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강원FC 골키퍼 이광연은 비로소 온전한 주전 골키퍼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강원 역사상 최고 골키퍼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시각에 따라서는 이미 최고라고 볼 수도 있다.
이광연은 올해 강원의 K리그1 2위 돌풍에 일조하면서, 강원 통산 무실점 경기 17회를 기록했다. 유현 등의 14경기를 넘어선 구단 최고 기록이다. 지난해 처음으로 0점대 방어율을 달성했고, 올해 28경기로 개인 최다출장을 기록했다. 시즌이 끝난 뒤 휴식을 취하던 이광연을 만났다.
▲ 1년 쉬고 철심까지 박았지만, 부상이 꼭 나쁜 건 아니더라
20세 나이에 데뷔해 어느덧 프로 6년차가 됐다. 주전급 골키퍼로 올라서는데 오래 걸린 이유 중 하나는 부상이다. 이광연은 2022년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약 1년간 경기를 뛰지 못했다. 당시 무릎에 박았던 철심이 아직까지 지속적인 통증을 줬기 때문에 이번 시즌이 끝나자마자 바로 빼 버렸다. 이광연은 부상을 겪으면서 한층 성장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U20 월드컵을 준우승으로 마친 직후에는 뭐든지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런데 첫해 8경기를 뛰고 많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고, 주전경쟁과 잔부상이 이어지면서 저 자신을 믿을 수 없게 됐죠. 이때가 큰 부상을 당한 시점이에요. 아예 오래 쉬면서 ‘빨리 운동장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된 게 오히려 복귀 후에 도움을 준 것 같아요. 그 마음가짐으로 작년부터 퍼포먼스가 좋아졌어요. 저는 심리상태에 따라 경기력도 좌우되는 사람이라서.”
▲ 클럽하우스 6년차, 밥 잘 먹는 노하우가 있다
한국영, 김오규, 강지훈 등 선배들이 떠나면서 이광연은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강원 최고참이 됐다. 강원 구단은 새로 영입되는 선수가 있을 때 이광연이 클럽하우스를 소개해주는 식의 콘텐츠도 내놓는다. 그의 자동차 네비게이션에도, 각종 지도 애플리케이션에도 많이 가는 장소 추천으로 늘 강릉이 뜬다. 이제 이광연은 클럽 하우스에 있는 많은 직원들에게 아들 같은 존재다. 오히려 이광연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새로 오는 직원들에게 살갑게 인사를 한다. 안주인이 된 셈이다.
“클럽하우스 달인의 노하우요? 일단 들어가면서 인사를 크게 해야 하나라도 더 챙겨주세요. 돈가스가 다 떨어지면 다시 따뜻하게 데워 주시고요. 또 제육볶음은 원래 대량으로 만들 때 불맛을 균일하게 낼 수 없거든요? 그런데 제가 좀 늦게 가면 데울 겸 한번 지져서 불맛을 입혀 주시죠. 우리 클럽하우스 메뉴에 따라 빨리 가야 맛있는지, 늦게 가야 맛있는지 안다고 할까요.”
▲ 강원의 전술적 진보, 매 순간 배웠다
올해 강원은 전술적으로 큰 진전을 이뤘다. 이정효 광주FC 감독이 이 분야의 주목을 독차지하지만, 오히려 전술을 통해 성과를 낸 쪽은 강원이었다. 윤정환 감독과 정경호 코치가 만든 강원 전술은 경기 운영이 체계적이고 공수 전환 상황에서 가장 강했다. 황문기, 이유현 등 여러 선수의 포지션 전환이 ‘대박’이었고 양민혁과 이상헌 등의 급성장도 전술 덕분이 컸다. 팀이 전술적으로 진보를 이루면 골키퍼는 플레이스타일을 확 바꿔야 한다. 이광연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제가 잘못된 곳으로 패스하면, 받은 동료는 상대편에게 둘러싸이게 되죠. 제가 패스를 제대로 선택하고 있는지 매 순간 생각해야 돼요. 시즌 막판 울산전을 예로 들어볼게요. 너무 중요한 경기다보니까 그날은 짧은 패스할 엄두가 안 났어요. 계속 킥으로 처리했죠. 그러니까 전반전 끝나고 정경호 쌤(코치)이 와서 그러시더라고요. ‘이제 킥 차지 마. 몇 골 먹든 상관없으니까 무조건 패스해.’ 그때부터 공격수가 압박해도 계속 패스만 선택했는데, 그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더 깨달았어요. 이게 하니까 되는구나.”
킥을 하지 않는 것도 어렵지만, 패스를 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것도 어렵다. 빌드업을 하면서 상대를 끌어들이려는 감독들은 보통 골키퍼와 수비수들에게 상대 압박을 유도하라는 주문을 한다. 공을 발 아래 두고 가만히 기다리는 건 골키퍼 입장에서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올해는 데뷔한 이래 제 위치가 가장 전진해 있던 시즌이에요. 감독님과 코치님은 경기 중 제 판단에 대부분 맡기시지만, 지시하시는 게 있다면 템포를 조절하라는 거. 저희가 밀리고 있거나 오히려 이기고 있을 때, 제가 템포를 늦춰야 하는 상황이 있거든요. 공을 오래 쥐고 있어야 할 때요. 그런데 저는 빨리 공격으로 넘기고 싶으니까 패스를 해 버리고, 그러다 공을 바로 잃어버리는 일이 생기곤 했어요. 오히려 공격을 천천히 해야 할 때가 언제인지 올해 많이 배웠어요.”
▲ ‘국가대표 복귀’ 이기혁, 전술과 분위기를 위해 중요한 동료
이번 시즌 인상적이었던 동료를 논할 때 이광연은 한 살 아래 이기혁을 두 번 호출했다. 일단 팀내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하는 ‘가장 이상한’ 선수로 이기혁을 꼽았다. 이기혁이 있는 곳은 일단 시끄럽고 활기가 넘친다고 한다. 전술적으로도 이기혁은 큰 역할을 했다. 이기혁은 이번 시즌 센터백, 레프트백, 중앙 미드필더를 오가며 강원 전술이 실현되는데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를 인정받아 가장 최근 대표팀인 11월 소집 때 포함됐다. 출전은 불발됐지만, 앞으로도 홍명보 호의 일원으로 경쟁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팀의 돌풍 비결이요? 전술 자체가 뛰어나기도 하고, 훈련 때 피드백이 굉장히 명확하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끼리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어요. 선수들끼리 서로 원하는 바를 주문하는 거죠. 골키퍼 입장에서 수비수들과 많은 대화를 하는데, 특히 전술을 잘 실현해 주는 선수는 기혁이. 기혁이가 저에게 굉장히 많은 피드백을 하면서 플레이 방향을 제시해 줘요. ‘형이 이렇게 하면 내가 저렇게 할 테니까’라면서요. 그리고 마음가짐도 좋죠. 실수를 해도 겉으로 티가 안 나요. 속으로는 신경 쓰면서도 겉모습은 전혀 연연하지 않는 듯 보이죠.”
▲ ‘레전드’ 선배가 대표님일 때
이광연은 비교적 단신인 184cm 신장, 순발력이 눈에 띄는 선수라는 점에서 김병지 대표와 닮았다. 현역 시절 김병지도 선방 능력이 돋보이는 선수였다. 이광연은 현역 시절 대표님과 비교를 시작하려 할 때 곧바로 손사래 치면서 “저는 절대 못 따라갑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대표팀이 골키퍼 선배로서 피드백을 주시고 노하우를 이야기해주실 때가 있어요. 그리고 김천상무 상대로 이겼을 때 좋은 말을 한 번 해주셔서 기억에 남아요. 제가 추가시간에 김봉수의 슛을 막고 승리를 지켰는데, 끝나자마자 절 보시더니 ‘네 덕분에 이기는 걸 다 보네’라고 하시더라고요. 올해 제 목표가 그거였거든요. 골키퍼 덕분에 이겼다는 말을 많이 듣고 싶다.”
▲ 일본 진출의 꿈이 줄어든 이유, 강원 스타일이 좋으니까
이광연에게 해외진출을 꿈꾸는지 물었을 때, 그는 예전보다 그럴 생각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한국 골키퍼들은 흔히 일본에 진출한다. 과거처럼 거액 연봉을 보장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에 가는 이유는 더 아기자기한 패스 플레이를 겪으면서 기량을 발전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서 오래 뛴 김승규가 대표팀 주전 자리를 고수하던 시절 ‘J리그에 가야 국가대표가 된다’는 속설도 있었다. 이광연이 일본에 가고 싶었던 이유도 비슷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강원에서는 원클럽맨이기도 하고 너무 사랑하는 팀이어서 이적하게 된다면 K리그팀이 아닌 해외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만약 해외진출을 한다면 많이 도와주겠다고 김병지 대표님도 이야기하셨고요. 그런데 사실 요즘에는 나가고 싶은 마음이 많이 없어졌어요. 빌드업 축구를 경험하고 싶어서 일본을 생각한 건데, 저희 강원이 지금 딱 그 축구를 하고 있잖아요. 강원의 축구가 너무 재밌고, 어려우면서도, 매 운동이 기다려지고, 매 훈련이 도전이에요. 될 듯 안 되는 축구를 하루하루 겪으면서 요즘 충분히 재밌어요. 어디 가지 않아도.”
사진= 풋볼리스트
Copyright ⓒ 풋볼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