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위해 광장에 모였던 시민들이 탄핵 이후의 세상에 대한 고민을 후원으로 표출하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노동자의 편에 선 병원'을 만들겠다며 시작한 전태일의료센터 건립 사업에 대한 후원이 급격히 늘었고, 여성 농민이 농사짓는 텃밭에서 생산한 농식품을 소비자와 연결하는 언니네텃밭 신규 회원도 폭증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당일 계엄군을 막으려 모여든 시민들을 위해 국회 앞 농성장에서 쓰던 마이크와 앰프를 제공한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의 재정사업도 힘을 받고 있다.
전태일의료센터 후원 홈페이지가 마비된 사연
지난 22일 전태일의료센터 후원 홈페이지가 접속이 몰려 마비됐다. 다음날인 23일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페이스북에 "전태일의료센터 홈페이지가 접속 용량 초과로 다운됐다. 자정을 넘겨 초기화되면서 다시 복구됐는데 어제 하루만 2727건, 2억 7800만 원의 기부가 들어왔다"며 "여러 게시물들의 영향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썼다. 이와 함께 임 원장이 공유한 전태일의료센터 후원금 독려 글의 조회수는 24일 기준 120만 회가 넘었다.
임 원장은 "여의도의 응원봉에서, 남태령의 응집된 연대의 힘에서, 그리고 전태일의료센터를 응원하는 마음들에서, 역동하는 그 힘들에 전율이 일 정도"라며 "아름다운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을 위한 의료기관으로 기능해온 녹색병원은 지난해 9월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위원회(건립위)를 출범했다. 일하다 다쳐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를 위해 한국 최초의 노동자 병원을 만들겠다는 목적에서였다. 전태일의료센터에는 노동자 전담 병동,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전태일의료센터 건립을 위해 필요한 비용은 190억 원인데, 이 중 50억 원은 사회연대의 의미를 담아 '전태일벽돌기금'이라는 이름을 붙인 시민 후원금으로 마련 중이다. 10만 원 이상을 후원한 시민의 이름은 전태일의료센터 내 벽면에 새겨진다. 이날 기준 '전태일벽돌기금'은 28억 6000여 만원(달성률 57.02%)이 모였고, 1만 6047명의 개인과 277개 단체가 참여했다.
'남태령 대첩' 이후 농민들에게 쏟아진 후원 열기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이 주최한 '전봉준투쟁단 트랙터 대행진'에서 촉발돼 지난 21~22일 일어난, 이른바 '남태령 대첩'의 열기도 두 단체에 대한 후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당시 전봉준투쟁단은 전국 각지에서 17대의 트랙터를 모아 윤석열 대통령이 있는 서울 용산 한남동 관저까지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은 '교통 혼잡'을 이유로 서울 서초 남태령역 인근에서 이를 막았다. 이에 전봉준투쟁단의 행진을 지원하기 위해 응원봉을 든 시민들이 남태령역으로 몰려왔고, 후원물품도 쇄도했다. 결국 무박 2일 대치 끝에 경찰이 봉쇄를 풀었고, 전봉준투쟁단과 시민들은 관저 인근까지 행진했다.
이후 온라인에서는 전농과 전여농에 대한 시민들의 후원 인증 움직임이 일었다. 전여농 조합원들이 만든 협동조합인 언니네텃밭이 생산한 "제철 식재료", "장류" 등 구매를 독려한 X 게시글의 조회수가 이날 기준 370만을 넘어섰다. 이후 언니네텃밭 홈페이지 하루 접속자와 신규 회원이 각각 4만 명, 600명에 달하며 평소의 수십 배로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언니네텃밭은 전날 홈페이지 게시글에서 "전봉준 투쟁단 농민들 그리고 여성농민 언니들과 따뜻한 마음으로 연대해주고 계신 시민 여러분 참 고맙다"며 "민주주의 그리고 우리 삶의 근본, 밥상주권을 위한 농민들의 투쟁과 연대에 함께해주셔서 고맙다. 고개 숙여 고맙고 고마운 마음 전한다"고 밝혔다.
계엄 당일, 마이크·앰프 제공…힘 받는자동차판매연대지회 재정사업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 밤, 국회 앞에서 농성 중이었던 금속노조 자동차판매연대지회의 활동도 시민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당일 자동차판매연대지회는 노조법 2, 3조 개정 촉구 등을 위해 쓰이던 마이크와 앰프를 계엄군을 막기 위해 모인 시민들에게 제공해 구호 제창과 소식 전파 등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를 목격한 한 시민은 "계엄날 빚진 마음 갚겠다고 하신 분들께 또 한번 후원과 김 사달라 부탁을 드려도 되겠나? 그날 상황이 빠르게 알려지고, 민주노총이 달려와 앰프를 켜게 된 모든 과정에 자동차판매연대지회가 있었다"라고 쓴 글을 X에 올렸고, 이날 현재 조회수가 16만 회를 넘었다.
김선영 자동차판매연대지회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소액부터 10만 원까지 시민들이 후원금을 보내주신다. 김도 많이 사주신다"며 "10년 가까이 장기 투쟁을 하고 있어 재정 상황이 어렵고, 저도 해고된지 만 9년이 돼 생계가 참 어려웠는데 시민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서 힘이 많이 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지회에 후원을 많이 해주는 것도 고맙지만, 그것보다 더 고마운 것은 시민들이 계엄 당시 국회로 달려오고 이후 탄핵 투쟁을 한 민주노총에 많은 신뢰를 보내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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