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참여해보니…추위에도 땀 뻘뻘 흘리며 배식·선물 준비
"우리 같은 노인네 불러줘 고마워"…밝은 분위기에 움츠리기도
(서울=연합뉴스) 이율립 기자 =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에 소재한 밥퍼나눔운동본부(이하 '밥퍼')에선 25일에도 소외계층을 위한 무료 배식이 이뤄졌다. 이날은 성탄 맞이 공연과 함께 방한용품을 나눠주는 행사가 함께 열렸다.
행사엔 밥퍼 직원들과 약 200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했다. 기자도 이날 봉사자 중 한 명으로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오전 7시30분께 밥퍼 측이 지급한 주황색 앞치마를 입자 1천500개의 선물 꾸러미를 포장하라는 첫 번째 과제가 주어졌다.
봉사자들이 밥퍼 측 건물 마당에 일렬로 선 뒤 종이봉투를 옆으로 넘기며 패딩점퍼와 장갑, 목도리, 담요, 수면 양말, 칫솔 치약 세트 등을 하나씩 넣는 '컨베이어 벨트' 방식이었다.
'이걸 다 언제 하나'라는 걱정도 잠시. 우왕좌왕했던 봉사자들의 손발은 금세 맞아떨어졌고 포장은 1시간여 만에 끝났다.
이어진 과제는 도시락 포장이었다. 이날은 현장 배식 외에도 도시락 1천200개를 어르신에게 제공했다.
또다시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에 몸을 싣자 0도가량의 날씨에도 땀이 뻘뻘 났다. 밥과 반찬을 담은 도시락 봉투가 수저와 물티슈를 넣어주길 기다리며 파도처럼 밀려왔고 고개를 들 여유조차 없었다.
오랜 시간 서 있으며 허리가 아파져 왔지만, 누구 하나 내색하는 사람은 없었다.
함께 도시락을 포장한 봉사자 진주현(26)씨는 "크리스마스를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서 왔다"며 "지금은 정신없지만 필요한 분들에게 선물과 도시락이 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고 미소 지었다.
오전 10시쯤 되자 홀로 사는 노인과 노숙인 등 약 1천200명이 모였다. 이들은 마당 한 편에서 열린 공연을 관람했다.
가수 김준·향기가 트로트 등을 노래하자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춤을 추는 어르신도 보였다. 이영순(78)씨는 "어디서 우리 노인네를 대우해주겠느냐"며 "너무 행복해. 너무 좋아"라고 웃었다.
하지만 상당수는 밝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익숙지 않은 듯 몸을 움츠리는 모습이었다. 기자가 접촉한 어르신 대부분은 성탄절 홀로 이곳에 오게 된 사연을 밝히기 꺼렸다. 눈을 피하며 말 섞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혼자 산 지 50년이 됐다는 박순자(82)씨는 "아들이 1명 있지만 연락이 끊겨 이제는 얼굴도 잊어버리겠다"며 "지들만 잘 살면 되지. 지들도 힘드니까 엄마를 안 찾는 거야"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점심 식사는 정오를 넘겨 건물 내부 식당에서 시작됐다. 평소 매일 1천여명에게 점심을 대접하지만, 이날은 100명에게만 배식하고 나머지엔 도시락을 건넸다.
갓 지은 구수한 밥 내음은 식당을 가득 메웠다.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고봉밥엔 추위는 물론 외로움을 녹이는 온정이 함께 담긴 듯했다. 이날은 미역국과 함께 불고기, 김치, 샐러드가 찬으로 제공됐다.
강남구 개포동에서 왔다는 김행용(86)씨는 "식구도 없이 혼자 사니 솔직히 한 끼라도 얻어먹으러 왔다"며 "갈 데 없는 우리 같은 노인네들을 불러줘 정말 고맙다"고 웃어 보였다.
강서구 가양동에서 첫차를 타고 왔다는 안원호(72)씨는 "1년에 한 번 이곳에 오는데, 항상 받은 선물을 주변 사람에게 선물했다"며 "올해는 내가 기념으로 입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의 성찬은 이곳에서 2년째 주방장으로 봉사하는 김동열(62)씨가 준비했다. 김씨는 "밥퍼를 찾는 사람이 줄었으면 좋겠는데 계속 늘어난다"며 "아직도 대한민국에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느끼고 집에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밥퍼 운동을 펼치는 다일공동체는 1988년부터 청량리에서 노숙인과 노인 등에게 무상으로 점심을 제공하고 있다.
2yulri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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