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조성일 기자] 조선시대 군복을 지어주던 데서 비롯된 ‘동대문 패션’은 ‘K-패션’의 역사를 고스란히 상징한다. 성공과 좌절이 켜켜이 쌓이며 이루어 낸 단단한 퇴적층 위에 수많은 신화가 창조되고 사라지곤 했다. 그중 패션그룹형지의 최병오 회장이 단연 돋보인다. 시쳇말로 맨주먹으로 패션 사업을 시작해 매출 1조 원의 패션 기업을 키워낸 CEO가 아니던가. 어느덧 창업 40주년(2022년)을 넘기면서 우리나라 섬유 패션 산업을 성장시킨 주역으로 꼽히는 최병오 회장은 누구인가.
‘초록색 악어’의 대박 신화
조금 나이 든 독자라면 학창 시절 입었던 교복 브랜드를 기억하는가. ‘엘리트’. 혹시 에스콰이아 구두를 신어본 적은 없는가. 최병오 회장의 ‘패션그룹형지’의 브랜드이다. ‘패션그룹형지’나 이 기업의 CEO ‘최병오’ 이름은 낯설지 몰라도 우리의 삶 깊숙한 곳에 패션그룹형지 최병오의 손길이 닿아 있다.
1982년 동대문 광장시장 한쪽의 한 평 남짓한 점포에서 시작한 패션그룹형지는 여성복 브랜드 ‘크로커다일레이디’나 ‘올리비안허슬러’, ‘샤트렌’, 프랑스 헤리티지 명품 골프복 브랜드 ‘까스텔바작’과 같은 고급스러운 이름의 브랜드를 소유한 기업이 되었다.
이 신화의 주인공인 최병오 회장은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후 국제시장에서 페인트와 빵 가게를 하면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장사에서 최 회장은 뜻밖의 감각을 터득한다. 페인트 장사에서 색(色)에 대한 감각을, 빵 장사에서 기본(좋은 재료와 저렴한 가격)에 충실하면 고객 만족의 감각을 각각 깨달았던 거다.
이 깨달음은 그가 동대문 광장시장에서 ‘크라운사’라는 간판으로 패션 사업에 뛰어들면서 비록 평범한 시장 옷이라도 ‘고객에게 믿음을 주고, 만족해서 또 찾아오게 하는 옷’을 만드는 사업 철학을 갖게 했다.
하지만 사업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먹고 큰다고 하지 않던가. 그 역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단단해졌고, 하나둘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최병오 회장에게 날개를 달아준 브랜드가 탄생한다. 이른바 ‘크로커다일레이디’이다. 왼쪽 가슴에 ‘초록색 악어’가 새겨진 이 옷은 3050 여성들의 유행을 상징했다. 이 제품은 고품질의 세련된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대를 상징하며 여성복 단일 브랜드로는 최대 매출액과 최다 유통망을 달성해 업계 성공 신화로도 기록됐다.
쇼핑몰 ‘아트몰링’으로 승부수
크로커다일레이디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최병오 회장은 이를 도약의 디딤돌로 삼았다. 본격적인 패션 ‘사업’ 확장을 시작한 거다. 이때부터 샤트렌, 올리비아하슬러, 캐리스노트, 라젤로, 끌레몽뜨 등 다양한 여성복을 론칭하거나 인수했다. 또 남성복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 예작, 본(BON), 골프웨어 까스텔바작 및 학생복 엘리트 등 현재 17개 브랜드를 거느린 종합패션유통기업으로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최 회장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어음 관리를 잘못해 한때 부도 위기를 맞기도 했다. 또 패션업계 맞수와 상표권 분쟁까지 겪는다.
하지만 이 모든 시련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이끄는 마법으로 작용한다. 그 마법은 바로 패션 브랜드였다. 크로커다일레이디가 나온 배경이고, 2012년 존폐위기로 벼랑 끝에 서 있던 ‘K-패션’ 브랜드들을 하나둘 인수하여 명실상부한 종합패션회사로 거듭난 명분이었다.
하지만 최병오 회장은 옷을 제조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종합패션’에다 한 가지를 덧붙여야 비로소 ‘명실상부’하다는 수식어에 부합하는 K-패션이 대표주자가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유통’이다.
그래서 최 회장은 라이프스타일 쇼핑몰인 ‘아트몰링’을 설립한다. 아트몰링은 부산 본점과 서울 장안점을 운영하고 있다. 또 최 회장은 합리적인 가격의 옷을 전국 가두점을 통해 공급한다는 전략으로 승부하고 있어 패션업계를 바짝 긴장시키며 지각 변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남들보다 반의반 보씩만 더 가자”
최병오 회장에게는 성공으로 이끈 좌우명이 있다. “남들보다 반의반 보씩만 더 가자.”
얼핏 보아 ‘반’도 아닌 ‘반의반’이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이는 실현이 가능한 행동 지침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디테일해야 하고, 또 올라가지 못할 나무여서는 안 된다는 철학이 행간에 스며 있음을 본다.
그러면서 최 회장은 ‘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의 마음가짐으로 일한다.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은 없다.
이런 최 회장은 요즘 중국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누가 뭐래도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패션 시장이 아닌가. 패션그룹형지 전시장을 방문한 중국 바이어들의 관심과 논의 사항을 보고 여성복 및 골프웨어 시장 진출의 가능성을 확신했다.
더욱이 최근엔 중국 정부의 한국인 비자 면제는 물론이거니와, 경기 부양책 실시하므로 이 시점이 바로 기회라고 생각한 거다.
특히 글로벌형지의 확실한 교두보는 역시 중국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상해엘리트에 남다른 신경을 쓴다. 한류가 지속되면서 상하이는 잠재적 가능성을 충분히 갖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최병오 회장은 말한다. “파란만장한 인생의 벽은 불굴의 의지로 넘을 수 있다. 헝그리 정신 그리고 도전과 창조를 멈추지 마라. 꿈을 크게 갖고 강력하게 실행해 나가면 어느새 꿈은 현실로 다가오게 된다”고.
그는 동대문에서 장사할 때 지하철 2호선 타고 잠실에서 성수동을 지날 때면 항상 보이는 제일 큰 건물이 있었다. 에스콰이아 빌딩이었다. 그때 그는 언제 저런 건물을 하나 지을까 했었다. 그렇게 에스콰이아 빌딩을 보며 부러워했던 그가 그 회사를 인수하여 그 건물의 주인이 되었다.
그렇다. 최병오 회장은 조금씩 조금씩, 그러면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잊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서 신화를 창조한 입지전적 CEO임에는 틀림이 없다. 한국형 패션을 선도하는 최병오 회장은 또 어떤 신화를 그려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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