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 "항우울제 복용" 주장…뒤늦게 소변 채취·사고 영상 확인
교통 경찰관들 "사고 처리 과정 미흡…현장서 약물 검사했어야"
(춘천=연합뉴스) 강태현 기자 = 강원 춘천 시내 대로에서 차량이 역주행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경찰이 별도의 약물 검사 없이 운전자를 돌려보내 사고 처리 과정이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24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6일 오후 8시 10분께 춘천시 퇴계동 일대에서 'K5 승용차가 역주행하고 있다'는 112 신고가 여러 건 들어왔다.
역주행 승용차는 주행 당시 이미 앞 범퍼 하단이 깨져 있었고, 도로에서는 정주행하던 차량 여러 대가 경적을 울리며 역주행 승용차를 피해 운행하는 상황이었다.
편도 4차로 중 1∼2차로를 시속 40㎞ 안팎으로 추정되는 속도로 역주행하던 승용차는 오후 8시 14분께 퇴계동 한 주유소 인근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서야 멈춰 섰다.
출동한 경찰은 A(43)씨를 상대로 음주 측정을 벌였으나 당시 A씨는 술에 취한 상태는 아니었다.
A씨는 사고 현장을 목격한 레커 기사에게 "우울증 약을 다수 복용했다"는 취지로 언급했고, 레커 기사는 A씨의 말을 출동 경찰관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경찰은 현장에서 별도의 약물 검사 없이 A씨를 돌려보냈고, 소방대원들은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A씨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자칫 큰 사고를 초래할 수 있었던 아찔한 상황에서 운전자가 스스로 약물을 복용했다고 언급했음에도 현장에서는 음주 측정 외에 약물검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한 교통조사 경찰관은 "우울증 약을 먹었다는 것은 운전자의 주장일 뿐"이라며 "실제로는 마약을 투약했을 가능성도 있었을 텐데 횡설수설하는 운전자를 음주 측정만 하고 돌려보낸 건 의아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은 "역주행 행위는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보통 음주 측정과 약물 검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게 관례"라며 "우울증 약을 먹었다는 말을 현장에서 들었다면 더더욱 약물 검사까지 하고서 돌려보냈어야 하는 게 맞다"고 했다.
교통 분야에서 오래 근무한 한 경찰관은 "연말연시 음주·마약 운전 특별단속으로 간이 약물 검사 키트가 지구대·파출소까지 보급이 됐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조사를 해볼 법한데 대응이 아쉽다"고 언급했다.
초동대처에 나섰던 지구대는 연합뉴스 취재가 시작되자 A씨를 불러 뒤늦게 약물 검사를 위한 소변을 채취하고 경찰서에 사고 발생 보고를 했다.
또 출동 경찰관들로부터 '단독 사고'라고 보고받은 지구대 책임자 역시 취재가 시작된 이후에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떠도는 역주행 영상을 처음 확인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당 지구대 측은 역주행으로 인한 인명피해가 없고, 시설물 피해도 크지 않은 데다 A씨 차량 블랙박스 미작동으로 사고 장면을 살펴보기 어려워 시급하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편 A씨는 지구대를 방문해 "사고 당시 기억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복용했다는 항우울제와 소변에서 검출된 성분이 같은지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하는 한편 A씨가 역주행한 구간의 거리와 1차 사고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tae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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