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을 심판하게 되면서 헌법재판관들의 현황과 성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능력이 검증된 여성 재판관 비율이 늘어나 새로운 풍속도를 보이고 있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6인 체제인 헌재는 이미선, 정정미, 김복형 등 여성 재판관 3인이 있어 남녀 성비가 50%다. 국회에서 인사청문회 진행 중인 3명 후보자 중에선 여성이 정계선 후보자 1명이 있다. 이들이 임명돼 9인 체제가 되면 여성 재판관은 총 4명이 될 예정이다.
헌재는 6인 체제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심리와 변론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이진 헌재 공보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 측이 이날 6인 체제 탄핵 심리에 문제를 제기한 것과 관련해 "6인으로도 심리와 변론까지 가능하다는 입장"이라며 "오는 27일 예정된 변론준비기일에 변동사항은 없다"고 밝혔다.
헌재는 변론준비기일을 하루 앞둔 오는 26일 재판관 회의를 연다. 회의에서는 탄핵심판 관련 사항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6인 체제에선 탄핵결정 시 만장일치가 돼야 한다.
한국 법조계는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의 체계가 공고했다. 그러다 1990년대 이후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점차 성비는 줄어들었다. 헌법재판소의 경우 법조계 최고위직에 해당하는 곳이어서 성비 불균형은 오래 유지됐다.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장관급으로 판사, 검사, 변호사 등에 15년 이상 있던 40세 이상인 사람 중에서 임명한다. 임기는 6년으로 하며 연임할 수 있다. 대우와 보수는 대법관의 예에 따른다. 헌법재판관들은 재직 자체만으로도 헌법을 수호한다는 공적을 인정받아서 임기를 마치고 퇴임한 직후 훈장을 받는 것이 관례이다.
2017년 3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 헌법재판소는 이정미 전 재판관이 유일한 여성이었다. 이 전 재판관이 헌재소장 권한대행으로 재판장을 맡았고 결정문을 낭독했다.
이번에는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으로 나머지 재판관들과 윤 대통령 탄핵안을 내년에 심판한다. 8년 전에 비해 늘어난 여성 재판관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될 전망이다.
왕미양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은 이날 여성경제신문과 통화에서 "헌법재판관 여성 비율이 높아진 건 바람직하다. 그동안 여성 법조인이 늘어나 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힘이 생겼다"며 "이번 계엄 사태 관련자는 헌법과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마땅히 엄중한 책임을 져야한다. 여성이 보는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균형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다. 최근 혀 깨물은 성폭력 피해자 사건 재심이 대표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미선(54세) 재판관은 부산대 법대 졸업에 26기 사법연수원 출신으로 대법원 재판연구관과 수원지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내다 2019년 4월 헌법재판관 임기를 시작했다.
이 재판관은 판사 시절 유아 성폭력범에 대해 "술로 인한 충동적 범행이고 피해자 부모와 합의가 있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형을 감경할 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실형을 선고해 2009년 2월 '여성 인권 보장 디딤돌상'을 받은 바 있다. 올해 5월에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을 보복기소했다는 사유로 탄핵소추된 검사 안동완의 탄핵심판 사건에서 "직무상 중대한 법 위반이 있으므로 탄핵을 인용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냈다.
정정미(55세) 재판관은 서울대 법대 졸업에 25기 사법연수원 출신으로 1996년 판사 임관 후 주로 대전과 충남 지역 법원에서 재판을 담당했다. 뛰어난 의사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을 발휘해 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 대전지방변호사회의 법관평가에서 두 차례 우수 법관에 선정됐다. 대전고등법원 고법판사를 지내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정 재판관은 2022년 판사 시절 생후 20개월 영아를 고문, 성폭행, 살해한 대전 20개월 영아 강간 살해 사건의 항소심 재판장을 맡아 원심(징역 30년)을 파기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지난해 7월 이태원 참사 관련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탄핵심판 사건에서 피청구인 이 장관의 탄핵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법정의견에 찬성하면서도 "이 장관이 이태원 압사 사고와 관련하여 국가공무원법상 품위유지를 일부 위반하였다"는 별개의견을 개진했다.
김복형(56세) 재판관은 서울대 법대 졸업에 24기 사법연수원 출신으로 1995년 서울지법에서 판사 생활을 시작해 2008년 대법 재판연구관, 2010년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2018년 고법 부장판사가 된 뒤 2022년부터 서울고법에서 판사 생활을 하다 지난 9월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재산 관련 의혹이나 위장 전입 등 개인 신상 문제가 전혀 발견되지 않아 야당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의 호평을 받았다.
정계선(55세)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서울대 의대 중퇴 후 법대를 졸업해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27기 사법연수원 출신으로 서울행정법원 판사, 서울중앙법 부장판사, 서울서부지방법원장 등을 지냈다. 헌법연구회, 외국사법제도연구회, 현대사회와 성범죄연구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정 후보자는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사법부에 여성 법관이 존재해야 사회적 현상을 보다 다각도에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눈을 갖게 된다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며 "유용한 지식과 정보는 회식장소와 흡연실에서 유통돼 여성 법관에까지 닿지 못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모아 선배 법관들이 마련해 준 것이 젠더법연구회"라고 밝혔다.
이어 "제게 헌법재판관으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초심을 잃지 않고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며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며 "헌법재판소가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법사위원장인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 후보자에게 "공부를 무척 잘 하는 사람이다. 서울대 의대도 합격하고, 법대도 합격하고, 한동훈보다도 공부를 훨씬 더 잘 했다. 기죽지 말라"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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