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정은 교수팀, 우주에서 화학실험실을 발견하다

서울대 이정은 교수팀, 우주에서 화학실험실을 발견하다

한국대학신문 2024-12-24 15:31:3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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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교수.
이정은 교수.

[한국대학신문 이정환 기자]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이정은 교수가 이끄는 국제공동연구팀이 약 537광년 떨어진 태아별 B335를 대상으로, 고감도·고해상도 전파간섭계인 Atacama Large Millimeter/submillimeter Array(ALMA)를 활용하여 약 10년에 걸친 추적 연구를 통해 생명 발현에 중요한 복합유기분자의 실시간 변화를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태아별은 주변 물질을 흡입해 스스로 수소 핵융합을 일으킬 만큼의 질량을 얻어야 독립적인 별로서 탄생한다. 이 과정은 수백만 년에 걸쳐 이루어지지만, 태아별은 수년에서 수십 년간의 짧은 폭발적 물질 흡입 기간과 약 천 년 정도의 정체 기간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간헐적으로 성장한다. 물질을 폭발적으로 흡입하는 짧은 시기에는 태아별의 밝기가 증가하며 주위 물질을 가열한다. 이 과정에서 우주먼지 표면에서 생성되어 얼음 상태로 존재하던 복합유기분자들이 기체로 승화하게 된다. 이후 물질 흡입이 줄어들면 태아별의 밝기가 어두워지고, 이로 인해 우주먼지의 온도가 낮아지면서 복합유기분자는 다시 우주먼지 표면에 응축되어 얼음 상태로 복귀할 것으로 예측돼 왔다. 하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기화된 복합유기분자가 기존 이론적 예측보다 더 오랜 시간 동안 기체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연구를 주도한 이정은 교수는 “대부분의 천문학 연구는 단일 관측 데이터, 즉 스냅샷 형태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우주의 긴 시간 동안 일어나는 현상을 물리학적·화학적 이론을 통해 해석해 왔다. 이는 천문학적 시간 규모가 인간의 시간 규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길며, 우주의 환경을 그대로 재현한 실험실을 구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우주에 존재하는 ‘천연 실험실’을 발견한 것과 같다. 고감도·고해상도 전파간섭계 관측을 통해 얼음 상태의 유기분자가 기화하는 과정을 직접 관측했으며, 장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기화된 유기분자가 다시 얼음 상태로 돌아가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기존 예측과 다르다는 점을 확인했다. 앞으로 이 우주 실험실을 계속 추적 관측한다면, 복합유기분자의 상태 변화뿐 아니라 태아별 주변에서 일어나는 화학적·물리적 과정을 실시간으로 연구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B335의 변광에 따른 ALMA 이미지.
(위) 먼지의 연속복사 세기 (가운데) 복합유기분자, 메탄올 선복사 세기 (아래) 태아별의 변광과 유기분자의 상태를 보여주는 삽화 (Credit: ALMA (ESO/NAOJ/NRAO) / J.-E. Lee et al.)

기존에는 태아별 주변의 화학적 변화에 대한 여러 이론적 예측이 있었으나, 관측 장비의 한계로 인해 검증 연구는 더디게 진행돼 왔다. 이는 복합유기분자가 태아별에 매우 가까운 영역에서만 기체 상태로 존재하며, 단순 분자들에 비해 신호 세기가 약해 이를 추적하려면 고감도·고분해능의 관측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ALMA의 탁월한 감도와 고해상도를 활용하여 태아별의 폭발적 물질 흡입 과정 중 일어나는 다양한 분자들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정밀하게 추적했다. 연구진은 ALMA를 사용해 이 태아별을 지속적으로 관측함으로써 성간 기체의 냉각 과정, 성간 기체에서의 화학 반응, 그리고 우주먼지 입자와 기체 입자 간 상호작용의 시간적 척도에 대한 이해를 심화할 계획이다.

천문학자들은 실험실 실험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기 어려운 특성상 이론과 모델을 활용하여 우주에서 일어나는 시간에 따른 변화 과정을 예측해왔다. 그러나 이번 B335의 시계열 관측은 태아별 주변에서 생명 발현과 관련된 복합유기분자들이 어떻게 화학적으로 진화하는지 생생히 보여주는 천연 상태의 우주 실험실을 발견해 천문학적 이해를 새롭게 확장시키고 있다.

변광하는 태아별 B335 주변 천연 화학실험실.
Phase2에서 태아별이 폭발적으로 밝아지면, Phase1에서 먼지 표면에 얼음상태로 붙어있던 복합유기분자들이 기화된다. Phase3에서 태아별이 다시 어두워져, Phase1 상태로 돌아가도, 유기분자들이 먼지 표면으로 응축되지 못하고, 여전히 기체상태에 머물러 있다.(Credit: ALMA (ESO/NAOJ/NRAO) / J.-E. Lee et al.)

공동 저자인 텍사스 대학교 오스틴의 닐 에반스(Neal Evans) 교수는 “약 20년 전, 당시 제 대학원생이었던 이정은 교수는 1995년에 관측된 B335 데이터를 바탕으로 태아별의 광도 변화가 화학적 특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컴퓨터 수치 계산을 이용한 이론 실험을 진행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517년 전 B335가 이미 자연 실험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실험의 결과가 빛에 담겨 우주를 가로질러 우리에게 도달한 것은 2015년 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또 다른 공동 저자인 RIKEN 연구소의 야오 룬 양(Yao-Lun Yang) 박사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를 이용해 B335에서 관측한 얼음 분자 자료를 ALMA로 얻어진 기체 분자 자료와 결합하여 분석하면, 복합유기분자의 화학적 특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발견은 생명 발현의 구성 요소들이 우주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진화하는지를 이해함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연구 결과는 천체물리학 저널 레터(Astrophysical Journal Letters) 최신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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