호시설에서 생활하게 된 A군은 몇 달 전 이곳에 들어온 '신입생'이다. 야구선수가 꿈인 그는 짬이 나자 곧장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공을 가지고 나가 두 볼이 빨개지도록 뛰놀았다.
아이들 54명이 함께 생활해 평소에도 활기가 넘치는 보육원은 이날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 위한 봉사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면서 종일 복작였다.
오전에는 배우 이정용씨 등으로 구성된 '오케이 좋아 연예인 봉사단'이 찾아와 어린이들과 함께 캐럴을 부르고 마술쇼를 선보였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앉아 있던 A군은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 형·누나들도 이어지는 신기한 마술 공연에는 깊이 빠져든 채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후 맛있는 갈비찜과 케이크로 든든히 배를 채운 아이들은 매달 이곳을 찾는 봉사자와 레크리에이션 활동을 하며 떠들썩한 오후를 보냈다.
봉사단체나 개개인이 후원하는 아이들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선물 꾸러미를 들고 와 품 안에 가득 안겨주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만날 가족이 있는 경우 잠시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가지만, 다수는 이곳에서 함께 하루를 보낸다.
아이들 가운데 29명은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다. 이름 없이 베이비박스에 놓였던 23명은 원장인 부청하(81)씨의 성을 물려받았다. 원가정에서 학대당해 돌아갈 수 없는 이들도 있다.
어떤 아이들은 막연한 그리움이나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감정을 다 표현하지는 않지만, 친구가 가족을 만나러 가는 모습을 보지 않으려 등을 돌리는 아이도 있다고 시설 관계자는 전했다.
오후 5시께 봉사자들이 모두 돌아가자 보육원에는 다소 적막한 분위기가 감도는 듯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과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탓일까. 아이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남았다.
저녁 식사 후 저마다의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부모(9)군은 "자기 전에 선물 받은 레고를 조립할 것"이라며 두 눈을 반짝였다.
부 원장은 "상황이 어려운 시설들도 있는데, 우리는 어수선한 시국에도 많은 분이 지원을 해주셔서 풍족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특별한 날을 넘어 아이들의 일상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도 당부했다. 그는 "성장하는 아이들이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도록 교육적 측면의 지원도 중요하다. 또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들의 심리치료에도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bo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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