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에 발목 잡힌 패션업계…가격 올려도, 안 올려도 ‘타격’
패션업체는 당장 내년 FW 시즌 준비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고환율에 원자잿값 상승이 겹치면서다. 통상 패션업체는 4분기 중 내년 FW 제품에 들어갈 원부자재를 확보하는데, FW 제품의 대표 원부자재인 거위 솜털 가격은 지난 6개월 동안 30%, 오리털 가격은 같은 기간 20% 이상 각각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패션업체들은 미국 달러화 기반 거래가 상당수를 차지해 값비싸진 원자재를 더 높은 가격에 사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패션업계는 수입 소재를 국내 소재로 대체하거나 불가피하다면 꼭 필요한 것만 선별해 들여오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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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가격 추이를 모니터링하면서 최적의 가격 협상을 위해 협력사와 협의하고 있다”며 “리사이클 다운 등 대체재 마련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패션업체 관계자는 “온라인 브랜드는 한 번에 물량을 많이 생산하기보다 출시 후 반응이나 날씨, 상황 등을 분석해 재주문(리오더)을 진행함으로써 재고를 최소화할 방침”이라며 “수요를 미리 예측할 수 있는 예약 판매 등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의류 일괄 제조·유통(SPA) 브랜드를 운영하는 한 업체는 “주요 원부자재는 예상한 양만큼 대량 매입과 통합 발주 방식을 적용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려 한다”고 했다.
패션업계의 또 다른 걱정거리는 해외에서 들여오는 수입 브랜드다. 이미 환 선물 거래로 헤지(위험회피)를 했기 때문에 환율 상승이 즉각 영향을 주진 않지만 달러당 1400원 이상의 고환율이 지속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미 업체가 수입하는 브랜드 가격과 원가는 5%가량 상승한 것으로 전해졌다.
패션 대형 3개사의 경우 △삼성물산(028260) 패션부문은 아미·메종키츠네·톰브라운·르메르 등을 △LF(093050)는 이자벨마랑·빠투·바쉬 등을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은 폴스미스·어그·더로우·크롬하츠 등을 각각 국내로 들여온다.
높아진 원가 부담에도 패션업체가 무작정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이유는 수요 때문이다. 내수가 침체된 데다 12·3 계엄 사태로 소비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판매가를 인상한다면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수입 브랜드를 전개하는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브랜드 본사와 함께 가격 정책을 재조정하는 등 소비자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려 다양하게 접근하고 있다”며 “시즌이 없는 ‘캐리오버’ 아이템은 본사에서 가격을 올리지 않고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료 33%를 수입하는데”…한숨 깊어지는 식품업계
식품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가정간편식(HMR)만 보더라도 수입 원료 사용 비중이 33%(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0년 기준)에 이른다. HMR 가운데서도 즉석조리식품의 수입 원료 비중은 41%로 더 높다. 고환율이 길어질수록 HMR 업체에 치명적인 이유다.
HMR 업체는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제품 가격 인상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소 HMR 업체 관계자는 “제품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 수입 원료를 사용했는데, 고환율이 6개월 이상 이어진다면 수입 원료를 쓸 이유가 없어진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밀키트 제조업체 관계자도 “2022년부터 가격을 인상한 적이 없지만 고환율 등 어려운 상황이 계속된다면 가격 인상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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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식품업체도 한숨이 깊어졌다. 팜유를 비롯한 유지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데다 코코아, 유제품 등의 가격도 오름세를 보이면서다. 실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선물거래소에 따르면 팜유 선물가격은 이달 초 톤(t)당 1200달러를 찍었다. 이는 전년 동기에 비해 50% 상승한 수준이다. 팜유는 라면 제조의 10~15%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원재료다. 미국 ICE선물거래소 기준 코코아 가격도 t당 1만 200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넘어섰다.
고환율에 원재료 가격까지 오른다면 식품업체의 수익성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일부 업체는 내년 사업계획의 기준 환율을 달러당 1300원 중반대로 설정했지만 고환율이 이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사업계획 조정을 검토할 정도다.
한 가공 식품업체 관계자는 “원료 구매부서에서 선물 거래 등을 통해 최대한 많은 물량을 조금이라도 저렴할 때 미리 구매하는 방식으로 원료 가격 상승과 고환율 영향을 최소화하고 있다”며 “원가 상승을 최대한 감내하겠지만 최후의 카드로 가격 인상을 검토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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